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신념이 있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미국은 영원히 함께 할 우방국이자 동맹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그 신호탄이 됐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미국이 한국의 의견을 고려해 대북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찰떡같은 그들의 믿음이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보수신문들은 한국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극도의 반발감을 표출했고, '극우단체'들은 미 대사관 앞에서 부시 미 대통령의 사진이 실린 피켓까지 불태우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환영' 입장을 냈던 한나라당도 오락가락이다.

그들에게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어쩌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바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주장하는 민주당 배럭 오바마 후보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15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8년 미국 대선의 진행과 차기 미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주제로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창립토론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15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8년 미국 대선의 진행과 차기 미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창립토론회에서 이러한 보수진영의 고뇌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들의 고민을 요약하면, 북한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한국 배제론'이다. 이는 이번 테러지원 해제 조치 이후 제기됐던 '한.미동맹 홀대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본다.

"오바마 후보가 조건 없이 북한을 만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오바마가 북한을 만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나 따져봐야 한다. (그가)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 주겠나." (이춘근 뉴라이트국제정책센터 대표)

"오바마가 당선되면 북.미간에 먼저 협상하고 동맹국에 통보한 다음 6자회담에서 추인할 것이고, 매케인은 먼저 동맹국과 상의한 다음 북.미간 협상을 하고 6자회담에서 추인할 것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부원장)

"미국이 한반도 북쪽에 대해서 남한의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낙관하고 있지 않나. 미국이라는 위력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정낙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통일외교안보팀장)

이러한 미국에 대한 우려는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이춘근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은 국제정치 역할 상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면서도 "우리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잡아야지, 미국이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통일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미국보다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깨달았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먼저 그 의도부터 틀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밝힌 '주도권'의 대상은 '체제붕괴' 내지는 '체제전환'이 된 북한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통일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및 국교수교를 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북.미관계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이 배제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보수진영도 미국에 앞서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정낙근 팀장은 "우리가 북한과 다이렉트를 해서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미국을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미국 내부 정세로 돌아가면,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앞서고 있는 상황을 뒤집기 힘들다. 보수들은 답답하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브래들리 효과(여론조사에서는 흑인후보가 월등히 앞서다가 선거 결과에서는 백인 후보가 승리하는 현상)'를 들먹이며 오바마 당선이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존 매캐인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이 되어서 미국이 자신들의 영원한 우방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할 뿐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마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받아들인 마당에 매캐인 후보가 이를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 대선을 앞둔 보수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미국이 두렵워지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의 '변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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