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에 서고 보니까 심정이 착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남측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노무현 대통령의 심경은 '착잡함'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과 민족들이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대통령의 말에서 그 심정이 묻어났다.

89년 전대협 대표 임수경 씨가 북에서 남으로 처벌을 무릅쓰고 '금단의 선'을 넘어온지 18년, 이들의 고통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스스로 '금단의 선'을 넘었지만, 여전히 넘지 못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정전협정은 비무장지대 중 MDL 이남지역을 유엔사가 관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MDL 이북지역은 북측이 직접 관할한다.

따라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기 위해 MDL을 넘으려면 유엔사와 북측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남과 북 사이에 유엔사라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주 임무인 정전관리 기능을 한미연합사에 넘겼으며,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유엔사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이 이름만 남아 있는 유엔사는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다가, 남과 북이 조금이라도 서로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착잡하다. 이 역사적 사건도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서 이뤄져야 한다는 현실이, 남측의 국가원수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착잡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군사분계선' 위에 서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 간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이며, 장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분계선'이 노 대통령의 발걸음으로 점차 지워질 것이라는 바람처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을 안고 성사된 이번 정상회담에서 유엔사 존립의 근거인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단초가 마련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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