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주 이산가족회(회장 김명열)가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남세극(南世極) 선생의 셋째아들이자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의 친척인 남사렬(74.南仕烈) 씨의 영주귀국을 추진하고 있다.
남세극(1882-1943) 선생은 1919년 3월 13일의 룽징(龍井) 만세시위운동 당시 재남만주 조선민족대표 17인 중 1인으로 김약연.구춘생 선생 등과 조선 독립선언서를 발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또한 항일무장단체인 `국민회` 남부지방총회 재무부장으로 있으면서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으로 희생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남 선생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지난 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현재 후손인 남 씨는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한인 동포 집에서 가족도 없이 홀로 살고 있으며, 위 수술 후유증으로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하기도 불편한 상태다.
사할린 이산가족회의 김 회장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 후손이 한국정부의 무관심으로 이곳에 버려지듯 남아있는 것은 4만여 명의 한인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영주귀국이 1945년 이전 출생한 사할린 거주 동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남 씨를 가장 먼저 영주귀국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7월 10일 사할린에 친지 방문을 오는 대창양로원 소속 동포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남 씨가 이들과 동행할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에 정식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남 씨의 러시아 부인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혼자 거주하며, 남편의 한국 정착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남 씨는 `지난해 11월 선친의 유해봉환 안장식을 위해 한국에 갔었는데, 그 때부터 한국에서 살 것을 결심했다`며 `하루 속히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도움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사할린에서 남 씨가 이처럼 어렵게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강제징용된 동포가 아니어서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영주귀국 뿐만 아니라 정부 관련 부처와 협의해서 남 씨가 한국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의 유일한 후손으로 대우받고 살아야할 남 씨이지만 반세기 동안 사할린에서 막일을 하며 노예처럼 산 그의 인생 역정은 기구하다.
룽징에서 태어난 그는 16살이던 1943년 부친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세상을 떠나자 천애 고아의 몸으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만주를 떠돌다 함경북도 청진까지 갔으며, 그 곳에서 호구지책으로 노동자를 자처해 사할린으로 갔다.
그 때 남 씨는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이름을 `조조춘(趙朝春)`으로 바꾸었고, 부두 하역장, 산림 벌목장 등을 떠돌며 힘든 막노동 생활을 했다.
58년 한 러시아인 전쟁미망인과 결혼을 한 그는 사할린에서 점차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고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남세극 선생의 아들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탓으로 귀환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그는 무연고 자만으로 구성된 64번째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95년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국가보훈처는 그가 남세극 선생의 3남임을 확인해 주었다.
한편 남 씨는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의 5촌 당숙이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의 조모가 군성, 군필, 세극 형제의 여동생인 남신필 씨이다. (연합뉴스 왕길환기자 2001/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