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가 10.4정상선언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며 "그 결과로 남북관계가 다시 막혀버렸다"고 1일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특별연설을 통해 "2007년 10.4 선언은 이념적, 정치적 성격은 거의 없고 실용적, 실무적 내용으로 된 선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연설전문보기]

그는 "(남북)관계를 복원하는데 많은 시간과 부담이 들어가야 할지 알 수 없다"며 "분명한 것은 관계 복원을 위해 허겁지겁 이런 저런 제안을 하는 모습이 좀 초조해 보인다"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이어 "그야말로 '자존심 상하게' '퍼주고' '끌려 다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자존심 상하고, 퍼주고, 끌려다닌다, 이런 비난은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전매 특허였다"고 꼬집었다.

또 "개성공단 투자는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상호주의에 맞는 것인가? 아닌가?"라며, 10.4선언에서 합의한 해주공단, 안변 조선공단 건설 등을 언급 "이런 것이 성사되면 우리 경제에도 큰 활로가 열릴 것이다. 그런데 개성-평양 간 도로와 철도에 대한 투자에는 시비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350여명의 각계각층 인사가 자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노 전 대통령은 "10.4선언은 지금 버림받은 선언이다. 1년쯤 됐으면 잎이 싱싱하게 피고, 가지도 좀 뻗고, 그래서 내년에는 열매도 주렁주렁 열렸어야 했는데..."라며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CEO는 전임 사장이 계약을 하면, 후임 사장은 이행을 하길래,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면서 "근데 국가 CEO는 안 그대도 되는 줄 미처 몰랐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다"고 지적했다.

"대북정책, 사고와 자세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날 1시간 동안 이어진 특별연설에서 "대북정책에서 사고와 자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 노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작전통제권 환수, 개념계획 5029 등 현안에 대해서도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현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먼저 "흡수통일을 전략으로 삼아서 상대 권력의 붕괴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북한을 자극해 평화통일을 깨는 일이 될 수 있다. 탈북자 문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라며 "그럼에도 북의 붕괴를 획책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다"고 일침을 놨다.

▲ 노 전 대통령은 1시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현 정부.여당의 대북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초 4대 개혁입법안 중 하나로 추진했다 실패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은 이념적 대결주의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남북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 그 중 대부분은 시비꺼리를 만들거나 보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가에 책임있는 사람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국가보안법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통일 얘기를 국민적 합의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지금은 남북 대화의 국면이다. 대북 억지를 위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좋을 상황"이라며 "이제는 동북아에서 어느 한 쪽과도 적대적이지 않은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에 비중을 두는 것이 동북아의 상황에도 맞고, 남북 간의 대화국면에도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굳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이념 공조를 강조하고, 북한을 굳이 주적이라 명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제공격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남북 간에 신뢰 있는 대화와,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얻고, 동북아 평화구조를 만들 수 있겠냐"고 정부.여당과 보수진영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작계5029, 법적 근거도 없고 강행할 가치도 없어'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개념계획 5029에 대해 "작계 5027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나, 작계 5029는 그런 근거가 없다"며 "과연 지금 이런 작전 계획이 필요한 것일까? 설사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북한, 중국과 의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는 부담을 무릅쓰고 강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고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참여정부서 추진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해서도 "자주국가라면 당연히 작전 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며 "언젠가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작통권도 가지지 않은 나라가 참여한다는 것이 시비꺼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주의는 대결주의의 다른 표현에 불과"... MB 실용.상호주의 정면 비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인 실용주의와 상호주의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을 강조하는 것, 동맹을 강조하는 것,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이런 것은 실용주의인가? 이념주의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연방제 말만 나오면 시비를 걸고, 김정일 위원장의 인품을 묻고, 6.25 전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물어서 시비를 하려고 하는 자세는 실용주의에 맞는 것인가? 실용주의 운운 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 정말 헷갈린다"라고 꼬집었다.

'상호주의'에 대해서도 "'왜 일방적으로 퍼주는가? 자존심도 없는가? 왜 끌려 다니는가? 본때를 보여야 한다.' 이런 비난의 뒤에 '상호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따라온다"면서 "결국 상호주의라는 말은 대결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한덕수 전 총리의 건배 제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잔을 들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신의 '평화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평화를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통일든 평화이든 모두 이념적 성격과 현실적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통일은 이념적 포장이 많은 반면에, 평화는 이념의 포장이 없다"면서 "이제 통일방안으로서, 또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통일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가치로서, 대북정책의 고유한 목표로 설정하여, 평화정착을 위한 전략을 말하고, 평화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 정착에 진전을 볼 수 있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위원장을 맡은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준비위원회' 주최로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이날 기념행사에는 한덕수 전 총리, 김만복 전 국정원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참여정부 핵심인사들과 김상근 전 민주평통 부의장, 김화중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등 10.4정상회담 당시 수행원, 민주.민노.창조한국당 의원 등 각계 35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 대신 홍양호 차관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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