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승리선언 촛불대행진'이 열린 5일, 시민들은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는 이른바 '스네이크 행진'을 하며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였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5일 밤 9시 45분, 59차 촛불문화제가 막을 내리고 행진이 시작됐다.

선두행렬이 서울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종로경찰서를 지나고 있었지만, 태평로에는 숭례문으로 향하는 촛불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서쪽 지역의 인근 모든 도로는 촛불이 수를 놓았다. 촛불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우도록 행진하는 동안, 시민들은 두 곳의 '터닝 포인트'를 지나야 했다.

보신각 사거리와 안국동 사거리. 이 두 사거리는 광화문 진출과 우회의 갈림길이었다.

"차벽으로 가로막힌 세종로 사거리로 갈까? 종로 2가로 갈까?"
"경복궁으로 갈까? 안국역으로 갈까?"


시민들은 청와대 진출을 향한 두 번의 '욕구'를 모두 참아냈다. 보신각 사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쳐 우정국로를 따라 안국동 사거리를 향했고, 경복궁을 애써 외면하고 종로경찰서와 낙원상가를 돌아 시청으로 돌아왔다.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 우체국과 삼청동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는 차벽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벽 앞에선 풍물놀이가 벌어졌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시민들의 토론이 있었다.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차벽을 걷어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도, 소통을 향한 '몸부림'을 '폭도'로 매도하는 소화가루와 '물대포'도 없었다.
수만 군중이 안국동 사거리를 우회하는 동안, 대열을 이탈해 연인의 손을 잡고 차벽을 향하던 이 아무개(35)씨는 "현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워낙 비폭력, 폭력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가 있으니까"라며 이날의 '스네이크 행진'을 지지했다. 그런데 왜 차벽으로 왔을까?

"하지만 아쉬움이 남죠. 기운도 좀 빠지는 것 같고. 사실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와 봤죠.(웃음) 여기에서 물대포를 맞았었거든요. 근데 다시 대열로 합류할 겁니다. 잠깐 보고 가려고요."

시민들과 경찰병력은 이번 주 충돌하지 않았다. 평화적으로 서울시청 광장을 지켜준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공이 컸다. 이날 '국민승리선언 촛불대행진' 역시 평화롭게 진행됐다. 촛불집회가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하다.

그러나 정부여당 안팎에선 평화시위라도 도로를 점거하면 불법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언뜻 '공권력의 엄함을 보여주니 불법과격시위가 없어지지 않았냐'는 인식이 깔린 듯하다.

65일 동안 거리와 광장을 지켜온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쿠데타 정권이 아닌,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게서 받은 상처는 이미 곪기 시작했다. 아픈 상처를 안은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하지 않고, 청와대를 등지고 행진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큰 위기다.

'착각'과 '오해'는 더 큰 화를 부른다.

시민들은 '공권력의 엄함'에 '불법.폭력시위'를 거둔 것이 아니라, '불법.폭력진압'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어쩌면 이날 시민들이 지난 '터닝 포인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지난 주말, 경찰버스 밑에서 날아온 쇠뭉치에 발목을 다친 서송이(26) 씨가 정성스레 적은 편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경찰버스 위로 날려 보냈듯.

▲ 서송이 씨가 경찰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다.[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To. 전경들에게...

힘으로 약한 자를 누르고 그것에 고무되어 즐거워하고 뿌듯해하고... 자신보다 더욱 강한 힘에 복종하고 아무 힘없는 자들에게 자신의 폭력성을 잔인하게 드러내며 당신들은 웃고 게십니까?

그러지 마세요. 당신들도 불쌍하고 우리도 불쌍해요. 당신들이 그곳에서 나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것을 믿습니다. 우리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잘 씻지도, 먹지도 못하시죠? 하지만 그건 우리 탓이 아니라 파란 지붕 밑 대왕쥐 때문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걸 못 막으면 제일 먼저 당신들의 식사로 미친소들이 몰려 올 것입니다. 부디 그곳에서 많이 힘들어도 정신의 건강, 영혼의 건강, 양심의 건강을 지켜내세요. 부디 올바른 정신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회에서 웃으며 만나고 싶은 26세 시민이-"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