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도 한참을 지나 되돌아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아픈 기억의 역사마저도...

며칠 전 생뚱맞은 ‘원정화 사건’이 불거졌다.
지난 달 27일 수원지검과 경기경찰청, 국군기무사, 국정원경기지부가 합동으로 ‘탈북자 위장 간첩 원정화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이전 사건과는 달리 ‘경찰측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항간에 공공연히 떠돌았다.

그러나 수사결과로 발표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북한 간첩 원정화’는 3류 소설에나 있음직한 해괴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댔고, 결국 우리 정부에서도 그녀를 첩자로 활용한 ‘이중간첩 사건’이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 주부터는 의혹투성이인 이 사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줄을 이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중간첩 원정화 사건’(아직은 혐의 단계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엔 ‘역사 이래 최대의 여간첩(?)’이 저질렀다는 ‘김현희의 KAL858기 사건’이 오버랩되고 있다.

원정화는 공소장에서 1989년 6월경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최룡해 당시 위원장에게 발탁돼 낮에는 사로청 조직부에서 서기로 근무하고 오후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사로청 간부, 돌격대 대대장 등과 함께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지만 북측 사정을 아는 이들에게 허구임이 금방 드러난다.

사로청 조직부 서기라는 직책도 존재하지 않거니와 공작원 양성교육을 사로청에 근무하면서 받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금성정치군사대학 공작원 양성과정에 입교하면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는 특수부대의 위치가 평양 모란봉구역 전승동이라거나 만 15세에 노동당 ‘후보당원’도 아닌 ‘예비당원’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진술 등은 모두 거짓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신분을 입증할 성장과정 자체가 허구이거나 거짓말투성이다. 하물며 그녀가 수행했다는 공작활동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지경이다. 독약과 독침에 성(性)을 이용한 정보수집, 휴대전화를 사용한 간첩활동 보고 등등 어느 것 하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혐의들뿐이다.

특히 구체적 물증은 없고 당사자의 진술만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에선 87년 KAL858기 사건의 주범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김현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김현희도 당시 자신의 주소지를 이미 사라진 ‘평양시 문수구역’으로 진술했는가 하면, 아버지의 북한 외교관 직책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녀가 “어떻게 이 사진을 구했냐고 신기해했다”는 화동사진도 자신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김현희의 진술도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북한 조사국 소속 공작원’으로 남아있고, 자신이 비행기에 두고 내렸다는 폭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당시 안기부에서 불러주는 대로 진술했지만 여전히 ‘비행기 폭파 테러범’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현희와 원정화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신분에서부터 거짓 진술이 난무하고 그녀들이 수행했다는 공작 자체도 믿기 어려운 3류 소설에 가깝다는 점이다.

다른 점이라면 김현희의 KAL858기 실종사건은 87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했다면, 원정화 이중간첩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으로 떠들썩한 간첩사건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김현희가 좀더 미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김현희는 ‘미녀 북한 테러범’이라는 이미지로 미인계를 간접적으로 써먹었다면, 원정화는 직접 ‘성을 도구화’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 AP통신은 미 군정기에 북한간첩으로 활약한 혐의로 1950년 처형된 김수임이 사실은 한국 경찰의 고문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했을 뿐이라며 비밀해제된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를 분석해 보도했다.

6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김수임 사건이 베일을 벗고 있는 셈이다. 물론 87년 발생했던 ‘수지 킴 간첩사건’은 10여년 만에 안기부 작품임이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87년 김현희의 KAL858기 실종사건이 아직도 진실화해위에서 재조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중간첩 원정화 사건’이 얼마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이중간첩 원정화 사건’을 접하며 지난 아픈 역사들이 자꾸만 떠오른 것은 기자 혼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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