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민간 최대의 통일연대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 백낙청)는 8.15광복절 63주년을 맞은 15일 오후 2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8.15민족통일대회’를 갖고 이명박 정부의 ‘건국 60주년’ 비판을 비롯해 총체적 공세에 나서 눈길이 쏠린다.
6.15남측위는 그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에 대해 비판을 자제해오다 산하 부문단체들의 방북이 가로막히자 지난 8일 규탄성명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와 분명한 선을 그었으며, 이날 대회에서는 그 강도가 더욱 강해진 것.
백낙청 “정부 역주행, 근본적 반성을 요구”
개회사에 나선 백낙청 상임대표는 “오늘 제가 기념사를 좀 길게 썼다”며 “운영위원들께서 오늘의 시국에 대해서 여러 대목을 좀 짚어달라는 주문을 하셨고 또 저도 그렇고 싶었다”고 원고에 없는 설명을 덧붙인 뒤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사 전문 보기]
백낙청 상임대표는 먼저 “해마다 정부 주최의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지만 올해는 온통 ‘건국 60주년’을 앞세우며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고”있다며 “저들이 과연 식민지지배를 벗고 광복을 쟁취하려던 민족의 몸부림을 어떻게 생각하고 저러는가 의문이 간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혹시 일제당국처럼 광복운동을 불온시하고 8.15해방을 단독정권 수립을 위한 예비수순 이상으로 안 보는 게 아닌가 묻고 싶은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백 상임대표는 “통일된 독립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단독정부의 생존을 위해 친일세력을 등용하며 끝내는 정권의 대대적인 부정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초기 역사는 세계사의 전진적 대세에 대한 ‘역주행’의 성격이 강했음을 우리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역사인식을 되돌리려는 시도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새 정권은 세계적 대세에 역행하는 또 한번의 ‘역주행’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며 “국내정치에서 저들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민주정부들의 성취는 물론, 20년 넘게 꾸준히 신장되어온 국민들의 기본권마저 독재시절로 되돌리려는 기미를 보인다”는 점과 “노태우 정권 이래 많은 곡절 속에 전진해온 남북 대화와 화해의 움직임에도 급제동이 걸린 상태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세계적 대세를 거스르는 역주행을 해낼 것인지 자문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이 정부가 그럴 실력도 일관된 전략도 없다고 믿는다”며 “무엇보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체험했고 긴장완화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보여준 ‘무서운 경고’를 상기시키고 “이것을 한때의 소나기나 기껏해야 일회성 태풍 정도로 알며 안도하고 기고만장해진다면 이 정권의 앞날은 뻔하다”며 “촛불이 잠시 주춤해지자마자 옛날식 공안정국을 시도하기 바쁘고 KBS 등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초법적 공작이 수행됨을 볼 때, 정권의 안위를 떠나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특히 “오늘날 남북관계의 난맥상도 이 정부의 근본적 반성을 요구하는 대목이다”며 “그런데도 이미 저지른 실수와 과오를 바로잡기는커녕 악수(惡手)가 악수를 부르는 불행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하고 “없는 자는 조이면 결국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게 마련이라는 오만한 착각은 점점 남측의 입장만 궁색하게 만들고 있으며, 드디어는 정부가 민간교류마저 통제하겠다는 최악의 역주행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이처럼 막힐 대로 막혔지만 그 타개책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믿는다”며 “정부가 여러 합의 가운데서도 6.15공동선언이 갖는 독보적인 의미를 인정하면 되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최고위급 합의문서인 10.4정상선언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그 이행방안에 대한 협의에 착수하는 것, 그것이면 된다”고 주장했다.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화해.협력의 시대를 본격화하고 남북의 재통합을 수행하는 일이야말로 국내 민주화를 완성하는 길일 뿐 아니라 광복의 완성이요 건국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북측에 대해서도 금강산 사건과 관련 “유가족은 물론 남녘의 국민들이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한 만큼, 북측도 이들이 납득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아니겠느냐”고 제언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에 대한 순종보다 이른바 보수결집으로 위기국면을 벗어나보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길을 택하는 한, 대북관계에서도 이성적인 자세로 급격히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이 경우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국민적 업보’를 겸허히 시인하면서, 시달리고 고생하며 분투하여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괴롭지만 그것이 곧 ‘시민참여형 통일’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통일운동도 6.15공동선언이 열어준 시민참여의 새 공간을 충분히 인식하며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6.15남측위원회의 조직 또한 유연하고 다양하며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는 6.15남측위원회가 남녘의 민간사회 안에서 얼마만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며 “남북연합 건설사업의 주역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민족대단결.민중대참여의 큰길을 찾아가는 끈질긴 노력이 요구된다”고 촉구했다.
6.15남측위 특별성명, “남북관계 정상화 위한 실질적 조치 취해야"
이날 대회에서 6.15남측위는 특별성명을 통해 백낙청 상임대표가 대회사에서 밝힌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는 방향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고 6.15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특별성명 전문 보기]
성명은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시도는 역사적 명분은 물론이고 헌법적으로도 올바른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며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기도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쟁의 역사와 헌법에 명시된 평화통일의 사명을 부인하고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는 것으로서, 이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성명은 “이명박 정부는 6자 외무장관 회동 등에서 금강산 피격사태를 대북압박용으로 사용하려하는가 하면, 8월중 방북교류를 신청한 민간단체의 방북을 불허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과거의 대결과 반목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남북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연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의 이행을 확고히 다짐하고, 아울러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등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성명은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던 다짐도 버린 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무차별 체포, 연행하고 있으며, 특히 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한국방송과 와이티엔 등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과거 박정희 등 군사정권의 예에서 보더라도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고 스스로 몰락한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되새겨야 한다”고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성명은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화해.협력의 시대를 본격화하고 남북이 재통합하는 것만이 국내 민주화를 완성하는 길이며, 광복과 건국의 완성임을 밝힌다”며 “이명박 정부의 6.15 공동선언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대회 뒤 강경 톤의 대회사와 관련 기자에게 “정부에 대해서 강하다면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 국민도 책임있다고 인정한 거니까 무조건 정부만 규탄하는 그런 식의 강한 연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정부가 워낙 6.15정신을 역행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고,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이 대통령을 뽑은 업보이고 하니까 고생하면서도 더 우리가 분투하는 수 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백 상임대표의 기념사엔 "정부 주도의 60주년 행사나 '건국 60주년'의 개념 자체를 일방적으로 규탄할 생각은 없다"거나 "임기를 갓 시작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실력행사로까지 나서는 일은 온당치 못하다는 인식을 대다수 국민은 공유하고 있었"다는 표현 등이 담긴 것도 사실이지만 작심한 듯 정부에 대한 전면비판과 강력한 경고를 쏟아내 향후 정부와의 관계설정에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