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뒤지다 보면 뜻밖의 좋은 글들을 찾을 때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새로운사회를위한 연구원 김병권 씨가 쓴 “서비스 산업은 한국에서 어떻게 기형화되었는가?”이다. 이 글은 문제의식의 참신함, 객관적인 자료, 관점의 진보성 등을 두루 갖춘 좋은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서비스 산업 문제는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포괄적인 주제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고용’으로 관점을 제한하여 서비스 산업의 변화와 그와 연관된 한국경제의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다뤄 보겠다.

김병권 씨는 위 글에서 서비스 산업의 현황을 <영세서비스 확대-일부 생산자서비스 증가-사회서비스 절대부족>으로 요약하고 있다.

<영세서비스>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음식숙박업, 도소매업을 말한다. IMF는 주로 중간층 사무직 노동자에게 집중적인 타격을 주었고, 구조조정 된 40~50대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1~2억 정도의 자본금을 갖고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 들었다. 1999~2001년 시점에서 자영업은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을 받아 준 인력 풀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2002년 이후 내수가 붕괴되면서 근근이 생계를 영위하거나 그나마 갖고 있던 자본금을 잃었고 그 중 일부가 노동시장에서 퇴장하여 바다이야기 등 퇴행적인 길로 빠져들었다. 한편 유통업의 구조조정(대형 마트의 진출 등)이 본격화되면서 최근에는 유통업에서 아예 고용이 줄고 있다.

현재 영세소상인의 상당 부분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영업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소자산계급이라기보다는 반(半)실업자·실업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바로 이 점이 서방 선진국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차이이다. 서방 선진국은 복지모델을 거친 이후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 비정규직, 실업·반실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었다면 한국사회는 <고성장-복지부재>에서 <수출 위주의 저성장-노동시장 유연화>로 이동했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일부 생산자서비스 증가>는 IT 산업 등에서 일부 생산이 늘었음을 의미한다.

생산자서비스란 현대 사회가 노동·자본집약적인 산업에서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소량생산체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한 기업안에 존재하던 “R&D, 컨설팅, 법률, 재정과 금융, 경영지원”과 같은 부분이 제조업에서 분화되어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들 산업의 발전이 전체 생산과 제조업의 발전을 주도한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경우 “90년 6조원에서 2005년 약 40조 원으로 늘었고 GDP의 5.5%를 기록할 만큼 성장”하였지만 “여전히 OECD 국가 평균(11%) 기준의 절반 수준”이고 “심지어 1인당 부가가치는 외환위기 이후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서비스 가운데 부가가치 비중이 낮고 주로 저임금에 의존하는 텔레마케팅, 청소, 용역 등 사업지원서비스에서 고용이 증가(2001년에서 2005년까지 무려 90%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자서비스 부분의 발전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여전히 OECD 다른 국가에 비하면 절대 비중이 적고 그마저 고지식·고기술 산업보다는 단순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생산자서비스 부문의 미발달은 서비스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98년 이후 한국경제의 원동력은 제조업부문의 수출 성장이었는데 이에 상응하는 생산자서비스가 발전하지 않은 만큼 이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2004~2006년 연평균 서비스적자 중 여행서비스가 -96.0억불, 사업서비스가 -60.0억불로 나타나고 있는데 (나머지 한 부분이 특허권 등 사용료로 -25.7억불임)(“서비스수지 적자 확대와 시사점”, 삼성경제연구소, 2007.4.16) 무역수지 흑자가 서비스수지 적자로 대체되는 새로운 형태의 종속적인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근대적인 원하청 관계이다.

2007년 8.22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IT 생산액은 2000년 42.3조에서 2007년 73.2조원으로 확대된 반면 종사자는 109만에서 127만으로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대기업이 생산이 증가한 것에 역비례하여 하청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4년 기준 원청대기업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만3500원인 반면 4차 하도급 노동자들의 임금은 8100원대에 그쳤고 주당 노동시간은 각각 61.6시간과 52.5시간으로 무려 9시간이나 차이가 났다. 이에 따라 “○○전자의 하청은 이 바닥의 막장이다.”, “△△통신이 지나간 자리는 하청업체의 시체만 남는다”는 ‘21세기 속담’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생산액 증가에 상응하는 수준의 고용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생산자 서비스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 고용 증가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중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기업이 제조업 성장에 필요한 생산자서비스를 발전·육성하기보다는 전근대적인 원하청 관계를 악용하여 수탈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이로 인해 IT 등 생산자서비스 부문의 발전은 지체되고 이 분야에서 고용 증가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당국이 IT 산업, 벤처기업 육성 등 거창한 말을 떠들어 대도 구조적인 개혁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사회서비스 절대 부족>은 교육·보건·공공행정 등의 영역이 미발달했음을 의미한다. 사회서비스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핵심 분야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복지의 증가는 사회체제와 관련된 민감한 정치문제이다. 한국사회는 <고성장-복지부재>라는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새로운 조건에 맞게 발전시키지 못한 채 <저성장-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하중이 겹친 형태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서비스 산업의 변화가 우리 운동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서비스 산업 등 현대적인 부분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민족자주는 <침략적이지만 현대적인> 외세에 대해 자기 것을 지키려는 속성이 있다. 문제는 자기 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것과 거리를 두게 될 가능성이 있는 점이다.

이를테면 식민지반봉건이란 제국주의 때문에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체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식민지반자본이란 식민지적 속성 때문에 자본주의적 발전이 왜곡되고 있음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이론 구성이 민족적 문제를 중심에 두고 이 때문에 사회 발전이 지체 또는 왜곡되고 있음을 설명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우리 운동의 ‘자주파’가 지식정보화, 세계화 같은 현대적인 영역보다는 농민과 전통 제조업 등에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는 많이 변했다. 1985년 850만에 달하던 농민은 2006년 현재 350만명 이하로 극적으로 감소했다. 농민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10% 이하로 떨어졌다. 농민운동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전에 비해 비중이 축소된 것은 명확하다. 그에 비해 대도시에 집적된 도시민, 도시적 의제는 비할 바 없이 커졌다. 따라서 운동의 관심을 도시, 도시민 그 중에서도 현대적인 부분에 돌릴 필요가 있다.

둘째, 서비스 산업의 기형화는 또 다른 형태로 한국사회의 종속성과 전근대성이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구성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는 실업·반실업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거대한 영세자영업자의 존재이다.

서방 선진국의 경우에는 복지국가가 해체되면서 나타난 실업자, 중남미는 제조업이 성장하지 않는 조건에서 대도시에 퇴적된 비공식 부문의 빈민이 문제라면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고성장, 저복지구조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하중이 겹치면서 제조업에서 이탈된 거대한 영세자영업자가 중요하다.

정상적이라면 보건복지, 교육. 공공행정 등 사회서비스는 고사하고 (그토록 IT 강국, 벤처기업 육성을 떠들었던 만큼) 생산자서비스 영역에서라도 의미있는 고용 증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 전근대적인 천민자본의 체질을 버리지 못한 대기업에 의해 왜곡되고 만 것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이를 수입할지언정 세계적인 고학력 사회 한국의 대학생들을 육성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병권 씨는 “인적 자원의 문제이고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노동자를 키워내는 일이 핵심”인데 현재의 주주자본주의는 인력을 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주주자본주의의 비용개념과 지식기반 서비스업 발전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 개념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쓰고 있다. 즉 생산자서비스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주주자본주의가 철폐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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