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1년의 성적표는 전체적으로 낙제점이지만 특히 남북관계를 보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의 입장에서야 ‘상생.공영’을 외쳤지만 북측이 진심을 몰라주고 대화에 응해주지 않은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의 평가는 냉엄한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남북간 화해협력 기조를 1년 만에 일거에 무너뜨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 이름이 ‘비핵.개방.3000’이든 비핵.개방.3000에 모자를 씌운 ‘상생.공영’이든 상관없이 명백히 실패했으며, 앞으로의 전망마저 어둡기 짝이 없다.

이같은 이명박 정부 1년 간의 대북정책 실패는 여러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지만 대북정책의 ‘조정’이나 새로운 대화 ‘제의’ 등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의 근원에는 바로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존중’의 부재와 북한과 북한 지도부에 대한 ‘존중’의 부재가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 지난 1년간 통일부를 출입하며 지켜본 기자의 진단이다.

통일부의 첫 업무보고를 받던 지난해 3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 지도자들이 통일을 늘 부르짖는다. 그것이 과연 가슴에서 우러나고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국민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통일의 구호였는지 지도자들의 전략적 의미에서의 구호로 해석해야 할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리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대신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 간 정신은 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통일부 모든 간부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그런 방식의 협상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화해협력 정책, 그리고 그 상징인 6.15, 10.4선언을 존중하기는커녕 내팽개친 것이다. 오죽하면 통일부를 폐지하려고 했겠는가.

이른바 ABRK(Anything But Roh & Kim)로 불리는 이명박 정부의 기존정부에 대한 반감은 오랜 분단의 쓰라린 세월 끝에 간신히 싹을 틔워가고 있던 남북간 화해 무드를 일거에 짓밟아버렸다.

이같은 이명박 정부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성과들에 대한 무시와 모욕은 곧바로 다른 한 당사자인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무시와 모욕과도 다름없다.

그래서 북에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대북정책의 바로미터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존중’을 촉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북에 대해서도 ‘존중’ 보다는 ‘항복’이냐 ‘붕괴’냐 양자택일 할 것을 강요하는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국 순방길에서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발언이나 지난 12일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주의” 발언 등은 대통령의 대북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며, 전임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국회에서 유포하고 신임 원세훈 국정원장이 24일 3대 세습을 언급하는 등은 북한 체제에 관한 ‘존중’은커녕 상대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쟁 중에도 상대 적장에 대한 적절한 예우와 존중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건만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 통탄할 상황에서 상대측 체제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중없이 어떻게 남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 역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이후 상당 기간을 침묵하고 지켜본 끝에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북측이 본격 비난에 나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길 이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9.19공동성명의 한 주역인 송민순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는 한.미.일 3국 수석대표 회동 뒤에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미간 치열한 협상이 오가는 판에 한국의 대표가 미.일 대표와 나란히 웃는 모습을 모여주지 않으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이같은 보이지 않는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있었기에 9.19공동성명이라는 옥동자가 산고 끝에 빛을 보았고, 당시 송 수석대표는 협상타결 일성으로 “늘 우리에게 만들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를 앞으로 우리를 위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 1년의 대북정책이 명백하게 실패로 판명된 이상 그 근본 원인을 따져보고 그 원인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반성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공과를 떠나 대북 화해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떠나 먼저 전임 대통령과 전임 정부는 물론, 나아가 통일의 유일한 상대인 북한과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부터 다시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징표는 바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눈물마저 말라비틀어져버린 이산가족이 한을 품은채 물리적 수명을 다해가고 있고, 세계 금융위기의 혹독한 시련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지금, ‘두 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 따위의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그리고 화해협력 정책을 존중하는 일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그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존중하는 일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바로 북한 국민(인민)들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간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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