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합의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에서 이미 합의한 내용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입니다. 그 이상 더 무엇을 더 나간 것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일 밤, 2박 3일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진행된 환영행사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10.4 공동선언’에 대해 이같이 자평했다.

8개항에 이르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공동선언)은 남북간 현안을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풍성하게 담았다. 따라서 91년 당시 남북의 총리들이 협의해 내놓은 남북기본합의서의 2007년판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노 대통령은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6·15 공동선언에 잘 정리되어 있다고 평가하고,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논의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통일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시각을 잘 드러낸 대목이다.

결국 이번 ‘10.4 공동선언’은 6.15공동선언을 뛰어넘는 새로운 통일장전을 마련했다기 보다는 6.15공동선언 이후 7년여의 실천을 총괄하고 현단계 과제들을 충실히 담는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를 예로 들면서, 우리 국민들은 동서독과 같은 급작스러운 통일을 바라지 않으며 상호 공존공영하면서 점진적으로 통일에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김 위원장에게)설명해 드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남북관계 발전은 총리급 회담을 필두로 한 각급 회담을 체계화하는 선으로 정리하고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비약시킬 수 있는 통일방안이나 통일기구 논의는 접어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10.4 공동선언’이 6.15공동선언에 비해 항목 수나 분량이 훨씬 풍부하고 구체적 합의내용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중량감에 있어서는 6.15공동선언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총리회담급 합의문이라는 혹평까지 나올 지경이다.

이번 '10.4 공동선언'이 6.15공동선언 정신을 재확인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내용들을 풍부히 담았다는 점에서 제2의 6.15공동선언으로 볼 수 있지만 그 격에 있어서는 제2의 남북기본합의서에 가깝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3일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 대해 “처음 오전에는 좀 힘들었다. 오후 가니까 이게 좀 잘 풀렸다. 풀려서 말이 좀 통합디다”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북측이 통일문제에 있어서 눈높이를 남측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별 무리없이 다소 실무적인 공동선언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2일 노 대통령과 첫 회담을 가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그날밤 만찬사를 '조국통일'로 시작해서 '조국통일'로 끝맺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같은 분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김 국방위원장이 3일 오후 회담 모두발언에서 회담 일정을 하루 연장하자고 제안했지만 노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용하지 않아 철회된 과정도 이같은 사정과 일정부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부터 줄곧 평화체제와 남북경제협력공동체라는 양 화두에 천착하면서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결국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낮은 수준에 묶어두는데 만족했음이 확인되었다.

노 대통령이 환영행사장에서 정상회담의 성과를 한참 설명하고 나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어쩐지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실토한 것은 표현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통일문제에 있어서 역사적인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한 탓이라고 읽혀지는 것은 기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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