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9월 노동자 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급속히 발전해 왔다. 이 발전을 주도해 온 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20년이 된 지금 대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는 그 실태와 원인에 대해 지적해 보겠다.

먼저 대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한국노동연구원이 1989년과 2007년을 비교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의식조사로 본 노동 20년”, 오계택으로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함) 다음과 같다.

노사협상 실패 책임을 묻는 설문에 대해 사용자 책임이라는 응답은 24.9%에서 9.3%로 낮아진 반면 노조 책임이라는 응답은 3.3%에서 13.4%로 높아졌다. 근로자 요구조건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매우 정당, 정당’하다는 의견(10.9%, 56.1%)이 67%에서 41.3%(매우 정당 1.4%, 정당 39.9%)로 낮아진 반면 ‘과도, 매우 과도’하다는 의견은 32.4%(과도 30.5%, 매우 과도 51.3%)에서 57.1%(과도 51.3%, 매우 과도 5.8%)로 높아졌다. 그밖에 기업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는가?, 노동조합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 등 대부분의 설문에서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노동조합 중점 활동에 대해 현재는 근로조건 개선 59.5%, 고용안정 13.6%, 취약계층 보호 9.7%, 제도개혁 3.8%, 정치활동 11.8%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판단한 반면 향후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문항에 대해서는 근로조건 개선 11.2%, 고용안정 32.6%, 취약계층 보호 32.7%, 제도개혁 21.2%, 정치활동 1.1%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의 노동조합 활동이 근로조건 개선과 같은 조합적 요구에 맞춰져 있다고 본(59.5%) 반면 앞으로는 ‘고용안정, 취약계층 보호, 제도개혁’ 등(각각 32.6%, 32.7%, 21.7%, 합 87.0%) 낮은 수준의 사회적 활동(?)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11.8%가 현재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 반면 향후 노동조합이 관심을 두어야 할 분야 정치활동은 1.1%로 낮아지고 있다.

이는 향후 노동조합이 조합의 이익보다는 사회적 활동을 지향하되 지나치게 높은 정치적 요구보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활동에 주력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대기업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다소 충격적인 보고는 2006년 비판사회학대회 “경제위기 이후 10년 한국사회의 변동과 전망”에서 김원(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씨가 발표한 논문, ‘한국 대공장 노동조합의 사회적 고립:울산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에 소개되어 있다.

위 논문에서 김원 씨는 “‘붉은 조끼’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조합원들을 가리키는 모멸적인 단어이다. 과거 붉은 조끼는 전투적 노동조합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조끼의 의미가 변했다. 바로 울산에서 특권을 유지하는 남성정규직 조합원을 상징하는, 속칭 ‘대공장 노조 이기주의’의 표현이 붉은 조끼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노동자는 1987년 900만(경제활동인구의 54%)에서 현재 1500만을 넘어 섰다. 자영업자와 학생들에서 노동자 친화성이 높아지고 실업ㆍ반실업 대중 다수가 노동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자 구성 비율은 보다 높아질 것이다.

반면 1000명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외환위기 이전에 10%를 넘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그 절반 수준인 5%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이 준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인데 이는 결국 노동조합 조직률과 근로조건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IMF 이후 한국경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이다. 대기업은 높은 수익을 바탕으로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 노동조합에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반면 비정규직, 실업ㆍ반실업으로 내몰린 노동대중은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이 고스란히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노동자 사이의 차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조직된 노동자들과 여타 계급계층과의 격차이다. IMF 이후 특징적인 양상은 농민의 몰락, 자영업 기반의 붕괴, 20대 청년실업 등 전 계급계층에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점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계급계층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 김원 씨의 연구에 따르면 “본 연구의 설문 결과에서 ‘요즘처럼 불안한 시기에는 가능한 많이 벌어놓는 게 상책이다’라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18.3%), 조금 그렇다(36.2%)라는 의견이 전혀 그렇지 않다.(3.9%), 별로 그렇지 않다.(13.5%)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위 자료에 따른다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현 상태는 노동귀족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소시민(?)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권익을 지키려는 모습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든 학생회든 고유의 자기 역할과 함께 전체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재규정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IMF 이후 대기업 노동조합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저항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몇 안 되는 집단이었다. 위 설문조사에서 보듯 국민대중은 고용안정, 취약계층 보호와 같은 사회적 활동에 노동조합이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는 반면 노동조합이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대다수의 국민대중, 사회적 약자들이 현실적인 힘을 가진 기업과 기업논리에 함몰되었고 이 결과 역으로 대기업 노동조합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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