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무효화를 위한 촛불시위가 밤을 지새며 이어지고 있다.
국민적 저항은 가히 폭발적 수준이다. 혹자는 87년 6월항쟁을 방불케한다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만 하다.
새로운 과학적 근거 없이는 재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과 한번 맺은 국제적 협정을 되물릴 수 없다는 우리 정부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미국이 국제적 협정을 어긴 사례를 들라면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국가주권과 국민건강이 걸려있는 문제라면 잘못된 협정은 깨끗이 잘못을 시인하고 빨리 재협상에 임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약속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재협상 ‘재’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대미 저자세 외교는 답답하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 100일째인 지난 3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뒤 “미 업계가 자발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자제하는 등 통상마찰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미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약속은 마치 헌신짝 버리듯 취급하면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정책 추진방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한 자료를 내놓으면서 ‘6.15공동선언, 10.4선언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과거 남북간에는 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그동안 남북간에는 여러 차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행되지 못한 것들 많았다”며 “우리는 현실을 바탕으로 상호존중의 정신 하에 남북협의를 통해 실천가능한 합의사항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6.15, 10.4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많은 합의가 잘 지켜지지도 않았는데 굳이 6.15, 10.4선언만 지켜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고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4일 취임후 첫 기자회견을 가진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우리 정부가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겠다 이렇게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거꾸로 새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적도 한 번도 없다.

‘공동’선언이라는 제목이 그러하듯 6,15, 10.4선언은 남측의 일방적 약속이 아니라 남북간 국가 최고 지도자가 전 민족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약속한 것이고, 유엔에서조차 이를 지지하는 결의를 낼 정도의 공인된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앞선 정권의 대북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 약속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몰라라 하는 행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는 그야말로 작은 협정문 하나조차 손도 못대면서, 누구에게는 최고지도자와 맺은 중요한 약속들마저 내팽개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미, 대북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은 실천으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말한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그리워질 판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