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2년 1월 29일 부쉬가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비방한 때로부터 일곱 달 반 뒤인 8월 14일, 워싱턴 디씨에서는 해외망명단체인 이란전국저항협의회(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이란이 비밀핵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이란 정부당국이 중부 산악지대의 나탄즈(Natanz)에서 8m 땅속에 2.5m 두께의 콘크리트 방호벽을 설치하고 지하핵시설을 건설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탄즈는 그 날부터 이란 핵위기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호르무즈해협의 무력침공연습

원래 나탄즈 핵시설에는 1970년대에 제작된 피(P)-1 원심분리기(우라늄농축설비)가 약 3천 기 설치되어 있었는데, 농축속도가 두세 배 빠른 신형 피(P)-2 원심분리기로 교체하는 공사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2003년 2월 10일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 책임자 골람레자 아카자데(Gholamreza Aqazadeh)는 나탄즈에서 핵에너지개발사업을 시작하였다고 발표하였고, 이란 정부당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나탄즈 핵시설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2003년 2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가 이끄는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나탄즈 핵시설 공사현장을 방문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다는 증거도 없고, 미신고 핵시설이 있다는 증거도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06년 4월 8일 나탄즈 핵시설에서는 우라늄농축이 개시되었으며, 2008년 4월 8일에는 6천 기의 피(P)-2 원심분리기를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처럼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의무사항을 준수하면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핵활동을 추진하는데도 그것을 강제로 중지시키려는 방해자가 나타났으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그들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제원자력기구가 나탄즈 핵시설을 방문한 뒤 핵무기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자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이란에게 압박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해외첩보작전부 안에 중앙정보국장이 직접 지휘하는 이란전담반을 설치하고, 2005년부터 이란의 핵기술자와 군부인사를 해외로 망명시키거나 납치하는 ‘두뇌배출(Brain Drain)’이라는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다. 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이란을 고립, 압살하기 위한 국제제재조치를 해마다 단계적으로 강화하였다. 유엔안보리는 2006년 12월 제1차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고, 2007년 3월 제2차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으며, 2008년 3월 제3차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제3차 제재결의안에는 제3국 은행과 이란은행의 상호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이란 항구에 드나드는 모든 선박을 검색하는 강제조치가 들어있다. 또한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니컬러스 번스(R. Nicholas Burns)와 재무차관 스투어트 레뷔(Stuart Levey)는 유럽동맹국을 돌면서 이란에서 기업을 철수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금융제재와 선박검색은 선전포고로 넘어가기 직전에 취하는 압박공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군에게 나탄즈 핵시설을 겨냥한 대규모 침공연습을 실시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명령에 따라 2007년 2월 19일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들인 존 스테니스호(USS John C. Stennis)와 드와잇 아이젠하워호(USS Dwight D. Eisenhower)가 페르시아만에 동시에 배치되었다. 2007년 5월 23일 밤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와 와스프급 수륙양용 공격함 본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가 이란과 아랍에미릿연합 사이에 있는 폭 33km의 호르무즈해협에 나타났다. 이란에 대한 위협이 무력침공 직전까지 이른 것이다. 핵추진 항공모함 전투단을 이란 앞바다에 배치하는 무력침공연습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으니, 명백하게도 그것은 나탄즈 핵시설을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하려는 군사적 대안(military option)을 노린 것이었다.

이러한 무력침공위기를 조금이나마 늦춰준 것은, 미국의 16개 국가정보기관들이 작성하여 2007년 12월 3일에 공개한 국가정보평가서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2003년 말 핵무기개발사업을 중지하였는데, 우라늄농축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2010년에서 2015년에 이르는 기간에 가서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쉬는 이란이 핵무기개발사업을 중지했다는 국가정보평가서가 언론에 공개된 이튿날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서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안을 여전히 고려하고 있다”고 공갈하였다.

녕변 핵시설을 왜 지상에 건설하였을까?

