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이 북측에 인권문제를 건드렸다. 새로운 싸움, 또 하나의 싸움을 건 것이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긴장된 순간에 인권문제를 터뜨렸으니 판을 아예 깨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남측 수석대표인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3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10차 유엔 인권이사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매우 심각한 인권상황에 관한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에 공감한다”면서 “북한이 국제 인권법과 당사국으로 있는 인권조약상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고 인권개선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인권문제를 체제와 존엄의 문제로 보고 있는 북측이 발끈하지 않을 수 없다. 최명남 주제네바 북측대표부 참사는 이날 답변권 행사를 통해 “남측 수석대표의 언급은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의 역사적 북남수뇌회담의 합의 내용 및 정신에 대한 명백한 위반인 만큼, 정당화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으며 가능한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난받아야 한다”면서 “남한이 진정으로 인권에 관심이 있다면 국가보안법을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역공을 취했다. 남북이 인권문제를 놓고 제3의 장소인 유엔에서 다투게 된 것이다.

상대편을 비판하려면 그러기에 앞서 똑같은 내용으로 자기를 되돌아봐야 한다. 북측의 인권문제를 얘기하려면 그 전에 남측 정부가 남측의 인권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지금, 남측의 인권상황은 어떠한가? 내용을 담는 것은 그릇이다. 인권문제의 그릇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들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밑으로 두려고 시도했고, 편향성 논란이 있는 인사를 인권위원에 임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가 인권위 조직을 30%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어떤 식으로든 인권위를 찌그러뜨리자는 심보다. 인권위가 축소되면 그만큼 인권이 축소되는 것이다.

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 때는 경찰이 과도하게 진압했음이 드러났고, 특히 용산참사에서는 경찰이 테러진압작전을 펴 철거민이 다섯 명이나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인권의 사각지대가 서울 도심에 버젓이 있는 게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누구 하나 책임을 지기는커녕 아무런 반성도 재발방지도 약속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강경진압으로 해산, 연행하고 있다. 인권탄압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용산참사를 두고 북측의 한 인권단체가 지난달 17일 인권침해나 인권유린 정도가 아니라 ‘인권말살행위’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할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측 정부는 지난 1월 중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군사공격을 비난하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안에 기권하는 만용을 부린 바 있다. 당시 인권이사회 결의안은 찬성 33, 반대 1, 기권 13으로 채택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모두 기권했었다. 이는 강대국과 선진국들이 아주 쉽게 인권의 보편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자국의 입맛에 맞게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장 우려스럽게도 이미 인권이 정치화가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지난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남측 역시 이처럼 인권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인권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권문제 제기가 그런 도덕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처럼 남북이 지극히 예민해 있는 상태에서는 가급적 상대편을 자극하거나 새로운 전단(戰端)을 만들지 말고 기존의 대치전선을 잘 푸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권문제가 새로운 싸움, 또 하나의 싸움이 되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전쟁접경’으로까지 와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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