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밖에서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2008년 12월, 한국은 국정원법, 통신비밀보호법, 사이버모욕죄, 집시법 등 법안이 '국가안보 및 사회질서 유지'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목조르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정 60주년을 하루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 통제하는 '공안정국'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서울 도심에서 터져 나왔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국민연대)는 30일 오후 4시 2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4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60년, 그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대회'를 열었다.
'간첩', '사상범'이 또 다시 '출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맞는 첫 번째 국보법 폐지대회인 만큼 추운 날씨 속에서도 각계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다함께,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민주노총, 한대련, 민주노총의 깃발이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갈랐다. '안티이명박' 카페 누리꾼 회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권오헌 국민연대 공동대표는 여는 말에서 "국가보안법이 더 이상 필요없는, 6.15, 10.4 선언으로 평화공영 시대를 누리고 있는 오늘,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 권한을 확대시켜 공안통치를 하려 한다"면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탄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가 북한인권법을 공동으로 제안. 통과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정부가 이명박 정부"라며 이명박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국가보안법, 국가의 안보 아닌 자신들의 안보를 지키는 법"

이어 무대에 오른 문정현 신부는 "수염을 좀 깎게 해달라"며 부탁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깎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살아나니 깎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문 신부는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를 위한 법이 아니"라면서 "국가보안법을 지키자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보를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다. 공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구조조정 당할까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밥벌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법이다"고 폐지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심재환 민변 통일위원장 역시 거듭 "국가보안법은 법률의 탈을 썼지만 법률이 아니"라고 법조계 인사를 대표해서 말문을 열었다.
심 위원장은 "법원은 북이 대남 적화통일하려는 변란세력이고 반국가단체라는 것인데, 법원의 논리는 철저한 거짓말이다"면서 "북은 통일하려면 남북을 그대로 인정하고 연방이든, 연합이든 하나가 되자는 것, 사회주의 체제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사슴을 말(指鹿爲馬)이라고 한다"며 "국가보안법이 지킨 것은 국가보안이 아니고 수구세력의 이득과 기득권이다. 국가보안법은 독재세력이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고은태 앰네스티 한국지부장은 "전세계는 세계 인권 6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국가보안법 60주년을 맞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은 어떻게 활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닌 존재자체가 문제이다"고 알렸다.
그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제인권조약에 대한 전면적인 위배"라며 "남북관계 특수성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안보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공안탄압' 비판, 국정원법 등 유사 국가보안법제 저지 목소리도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국보법의 폐해를 성토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공안정국'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공안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같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나 두 번이나 영장이 기각된 사회노동자연합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과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의 간부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이명박 정부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실천연대 최한욱 집행위원장의 부인인 하유진씨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눈물을 쏟아내 좌중을 숙연케 했다. 10여 분 동안 하 씨의 가슴앓이를 들은 참가자들은 "힘내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최미진 다함께 활동가도 "이명박 정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와 민생을 파괴하면서 백만명이 넘게 참가한 촛불집회의 탄압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부분이 사회적 쟁점으로 불거지게 됐다"며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 세력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를 맡은 박래군 국민연대 사무총장도 18대 국회에서 다뤄지게 되는 통신비밀보호법, 국정원법 등 유사 국가보안법제 법안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후 5시가 넘고 날이 금세 어두워지자 대회장에서는 촛불이 피어났다. 촛불을 나눠 든 4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수 석방'이라는 손피켓을 번갈아 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공안탄압 저지"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특히 참가자들은 국보법을 상징하는 대형 현수막을 무대에서 이어받아 동시에 찢는 상징의식을 펼치며 국보법 폐지를 촉구했다.


경찰은 대회 장소인 보신각을 10여 대의 버스로 둘러싸 외부의 시야를 차단했으며, 오후 5시 55분경 "일몰직후 미신고된 집회"라며 1차 해산을 권고했으나 이후 큰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초 계획됐던 행진은 경찰측의 불허로 열리지 못했다.
이날 대회에는 권오헌 국민연대 공동대표, 문정현 신부,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오병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등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