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5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벌였던 3보 1배에 동참한 이시우 작가가 3일 홀연 단신 경기도 파주 임직각을 향했다. 배낭하나 메지 않고, 3보 1배로.
이날 오후 임진각으로의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이 작가가 머물었던 노상천막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잠자리와 먹을거리 계획도 없이 임진각을 거쳐 군사분계선을 따라 고성까지 가려고 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부산을 향하겠다고.
"새벽이 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다 마지막에 잠드는 것 같다"

"백이면 백 다 말리는데, 지금 상황은 조직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상회담에서도 국가보안법을 언급한 마당인데도 분위기가 없다. 조직적으로 힘들다고 할지라도, 시대가 던진 책무인데... 정상회담에서 국민에게 주제를 던져준 셈인데, 받는 사람도 없고, 조직도 안 되고... 그러나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언제 만들어 질 수 있나? 최소한 그런 것을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선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보안법 문제는 다음 정부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 보안법 폐지를 고려하지 않고, 시민사회에도 동력이 없다. 이 작가가 밝힌 3보 1배로 임진각까지 가는 무모함의 이유다.
이 작가는 지금의 상황을 "새벽이 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새다가 마지막에 잠이 드는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문화' 됐다던 보안법이 '기승'을 부린 지 이미 오래. 정상회담 이후의 정세는 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더 없는 정세라는 평가지만,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침묵'이다.
이 작가와 몇 마디 나누고 있자, 이내 천막안으로 낯익은 이가 들어섰다. 흰 수염에 삼베 옷을 입고 국회 앞 3보 1배에 함께 했던 오철근(59)씨. '비폭력평화물결'의 회원이라는 오 씨는 이 작가와 2003년 강화도에서 처음 만났다고.
"강화도에서 4-5명을 지도하기 위해서 500페이지 분량을 다 복사해서 주고, 저녁에 막차를 놓치면 강화대교에서 4-5시간을 걸어 다니고... 그런 것 보면서 좋아하게 됐다. 이 선생으로부터 상대방을 끌어안는 법을 배웠다. 이 선생은 가슴에 다는 문구도 ‘국가보안법에 대한 명상’이다."
함석헌 선생을 모셨다는 오씨는 1979년 처음 함 선생과 인연을 맺어 1989년 그의 임종까지 지켰다. 오 씨는 "생각과 행동이 같은 사람은 함 선생님 이후 이 선생님이 처음이다"며 이 작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거듭 전했다.

2003년 이 작가를 통해 유엔사와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된 이후, 국회 앞에서 두 사람은 '국가보안법'을 인연으로 다시 조우했다.
"헌법 위의 법으로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이자 반평화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두고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각계원로 및 대표인사 선언문' 中)
평화운동을 해 오던 오 씨가 보안법 폐지를 위한 3보 1배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인터넷을 통해 선언문을 읽게 되고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도 인연을 갖고, 지금까지도 3보 1배를 하고 있다.
임진각으로 떠난 다는 것에 가족들이 뭐라고 했는지를 이 작가에게 묻자, 오 씨는 "저번에는 미안함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오셨다고 했는데... 미안할 만도 하다"며 이 작가의 마음을 대신 전해본다.
이 작가는 아들 우성이 "혼자 밥도 해 먹을 줄 아니까,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며 미안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

이 작가는 유엔사에 이어 국가보안법에 이렇듯 천착하게 된 것이 지난 번 구속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해서는 큰 멍에를 지고 있다. 구속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 이런 것을 찍지 말아야지, 이런 글은 쓰지 말아야지..."
이 작가가 긴 고행의 길을 떠나는 두번째 이유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해서 한 사람만이라도 얘기를 해야 한다면 자신이 해야겠다는 것과 함께 보안법의 '무서움'을 고스란히 느꼈던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가 말한 양심과 실존의 문제가 이것이리라 짐작케 한다.
그는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말에 적용된다"며 "모두들 '말도 안되는 법'이라고 치부하지만 결론적으로 피하는... 체제의 일부가 돼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들 마음 속에 교묘히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 40분, 주변의 걱정과 만류를 뒤로 하고 이 작가는 천막을 나서 국회를 향해 3보 1배를 시작했다. 얄궂게도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한 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이 작가의 몸짓. 그가 사색에 잠겨 있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