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치산 출신 장기수 정관호(83) 선생의 시와 사진으로 된 연재물을 싣는다. 시와 사진의 주제는 풀과 나무다. 선생에 의하면 그 풀과 나무는 “그저 우리 생활주변에서 늘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풀이요 나무들”이다.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 연재는 매주 화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

복수초
지난해 일찍 잠들어버린 뒤
여읨이 매듭지어지지 않아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더니
땅이 얼어붙고 찬 바람 매울 때
그 포기 있을 땅에 귀를 대고
요동치는 소리 오늘일까 내일일까
산천에 아직 잔설이 두껍고
오두막 굴뚝 연기만 따스울 때
비로소 그 꿈틀거리는 소리를 듣다
오, 어서 오시라
기다리는 줄 알거든 고개 내미시라
저기 저렇듯 지표가 금가는 소리
지심이 뭉클 부풀어 오르는 태동
이마에 눈을 이고 꽃부리 솟다
저 찢고 내미는 의지를 무엇에 비길까
저 솟아오르는 기운을 무엇에 비길까
고사리 만한 푸성귀 꽃대가
단추알 만한 여린 꽃봉오리가
이룩해내는 저 놀라운 기적
이 꽃을 탄생화로 가진 이들
저렇게 외계로 나왔으렷다
福을 받겠네, 壽를 점지 받았네
귀한 것 둘을 다 가졌구나
저렇게 매년 봄을 알리게 하고 싶고
저렇게 새 탄생을 맞게 하고 싶고
저렇게 내일이 되풀이되게 하고 싶은
오롱이조롱이 솟은 꽃무리 앞에
옷깃을 여미어 쭈그리고 앉아
황홀함에 몸둘 바 모르겠는 이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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