이란이 이스라엘군이나 미국군의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에 대비하여 나탄즈 핵시설을 지하에 건설한 것과는 정반대로, 북측은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을 지상에 건설하였다. 다른 전략거점들을 모조리 지하에 건설하였던 북측이 왜 녕변 핵시설만은 지상에 건설하였을까? 그 까닭은, 조미정치회담을 한사코 거부해온 미국을 핵협상 담판으로 끌어내기 위한 대미공세거점을 미국의 첩보위성에서 잘 내려다보이는 지상에 건설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 북측은 녕변 핵시설에서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과 자체로 개발한 기폭장치를 결합하여 핵무기를 개발하였으며, 지하핵실험까지 실시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녕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군사작전의 유혹을 느낀 것은 당연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녕변 핵시설을 없애버리면 핵확산 위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으며 핵테러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실제로 1993년 초와1994년 늦은 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녕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군사작전을 논의하였다. 북측이 핵시설에 대한 강제사찰을 단호히 거부하자, 외과수술식 정밀폭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하는 군사적 대안을 검토한 것이다. 당시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는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으며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나, 만일 유엔안보리 제재가 북(조선)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떠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학자협회(FAS) 핵정보조사부장 한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기밀해제한 문서에는 미국군이 북측의 지하군사시설을 전술핵무기로 파괴하는 모의핵타격훈련을 1998년에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들어있다고 한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과 인민보안성은 녕변 핵시설을 3중방어망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2002년에 인공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한 미국의 군사문제 연구기관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는 녕변 핵시설 주위에 대공포가 22문 이상 배치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타격오차범위가 불과 5m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밀유도무기를 집중발사하여 이라크의 전략거점들을 파괴하였던 미국군의 작전능력을 생각하면, 그들이 정밀유도무기로 녕변 지상핵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1994년 5월 18일 오전, 미국 국방부 회의실에서는 국방장관 페리, 합참의장 샐리캐쉬빌리(John M. Shalikashvili), 주한미국군사령관 게리 럭(Gary Luck)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지휘관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전면전을 준비하기 위한 작전회의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994년 6월 16일 오전, 백악관 각료회의실에서는 대통령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한(조선)반도의 핵위기에 대응하는 최종결정을 내리는 전략회의였다. 그 회의에서는 5월 18일에 열린 전군지휘관 비상회의가 채택하여 제출한 전쟁준비보고서가 검토되었다. 미국군 증파병력 40만 명에게 출동준비태세를 명령하고, 두 개의 항공모함 전투단을 동해에 급파하고, 정밀유도무기를 장착한 전략전폭기들을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집결시키는 문제 등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쟁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핵위기에 대응하는 방향을 녕변 핵시설에 대한 파괴공작에서 동결공작으로 바꾸었다. 1994년에 전군지휘관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전면전을 준비하는 군사작전계획을 검토하였던 윌리엄 페리는 그로부터 4년 뒤인 1998년에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어 이른바 ‘페리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는 조미정치회담을 통해서 녕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최종적으로 자진해체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과 북측에 대한 경제지원을 통해서 중장거리미사일을 폐기하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을 담은 전략보고서를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다. 