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조국통일’, 역사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 첫 날 남북 두 지도자의 화두는 완연히 달랐다.

2일 저녁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만찬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답사는 환영과 감사로 포장돼 있어 언뜻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격한 시각차가 가로놓여있다.

김영남, “우리 민족끼리 이념 하에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먼저 환영의 만찬사를 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6.15공동선언의 정신인 '우리 민족끼리'”를 기저에 깔았다. “6.15이후 지금까지의 북남관계 발전은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뚜렷이 확신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을 중시하고 힘을 합치는 여기에 통일과 번영의 미래가 있다”고도 말했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남북간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 상임위원장이 강조하고자 한 대목은 ‘조국통일’ 문제였다.

그는 “이제 우리 앞에는 북남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나가야 할 성스러운 과제가 남아 있다”며 “이 정확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 민족 성원 모두의 숭고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명확히 방점을 찍었다.

그는 “나는 이번 북남 수뇌상봉이 조국통일을 열망하는 온 겨레의 새 희망과 기쁨을 주게 되기를 기대한다”며 “조국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잔을 들 것을 제의한다”고 건배를 제의했다.

한마디로 조국통일로 시작해서 조국통일로 끝맺은 짧은 만찬사였다.

노무현, “신뢰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을”

이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오늘과 같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며 “나는 그동안 남북 간에 신뢰를 쌓는 일이면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신뢰를 해치는 일은 최대한 절제해 왔다”고 남북 간의 ‘신뢰’를 기본 문제로 강하게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신뢰 문제와 관련 좀더 구체적으로 “지난 7년간의 교류협력에서 우리는 신뢰를 쌓는 법을 배웠다”며 “그것은 바로 개성공단, 철도와 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처럼 서로 만나서 합의하고, 합의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나아가 “앞으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찾아 함께 실천해 나간다면 더 큰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며 “이러한 신뢰의 증진은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하고 민족 공동번영의 미래를 여는 토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쉽게 표현하자면 남북간 교류와 경제협력, 특히 경협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신뢰를 쌓는 것이고 경협에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을 이루자는 논지이다. 경협을 토대로 한 평화번영 정책이라는 참여정부의 익숙한 논리를 재확인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지금 이 순간 털어내자”며 “평화 정착과 공동번영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말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를 제의하겠다”고 일관된 입장을 거듭 밝혔다.

요약하면 신뢰에 기반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자는 입장이다.

노무현-김영남 만수대의사당 면담서 '평화,번영,통일' 의제 재확인

이같이 만찬사에서 표출된 양측의 입장은 만찬 전 만수대 의사당에서 가진 노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 간의 면담에서도 큰 차이없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면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해 왔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 화해 통일을 이룩해 나가기 위해 남과 북이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8일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합의서’(2007.8.5)에 명시된 바 있는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이라는 3대 의제가 나란히 담겨있는 모양새이며 결국 남측이 평화와 번영을 북측이 통일을 강조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천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공동번영, 화해와 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교환하고, 이번 정상회담 기간 동안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여 내외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역시 △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번영 △화해와 통일에 관한 방안에 대해 입장을 교환했다는 것이다.

이중 ‘조국통일’을 ‘화해와 통일’이라는 좀더 남측 입장에 가까운 용어로 반복해 표현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띠는 대목일 뿐이다.

남북. '마찰 빚을까, 큰 결실 낼까'

결국 남북간 관계의 한 단계 진전을 위해서 북측은 외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민족중시(외세 배제)=우리 민족끼리’에 근거해 있으며, 남측은 남북간 신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경협중시(남북간 교류 활성화)=신뢰’라는 출발점(전제)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지향점(주요 목표)에 있어서도 남측은 ‘평화와 번영’을 북측은 ‘조국통일’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 2차 정상회담은 이같은 남과 북의 현격한 인식차와 목표차를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따라 회담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무릇 협상이나 회담이 결국 상대방의 뜻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진행될 수 없다는 전제에 선다면 남북이 양측의 의견을 적절한 선에서 수용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모양새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2차 남북정상회담은 남측의 '신뢰'와 북측의 '민족중시', 남측의 ‘평화와 번영’과 북측의 ‘조국통일’에 대한 강조가 마찰음을 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하나의 합의로 포괄됨으로써 보다 풍성한 결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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