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통일의 상호관계는 우리 운동의 중요한 화두의 하나이다. 필자 또한 줄곧 통일운동에 열중하면서 이 문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핵심 주제였다. 아래에서는 변혁과 통일의 문제를 몇 가지 지점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첫째, 통일이 되면 남측의 사회경제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통일운동의 노(老)선배들에게서 자주 듣는 회고담 중에 5.16 쿠데타 직전에 있었던 1961년 5.13 집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1960년 4.19 학생운동에서 시작된 운동은 60년 하반기부터 통일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정점에 있었던 것이 5.13 집회와 시위라는 것이다.

이 회고담에서 필자가 흥미 있게 보았던 점은 당시 서울 빈민들이 이 시위에 대거 합세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제 상황으로 보면 남의 경제재건과 남북경제협력은 대단히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고 이 연관관계가 서울 시민들의 참여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 이후 남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남은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었고 북은 사회주의의 길로 접어든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나타난 통일론이 연방제이다. 상호 경제체제가 다른 조건에서 통일과 함께 경제체제를 통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모진 탄압에도 연방제론이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통일이 된다고 해서 남에서 제기되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다. 이미 분단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고 남북의 경제력 차이도 상당하다. 통일과 사회경제적 과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통일을 통해 남의 경제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를 현실에 맞게 구체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필자가 노동자, 농민 등과의 만남에서 현실적으로 접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통일과정에서 남측의 정치지형이 변화하면서 사회경제적 변화의 정치적 동력을 형성하는 것, 둘째는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상호보완적인 균형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 셋째는 남북경제협력이 더 큰 지역적 협력 가령 남.북.러를 연결하는 에너지.교통 연결이랄지 북일수교와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등이다.

먼저, 분단과 통일의 문제가 주로 정치군사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경제협력으로 남북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관심과 시야를 정치적인 측면, 남북을 뛰어 넘는 범지역적인 측면으로 확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따라서 조국통일의 필요성을 남북이 얻게 될 경제적 이익으로 설명하는 류(類)의 설명은 축소되어야 한다.

두 번째, 반외세운동에서 정치군사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할까?

분단과 통일의 문제는 주로 1953년 정전체제의 운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본질적으로 정치군사적인 문제이다. 조국통일운동이 주로 정치군사적인 측면의 반미.반외세 운동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IMF 이후 경제적인 측면의 반외세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1998~2005년 무역수지 흑자 총액이 2078억 불인데 비해 같은 기간 외자가 주가 차익으로만 벌어간 돈이 181조 원(1불을 1000원으로 대충 계산하면 1810억 불)이다. 무역수지 흑자의 90% 정도가 빠져나간 것이다.

2002~2006년간 주요 시중은행이 외국인에게 배당금으로만 지급한 금액이 3조 3천억 원이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2006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1조 5천 260억 원)의 2배로 현대차가 수출을 통해 2년 동안 벌어들인 순익을 은행들은 5년 동안 배당금으로 해외에 송금했다는 의미다.”(연합뉴스 11.1자에서) 국민은행의 경우 2006년에만 1조 152억 원을 외국인에 배당했다.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차익(5조 원 규모)과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유력 인사들과 함께 벌인 행태는 이른바 외자와 외자 순기능론이 갖고 있는 허구를 잘 보여준다.

이들 사안은 이미 제도권 언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고 대중적 공감대도 넓기 때문에 반미 운동을 확장하는데 효과적인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사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이 정치군사적인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사고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차원의 반미는 단순히 반미운동이 유용(?)하다는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 만큼 한국사회에서 외자가 갖는 폐해가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현 시기 조국통일운동과 사회변혁운동 중 어느 쪽을 중시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조국통일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은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은 일반론일 뿐이고, 구체적으로는 현 시기 우리 운동에서 어느 쪽이 부족하고 어느 부분에 보다 관심을 쏟아야 하는가는 현실 역관계에서 판단해야 한다.

주지하듯이 조국통일정세는 바야흐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가까운 몇 해 안에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더구나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조국통일정세는 남측 정치지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의 대결에서 이명박이 승리한 것, 대통합신당의 경선이 무사히(?) 마무리된 점,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보다는 무언가 다른 정세가 예고되고 있는 점 등 조국통일정세의 진전은 남측 정치지형의 변화를 밑으로부터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조국통일정세의 진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남에서 자주와 통일에 동의하는 다수 대중의 공감과 지지 그리고 그에 부응하는 정치세력의 성장이 없다면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민중운동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며 친미보수세력을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조국통일운동과 의식이 약한 것이 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가? 아니면 조국통일정세가 급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중정치역량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후자이다. 조국통일정세가 급진전하고 있음에도 서민대중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절망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조국통일문제는 ‘순수한’ 민족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대중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야 한다. 조국통일운동이 열혈 청년학생이나 고매한 이상을 가진 선각자의 과제가 아니라 무지렁이 대중이 함께 따라 외치는 민중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방 공간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민중의 비원이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의 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조국통일운동 안에 고단한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어야 한다.

2007년의 정세는 1987년 6월항쟁의 기세를 타고 분단 철벽을 혈혈단신으로 뚫어야 했던 89년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도보로 분단경계선을 넘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국통일이 남측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서민대중과 어깨 걸고 조국통일운동의 대중적 지반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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