미국이 북측을 외교적으로 승인하고, 핵위협 포기를 문서로 보장하고, 해외기업의 투자를 허용하는 내용이 그 전략구상에 들어있음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녕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정밀타격작전을 포기한 까닭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체르노빌형 방사능 참사를 우려하였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실제로 미국군 지휘부는 녕변 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파괴할 경우에 예상되는 방사능 피해상황까지 전문기관의 컴퓨터모의실험을 통하여 알아보았는데, 완전가동 중인 흑연감속로 두 기를 모두 파괴하는 경우 방사능 오염범위가 400-1천400km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체르노빌형 방사능 참사를 우려하여 녕변 핵시설을 파괴하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미국군의 정밀타격능력은 방사능을 확산시키지 않고서도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군사기술적 수준에 이르렀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현재 하버드대학 교수인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는 200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방사능 오염을 확산시키지 않고서도 녕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정밀타격작전을 자신이 국방장관 페리에게 1994년 5월에 보고했었노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군사적 대안을 포기한 진짜 이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군사적 대안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북측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강군대로 자처하는 미국군, 1970년대부터 30년이 넘도록 한미합동군사작전으로 북침연습을 계속해온 한국군,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지출하는 일본자위대는, 조선인민군과 맞서는 3 대 1의 정면대결을 피하는 것이다. 그들이 3 대 1의 정면대결을 피하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1994년 6월 16일 게리 럭이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된 전쟁평가서에 따르면, 개전 초기에 미국군 8-9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미국군이 8-9만 명이나 죽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조선인민군이 전격전을 벌인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작전계획 5027-98’은 한미연합군이 조선인민군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어전을 벌인 뒤에 반격하는 식으로 여섯 달이나 걸리는 단계전을 상정한 것이지만, 조선인민군의 작전계획은 전면적 기습공격과 집중적 연속타격으로 개전 초기에 전세를 결정짓는 전격전이다. 미국군 해병대사령부 산하 군사정보반이 1997년에 조선인민군 작전계획을 분석한 자료를 미국과학자협회(FAS)가 1999년에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군사작전계획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방어전술은 아예 없고 기습(kick)과 돌격(rush)을 배합한 이른바 ‘킥 앤드 러쉬 전술(kick and rush tactics)’만 구사하는 속전속결의 공격전이라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에게 방어전술이 없고 공격전술만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격전에서 작전능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전쟁지휘부의 담력이다. 기동전이 무기성능에 의존하는 평범한 공격전이라면, 전격전은 무기성능이 아니라 담력으로 단행하는 특별한 공격전이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난공불락이라던 마지노방어선을 우회돌파하고 여섯 주만에 승리하는 바람에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전쟁신화가 생겨났지만, 실제로 당시 독일군의 작전은 전격전이 아니라 기동전이었다. 전쟁사가의 평가에 따르면, 독일군은 육탄공격을 각오할 만큼 사상정신적으로 무장한 군대가 아니었고 작전계획도 평범하였는데, 다만 무선통신, 전차, 항공기의 3자 작전능력을 배합하여 기동전의 효과를 크게 높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와 다르게, 조선인민군은 사상정신적 무장을 가장 중시하면서, 미국군에게 공격을 집중하는 전격전 작전능력을 길렀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열중 쉬엇 차렷 배울 때쯤 제대하는” 한국군이 아니라, “공화국 남반부를 강점한” 미국군이 그들이 상대하는 주적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을 종합하면, 그들이 주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발전시켜온 전술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최전방에 배치한 대구경 장거리포에 장착한, 인체에 무해한 특수화학탄을 목표지점 상공에 집중발사하여 형성한 화학가스구름이 군사위성과 지상군사통신망 사이의 전파교신을 차단하면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작전지휘통제장비(C4I)가 마비되고, 지휘통제를 받지 못해 전방만 주시하는 한국군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공중과 지상과 지하, 그리고 해상과 해저에서 입체적인 고속기동으로 한국군 작전구역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평택, 오산, 군산, 진해의 주한미국군기지를 기습공격으로 제압하는 한편, 요꼬스까(해군), 오끼나와(해병대), 괌(공군)의 미국군기지를 각종 장거리 미사일로 한꺼번에 연속타격하는 전격전 씨나리오로 전개되는 것이다.

연합뉴스 1998년 9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육탄정신과 자폭정신으로 훈련된 특수전 병력 10만 명을 이미 보유한 조선인민군이 육탄공격을 담당할 새로운 저공기습부대 자원병을 1998년 초에 모집하자 지원자가 수만 명이나 몰려들었다고 한다. 미국군 정보기관이 놀라는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미사일발사훈련은 전격전 공격전술을 연마하는 군사훈련의 일부이다.

결국 조선인민군의 전격전을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군사적 대안을 접고 정치적 대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탄즈와 녕변을 비교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추진하는 대이란전략과 대북(조선)전략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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