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재정경제부는 등록금 후불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1년에 12조 정도가 등록금이라고 한다)로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후 재경부가 MBA, 의학대학원, 로스쿨 등 졸업 후 상환할 여력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먼저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아마도 내년 상반기까지 등록금 문제를 둘러 싼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등록금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참고로 2006년 3월 전국교수노조의 성명을 첨부함). 그러나 감각적으로 이를 둘러 싼 갈등이 향후 우리 운동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운동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적절한 선도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재정경제부에서 시행하자고 하는데 정작 교육부총리가 재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사례는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김신일 부총리의 발언 직후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가 조직되었어야 한다.

선도적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대중의 관심사를 촉발하고 운동의 동력을 형성하는 차원에서 유효한 전술이다. 특히 대중의 공감대가 높은 사안의 경우 선도적 문제제기는 피해는 적으면서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낸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둘째, 운동의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우리 운동의 모범적인 사례의 하나는 2002년 11월 농민들이 벌인 30만 대항쟁(실수 13만 명 참가)이다. 이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 농민운동은 근 1년간을 조직한 바 있다. 밑으로부터의 충분한 공감과 참여를 위해서는 정세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중의 준비정도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고민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의 경우 내년 신학기가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도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시급히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셋째,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는 기동성 있는 소단위를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 설득력, 정책적 우위를 갖는 것은 운동 승리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에 위 소단위별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꾸준한 선전홍보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경우 적극적인 행동전도 필요하다.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전국교수노동조합 소속 교수들은 ‘등록금 없이 공부하는 대학 만들기 1000+1000Km 국토대장정’이라는 기치 하에 교수노동조합 합법화와 등록금 후불제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하여 6월 7일 부산․순천 그리고 6월 13일에는 태백을 출발하여 6월 27일 여의도 국회 앞까지 3개 노선에서 21일 동안 연일 도보 행진”하였다고 한다.(인터넷 뉴스 참세상에서)

넷째, 사회운동과 결합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등록금 문제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500만~1000만원하는 등록금을 낼 수 있는 학부형들이 많지 않다. 따라서 여러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가능한 사안이다. 주력해야할 집단은 다음과 같다.

위의 교수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이 첫째 대상이다.

민주노총, 전농 등 사회단체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에 지금부터 학생 대표들이 이들 단체들에 대한 방문하여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학생운동의 최대 결점의 하나는 자신들이 준비하고 나서 생색내기 형식으로 지지와 후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소극적인 찬성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내년 초, 학생들이 싸울 때 민주노총, 전농 등으로부터 단순한 지지성명을 뛰어넘는 보다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386세대와의 결합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386세대의 윗세대 자제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가 되었다. 이에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는 386 아버지들의 모임’ 따위를 건설하고 이에 개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지역사회단체와의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학 등록금에 대한 체감도는 서울과 지방이 다르다.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 취업 문제 등이 결합되어 서울과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 운동은 지역단위로 오랜 기간의 운동성과를 축적해 온 바 있고 상당한 정도의 내공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끼리 고민하기보다는 가령 지역 민주노동당, 진보연대를 방문해 지금부터 도움과 지지를 요청해 둘 필요가 있다.

40~50대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도 필요해 보인다. 가령 40~50대 중년 아주머니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비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결합은 운동의 대중적 지반을 넓히고 공동연대 전선을 확대하는데 유력한 길이다.

끝으로 운동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 지적할 문제가 있다.

첫째, 운동의 의제를 설정하는 원칙에 대한 문제이다.

운동의제는 정세를 중심으로 설정할 수도 있고 주체를 중심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 물론 양자를 긴밀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지금은 후자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유효하다. 가령 등록금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등록금 문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쟁점화될 것이라는 정세적 판단과 함께 대학생들을 진보진영으로 견인해야 하는 운동적 필요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등록금 문제는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의 하나인 청년실업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현재 우리 운동은 지나치게 ‘정세가 이러저러하니 무엇을 가지고 싸우자’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운동은 정세를 따라가기 급급하고 운동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 사람을 남길 수가 없다. 따라서 운동의 주체를 중심에 두고 이들이 고민하는 의제를 중심으로 운동과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개량화될 가능성이다.

부동산(반값 아파트), 유류세, 카드수수료 인하 등 대중의 민감한 주제가 되었던 여러 문제들의 경우, 대중의 잠재적 분노가 누적되는 가운데 정치권이 후에 결합하면서 기만적으로 해소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문제에 운동진영이 효과적으로 개입할 경우 운동진영의 대중적 위신도 높이고 정치권의 개량화 시도도 저지할 수 있다.

