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인혁당 민주열사 34주기 추모제'에서 한 참석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헌화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용산참사가 바로 인혁당 시절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1975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된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지 34년이 되는 9일, 문정현 신부는 용산참사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겹쳐져 떠오른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인혁당 민주열사 34주기 추모제'에 인사말을 위해 무대 위로 오른 문 신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창립한 '4.9통일평화재단'의 이사장이지만,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용산참사 현장으로 떠났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를 위해서다.

문 신부는 "30년이 됐든 40년이 됐든 진실은 절대로 솥뚜껑으로 덮어놓듯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살아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혁당"이라면서 "지금 용산에서 보름 남짓 지내면서 자꾸 75년도 4월 9일 오늘, 용산참사가 오버랩이 된다. 용산참사가 바로 인혁당 시절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망루를 세우는데 하루 만에 희생이 됐죠. 그리고 마녀사냥을 하죠. 세상에 화염병을 들고 죽으려고 불을 붙여서 모두 죽고 경찰관까지 죽였다? 누가 믿을 수 있는 얘기인가? (인혁당 재건위) 사형 당한 인사를 벽제 화장터로 가서 태웠는데, (용산참사 희생자) 시신을 그냥 급히 영안실로 데려가서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온통 토막을 내놨다. 팔, 다리 다 토막을 내놨다. 발이 뒤틀려져 있었다. 그걸 본 가족들은 아연실색해서... 인혁당을 태웠던 그 방법대로 용산참사가 당한 것이다."

▲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공연.[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노중선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등 각계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추모제에서 30여 년 전 '그 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 듯 느끼는 이가 문 신부만은 아니었다.

이날 추도사를 한 이부영 전 의원은 "다시 반동의 세월이 왔다고 얘기를 한다.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우려들이 나온다"면서 " 그런데 여기 계신 여덟 분을 비롯해서 그 뒤로 돌아가신 여덟 분, 민주화 운동, 민족해방운동이 치러온 밑거름이 만만치 않다. 우려곡절이 있겠지만 그들이 시대를 거스르고 다시 험난한 세월로 시계바늘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그들에게 철퇴를 또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끝에 힘을 실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이명박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이 세상은 캄캄한 숲속보다 더 어두운 암흑 속"이라면서 "인혁당 민주해방열사의 뒤를 따라서 우리도 달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부영 전 의원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인혁당 재건위'의 또 다른 희생자들인 故 전재권 유진곤 정만진 이태환 이재형 선생 등과 인연을 맺었다.

'사법살인'으로 불리며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된 34년 전 이날 이수병 선생 등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장석구 이재문 선생이 모진 고문으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연루자들이 모두 풀려났지만, 그 후 이재형 선생 등 6명이 운명해 현재 전창일 선생 등 16명만 살아 남았다.

이날 추모제에는 34년 전 사형 당한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선생과 그 후 세상을 떠난 장석구 이재문 전재권 유진곤 조만호 정만진 이태환 이재형 선생의 위패가 모셔졌고, 그 앞에 전창일 선생 등 '인혁당 재건위' 사건 생존자와 하재완 선생의 부인 이영교 여사 등 유가족이 자리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던 전창일 선생은 "고인들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갑절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날 추모제에는 200여명의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반유신운동을 벌이려던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1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를 포함 26명을 지목하고,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사회를 전복하려고 '인혁당 재건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이듬해 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이수병 선생 등 8명에 사형을 집행해 전대미문의 '사법살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사형 당한 8명은 물론 무기 등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생존자 9명은 재심을 통해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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