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후반 계급론, 계급분석이라는 영역이 있었다. 각계각층의 처지와 생활조건을 고려하여 운동의 동력과 대상을 편제하는 이론 영역으로 운동의 과학성, 전망을 밝히는데 대단히 중요한 분야이다. 최근에는 지식인 집단에서 이런 류의 실천적 분석 대신 몽상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이론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실천과 이론이 분리되고 80년대 중후반의 계급분석을 지금도 은연중에 차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씨는 ‘대안주체’라는 주제로 각계각층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필자는 김병권 씨의 분석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병권 씨의 분석은 시대를 앞서는 독창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사회변화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에 가깝다.

그 만큼 김병권 씨의 분석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객관 사실이다. 김병권 씨의 글을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9.15 대안캠프에서 배포한 비매품 “새사연 대안캠프” 또는 홈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10월 중에서 대안주체라는 주제로 책이 발간된다고 한다) 아래에서는 위 비매품 자료를 기본으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태로 논의를 진행시켜 보겠다.

김병권 씨는 한국경제를 ‘최신의 주주자본주의’라고 표현한다(단어에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 최신의 주주자본주의란 자본주의적 발전을 유예하려는 일련의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이는 계급분석에도 뚜렷히 드러난다.

87년 900만(54%)이던 노동자는 현재 1500만명(65%)로 발전했다. 노동자의 구성 또한 제조업 노동자의 비중이 축소하고 서비스업, 사무전문직 노동자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노동자의 양적 성장과 구성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명백한 변화의 징표이다.

노동자의 비중, 노동자의 구성이 바뀐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여타 계급.계층의 처지에서도 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농민의 감소이다. 200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취업인구 2315만명 중 농업인구는 200만으로 10%를 넘지 못한다. 노동자의 비중이 65%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농민 구성의 이러한 변화는 농민운동의 중요한 변화를 낳고 있다. 즉 농민운동이 안전한 먹거리, 생활협동조합, 학교급식네트워크 등과 같은 도시민, 도시의제와 결합하여 농민운동의 활력을 도시로부터 빌려(?) 오고 있는 것이다.

소상인의 변화도 중요하다. 위 자료에 따르면 소상인의 숫자는 무려 600만명이 넘는다. 김병권 씨는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인은 농민 330만명과 대학생 300만명을 합친 숫자와 맞먹고 제조업 종사자 416만, 건설업 종사자 180만을 더한 규모 정도”라고 쓰고 있다.

소상인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소상인의 처지인데 이전 시기 소상인은 임금노동자보다 소득이 높은 소자산계급으로 분류되었다. 98년 이후 중간 관리직 노동자가 구조조정 되면서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내수가 위축되면서 이들 중 일부는 소자산계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반실업.실업자’로 사실상 노동자와 친화력을 갖고 있다.

학생의 변화도 극적이다. 80년대 대학생은 해당 연령층의 20%에 불과했다면 현재 대학진학률은 82.1%로 300만명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학생들의 처지인데 80년대의 대학생은 한국자본주의의 확장기를 배경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미래에 대한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되었다면 현재는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전 시기 대학생이 진보적 인텔리에 가까웠다면 현재는 예비노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급구성의 변화가 운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

첫째, 노동자, 도시, 자본주의화에 따른 모순이 상황을 압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민지반봉건, 식민지반자본주의처럼 민족 모순을 강조하는 이론은 민족 모순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체되거나(반봉건) 왜곡된다고(반자본)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노동자, 도시, 자본주의적 모순이 상황을 압도하고 있다.

실천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농민보다는 노동자, 농활보다는 공활을 중시해야 하며 소상인, 대학생들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이들의 정치적.문화적 처지보다는 사회경제적 측면을 중시해야 한다.

둘째, 농민운동의 경우 이미 자본주의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한 조건에서 도시민이 갖고 있는 농촌에 대한 ‘호의’에 호소하기보다는 지방권력을 장악하여 도시민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거나 농촌과 도시가 새로운 차원에서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현 한국사회를 가르는 중요한 모순 지점이다. 지방의 경우 계급계층을 초월하여 서울.수도권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 따라서 농민운동이 지방의 이해를 총체적으로 대변하여 도시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형태의 운동이 필요하고 도시민 중 일부가 보이고 있는 안전한 먹거리, 학교 급식 등과 같은 새로운 요구와 결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소상인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상인의 이중성으로 인해 이들을 운동의 동력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카드 수수료 운동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상인의 동향은 이들이 처지가 얼마나 곤궁한 상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소상인에 소극적인 태도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지역위원회가 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넷째, 대학생 운동의 경우 진보적 인텔리, 운동의 선봉대라기보다는 예비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중시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생이 느끼고 있는 고용과 등록금 문제는 80년대 중후반의 대학생들이 느꼈던 고통의 강도와는 차원이 다른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마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20대는 전체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만약 20대가 청년실업, 등록금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한국의 진보운동은 386 세대와 같은 강력한 운동적 자산을 갖게 될 것이다. 반면 20대가 현재와 같이 개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20대는 아마도 탈(脫)진보 또는 사회적 일탈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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