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저녁, 경찰버스로 둘러싸인 대한문 앞 추모행렬로 가득 찼다. 대한문 양쪽으로 수백 미터씩 늘어난 줄의 끝을 찾기 힘들다. 1분마다 40-50명이 헌화를 하고 가지만 줄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단위 추모객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릴 것도 없다. 직장인들도 집으로 향하기 전에 분향소에 들렀다. 20대 한 직장인은 "퇴근하기 전 동료들과 채팅하면서 하나 둘씩 모였다"면서 "퇴근하고 바로 왔는데도 1시간 반 정도 기다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기다리다 지친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영상이 상영되는 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바닥에 깔린 방명록에 어린 학생들도 글을 남기고 간다. "나의 영원한 대통령", "너무 보고 싶어요. 노무현 아저씨",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원칙을 저희들이 지켜나갈께요."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와 다르게 대한문 앞 분향소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있다. 추모를 마친 이들은 자원봉사에 나선다. 촛불과 국화를 나눠주고, 길안내를 하고 쓰레기를 줍는다. 어떤 이들은 물과 음료도 무료로 나눠준다.

서거 첫날 충격에 빠졌던 시민들은 '애도'와 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기색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집단행동을 삼가해달라"는 스티커와 "애도의 마음과 분노를 모아 촛불을 켜 듭시다. 낮에는 국화. 밤에는 촛불을"이라고 쓰인 벽보가 덕수궁 돌담길에 나란히 붙어 있다.
특히 추모식장 옆에는 크고 작은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차분하게 자유발언을 이어나가는 모습이지만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민들도 있다. 분향소 옆에서 진행되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발의 서명장' 앞에서도 사람들이 몰린다.
자유발언을 자청한 정전언(32)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돌아가셨다"면서 "더 이상 정치적 압박을 통해 이렇게 돌아가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양에서 두 딸과 함께 올라온 40대 남성은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렇게 나왔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 바쳐 한 행동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엄청난 몫을 주고 갔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화를 든 이들도, 촛불을 든 이들도 격앙되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를 지켜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분향소를 둘러싼 경찰버스와 전경들을 보면 참았던 화를 터트린다. "이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냐"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27일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 대국민 추모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추모객 마저 경찰을 동원해 봉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촛불은 언제든지 '애도'에서 '분노'로 번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