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통일뉴스 기획위원)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황진태 객원연구원이 쓴 ‘20대여, <디 워>가 아니라 <화려한 휴가>를 논쟁하자!’라는 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 20대의 보수화를 고민하며 <디 워>가 아닌 <화려한 휴가>를 논쟁함으로서 실종된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을 복원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진태 객원연구원의 문제의식의 밑에는 역시 ‘20대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 20대에게 <화려한 휴가>를 논쟁하는 것은 그들의 삶과 의식을 바꾸어내는데 큰 영향이 없다고 본다. 그것은 영화 <화려한 휴가>는 과거의 기억을 다루고 있을뿐 바로 지금 20대의 삶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디 워>가 아니라 <화려한 휴가>를 논쟁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디 워>에 열광했던 20대의 이면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가를 한번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현재 20대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최근 가장 탁월한 설명을 한 사람은 레디앙에서 발간한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이다. 또한 새사연의 손우정 연구원이 기획연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생, 어디로 가는가?>에서 분석하고 있는 상황과도 같다. 연간 천만원에 달하는 대학등록금과 이를 대기 위해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서도 청년실업 100만의 시대에 힘들어하는 그런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해두고 <디 워>에 대한 열광(?)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그들이 <디 워>라는 영화자체에 대해 열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심형래’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계속되는 도전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심형래가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네러티브등은 형편없다 하더라도 컴퓨터 그래픽 만이라도 일정정도의 수준에 올라와서 성공했다는 것에 대해서 열광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비주류라면 비주류(사실은 아니겠지만)라고 할 수 있는 심형래를 <88만원 세대>에서 우석훈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사회에서 철저하게 착취당하고 소외받고 있는 절망의 세대인 20대가 자신의 모습으로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심형래의 <디 워>가 애국주의 마케팅을 했든지, 민족주의의 과잉이니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왜 최근에 20대에게서는 2002년 월드컵(AGAIN1966, 꿈은 이루어진다!)과 같은 도전적이며 선진적인 열광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통일뉴스에서 민경우 전문기자의 한국경제 탐구 시리즈에서 <2001-2002년의 기로>(07.3.19)에서 지적한 2002년을 기점으로 변화한 한국경제의 어떤 경향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시점부터 20대는 우석훈 교수가 <88만원 세대>에서 지적한 그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 20대는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60년만에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상고출신 비주류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최초의 1승을 넘어 월드컵 4강에 가고, 거리에는 신용카드 발급이 넘쳐나고 수출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20대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손우정 연구원이 지적한 그러한 상황이 남았고, 우석훈 교수가 지적한 그러한 상황이 남았다. 그렇다면 그 20대에게 80년 5월 광주는 무엇인가? 그리고 <화려한 휴가>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그들이 <화려한 휴가>를 논쟁해야 하는가?

<화려한 휴가>를 보는 또 다른 시선

여기서 잠시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하던 날 , 현재 범여권의 통합신당에 합류한 ‘미래창조연대’가 신촌 아트레온 멀티플렉스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20대 대학생들을 불러서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를 꿈꾸던 사람들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보고, 그 자리에서 최열 대표는 ‘시대정신’을 이야기하고 당시 그들이 감옥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이 행사는 예상하던대로 ‘미래창조연대’가 20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기획한 행사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소위 386이 만든 정권인 노무현 정권, 열린우리당 정권의 실패를 극복하겠다고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던 이들의 감수성과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결국 386, 열린우리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20대를 향해서 <화려한 휴가>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시대착오’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20대가 살아가는 시대는 ‘청년실업 100만 시대’이고 ‘대학등록금 천만원 시대’이며,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20대를 바로 그 잔인한 시대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80년 광주의 적자들이며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며 지금 2007년 정권재창출을 이야기며 남북정상회담을 칭송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왜 20대에서 이명박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가의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 <화려한 휴가>를 논쟁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80년대의 기억을 소급해 지금의 20대에게 들이대며 지금의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총련 수배자들을 외면하고(여전히 한총련은 이적단체다!) 지금의 학생운동에게 애정보다 비아냥을 던졌던 것이 누구인가? 바로 386!, 그들이 아닌가? 80년 광주를 이야기하며 87년 6월을 이야기하며 정권을 잡고 그 정권의 주위에서 달콤함을 누렸던 이들이 말하는 <화려한 휴가>는 지금 20대에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또한, 왜 80년 광주를 만들었고 87년 6월 항쟁을 만들었고 이제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80년 광주가 낳은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받아안고자 했던 96년 연대항쟁(또는 연세대 사태)을 다룬 <화려한 진압>과 같은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홍세화 선생은 ‘지금의 대학생은 무식하다’라고 말했지만 다시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의 서문에서 ‘어쩌면 유신세대나 386세대가 지금의 세대보다 훨씬 더 편하고 낭만적인 시대를 보낸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지금의 2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 20대의 모습은 진보/보수 등의 개념으로 단순히 양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만들어온 천민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한 지독한 사대주의가 주는 영향과 또한 그것을 극복해오면서 형성된 건강한 시민의식, 젊은 세대로서의 도전성, 신선함 등이 뒤섞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20대가 깊고 깊은 절망 속에서 무력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20대 자신만이 아니라 전체 진보진영이 나서서 함께 연대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20대는 보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세대가 될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정말 안타깝게도 현재의 시점에서 20대와 <화려한 휴가>를 논쟁하는 것은 현재의 20대의 삶과 생각과 처해있는 상황을 극복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80년 광주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아니라 지금 600일째 이어지고 있는 20대 여성청년들의 고단한 싸움인 KTX투쟁에서 살아있는 것이며, 20대 대학생 자녀들의 등록금을 대신 벌기위해 비정규직으로 나섰다가 정권의 공권력과 자본에 의해 잔인하게 탄압받으며 해고당한 이랜드, 홈에버의 50대 아주머니들의 투쟁의 현장에 살아있는 것이다. 80년 광주는 결국 민중의 삶속에 살아있는 것이지 그 어느 정치 엘리트들의 기억이나 추억 속에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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