등록금 후불제를 둘러 싼 논쟁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학생들은 우리 운동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정치권이 학생들의 요구를 기만적으로 수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운동진영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참고> 등록금후불제 쟁취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교수서명운동에 돌입하며

대학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학당국과 학생회의 갈등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이 진리를 갈구하며 진지한 토론을 전개하여야 할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폭을 놓고 충돌하는 것은 서로에게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상황은 이러한 갈등을 매년 되풀이하도록 되어 있다. 대학의 수입은 대개 학생등록금.기부금.전입금.국고보조.연구비수주 및 기타수입 등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의 사학들은 재단전입금이 거의 없으며 기부금도 많지 않은데다 정부마저 사학에 대해 지원을 하지 않아 수입의 대부분을 학생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학이 당면한 재정수입구조의 문제는 전입금을 부담하지 않는 사학재단의 책임과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사학의 연간 운영수입 가운데 불과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의 경쟁력강화를 강조해온 국가가 알고 보면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도국인 말레이시아의 대학생들보다 훨씬 작은 교육비로 유지되는 교육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일인당 공교육비는 미국이나 덴마크는 물론, 이웃인 일본의 초등학생 일인당 교육비보다 작다. 여기에 실패를 거듭해 온 정부의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이 우리의 대학을 생사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결과, 생존경쟁으로 몰린 대학들은 다시 고비용의 소모적 출혈경쟁을 하게 되었고 이는 대학운영비의 대폭 상승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우리나라의 사립대학들은 대학의 운영경비를 주로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등록금 인상폭을 놓고 매년 학생들과의 갈등을 되풀이 해왔던 것이다. 사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임금인상률보다 엄청나게 높은 등록금인상률에 고통을 받아 왔으며 저소득층가계에 커다란 부담이 되어 왔다. 등록금과 생활비의 부족으로 학업을 중단한 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한 학생들이 군에 입대하기 위해 긴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아르바이트자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야 하는 것이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이제 이러한 잘못된 구조가 해소되고 가난한 집안 출신의 학생들도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 학비부담 때문에 진학을 못하거나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매년 반복되는 학생회와 학교 측의 갈등도 사라져야 한다. 보직을 맡은 교수와 학생회를 대표하는 학생이 등록금의 액수를 놓고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생각하는 신뢰의 사제관계가 되어야 한다. 바로 국가의 대학교육비 지원을 늘려 민간부담을 감소시키는 정책이 정답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등록금후불제를 제안한다. 대학에 다니는 기간에는 일체의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고, 졸업을 하고 난 후 일정한 연봉을 받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을 때 졸업자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등록금 인상시비에 따른 사제관계의 훼손과 저소득층출신학생들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한다면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 제도는 1989년 호주에서 처음 도입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스코틀랜드에서도 실시중이며 금년부터는 잉글랜드의 대학들도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법률이 제정되었다. 지금 현재 많은 국가들이 이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중에 있다.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재정적 지원체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제도를 완비하기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도기적으로 먼저, 실질빈곤층 출신의 대학등록금 전액 국가부담제를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돈이 없어서 대학에 다니지 못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대학등록금을 출신지자체에서 부담해 오다가 지난 1998년부터 수업료제도를 도입한 잉글랜드의 경우에도, 전체 대학생의 43%에 달하는 학생들이 학비부담 없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 미국의 주요한 사립대학들도 연간 소득이 4만불정도에 달하지 못하는 가계출신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재정적 요구도 하지 않는다. 대학교육비를 국가가 완전히 부담하는 많은 유럽국가들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실질빈곤층출신 학생들의 등록금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라. 이번 학기에 이미 받은 등록금은 즉각 돌려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립대학 교직원 인건비 국가부담을 통한 사립대등록금 인하를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사립대 재학생들과 국공립대 재학생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교육의 내용이나 질은 물론 대학생활에서 거의 동일하며, 졸업 후 유사한 직장에 취직하여 모두 자신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청년들이다. 그러나 사립대학 학생들은 국공립대 학생들에 비해 훨씬 높은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다. 이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은 사립대학 교직원들의 인건비를 국가가 부담하고 그만큼 사립대 재학생들의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립대등록금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등록금후불제로서 대학교육체계의 혁명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국립대법인화와 기성회비 편법인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첫째, 극심한 양극화 현상과 이를 부채질하는 엘리트형 교육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둘째, 수도권대학-지방대학, 국립대학-사립대학, 4년제대학-2년제대학간 서열화모순을 안고 있다. 셋째, 국가의 공교육비 지원축소가 초래한 학부모부담의 가중이 대학 내에서 심각한 갈등을 낳고 있다. 넷째, 교육과 연구경험이 부족한 교육부 관리들이 정책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KDI, KEDI,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보수성향 기관들이 보수언론의 지원에 힘입어 시장주의 교육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최고 수준의 교육시장주의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이는 사학의 비중이 과대하게 크고, 의무교육연한이 짧으며, 공교육비의 국가부담 비율이 가장 낮은 한편,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미비한데다 소득대비 수업료 수준은 아주 높은 가운데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에서 잘 증명된다.

이제 우리 대학교육의 반민중성을 타파하고 대학교육이 진정 국민 대다수를 위한 공공영역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등록금후불제 쟁취와 고등교육의 공공성강화를 위한 국민서명운동’에 들어간다. 우리 교수노조는 비록 법적인 지위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보유한 전문역량을 동원하여 우리사회의 개혁을 이루는데 기꺼이 동참하려는 몸짓이다. 또한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이 땅의 고통 받는 노동형제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등록금 문제의 해결을 넘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일대혁명과 발전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들의 호응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2006년 3월 3일
대학자치! 교육혁명! 우리학문!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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