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갈대

연일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엄청난 강도의 비바람에 가슴만 졸이던 일이 오늘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창고의 스레트 지붕 한 조각이 날아가 버렸답니다. 한겨울 일 미터 두께로 쏟아져 내린 폭설에도 끄떡없었던 지붕이거늘 맥없이 날아가 떨어지네요. 비옷도 없이 허겁지겁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를 올라가지만 워낙 높은 지붕 탓에 위험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강풍은 쉴 새 없이 몰아치니 스레트를 잡고 있는 것 마저 벅찬 순간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홀로 산속에 사는지라 혼자서 고칠 수밖에요. 안간힘을 쓴 끝에 지붕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왔습니다.
몸은 빗물에 젖을 대로 젖어 버렸는데 다 고치고 나니 비가 그치네요. 참 짓궂은 날씨구만요. 대충 얽어 놓긴 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다시 비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르니 얼른 읍내에 나가 새 스레트 한 장을 사와서 튼튼하게 고쳐야 할까 봐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차를 몰고 읍내로 향합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의 풍경들이 가관이 아니네요. 소나무가 번개 한 방에 맥없이 주저앉고 양팔에 감싸 쥐어야 겨우 품에 들어오는 나무들도 비바람에 휘청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강변에서 흔들리고 있는 갈대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전하게 삶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흔들거리며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아름드리 큰 나무도 당해내지 못한 광풍을 이겨낸 갈대!
그 갈대밭엔 사람하나 있습니다.
평생을 농산물 값에 휘둘리며 살아가지만 모두가 잠들었을 때 깨어 일어나 세상의 광풍과 맞서 싸우며 전진하는 농투성이가 있습니다.
그대들이 있어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합니다.

▲ 박종화 作 '갈대'(1220*620)
- "어젯밤 뿌리 뽑힌 아름드리나무 옆에서 흔들리며 다시 피는 강변길 갈대"

잘 일군 농사를 농산물 값 하락 때문에 갈아엎어도 농민은 다시 농사를 짓습니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논밭을 놀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것이 삶이고 생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큰 나무가 뽑혀도 흔들리며 다시 피는 갈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설명 :
전체적인 분위기는
강변에 유유히 살랑거리는
갈대의 모습입니다
[대]에 긴 획을 주어
갈대의 모습을 선명히 하였습니다
흩뿌린 먹물은 을씨년스런 강변 풍경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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