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소주 홍보포스터.
지난 5월 평양소주가 미국 정부의 공식 승인 아래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워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수출되는 평양소주는 남녘의 순한 소주 열풍에 힘입어 북녘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알코올 농도를 2도 낮춘 23도로 제조된 수출용이라고 하는데요, 강냉이, 쌀, 찹쌀을 주원료로 지하 170m 천연 암반수로 제조했다 자랑하는 평양소주는 엄청 쓰면서도 한편엔 단맛이 났고 뒷맛이 깔끔한 소주다운 소주 맛이 일품입니다.

저는 분명 우리 남녘의 소주가 미국시장에서 고급주로 대접받는 것처럼 평양소주도 동포들의 입맛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술로 거듭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보고 반가워했었습니다.

제2의 로버트김 사건?

그런데 최근 재미교포 사업가인 박일우(58. 미국명 스티브 박)씨가 미국 내에서 한국 정부를 위해 대북 첩보활동한 것에 대해 거짓 진술한 혐의로 기소돼 미 재판부는 박씨에게 15만달러의 보석금을 책정하는 동시에 전자감시기구 착용을 명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연방검찰 기소청구장을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박씨는 뉴욕총영사관 또는 주유엔대표부 직원들에게 액수 미상의 돈을 받고 최소한 지난 2005년 4월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합니다.

미국 내에서 외국정부를 위해 첩보원으로 일할 경우, ‘외국 요원 대리법(FARA)’에 따라 사법당국에 등록해야 하는데 미 영주권자인 박씨는 2005~2007년 사이 FBI 요원과 3차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특정 한국 정부 관계자와 접촉했거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번 거짓 진술을 했다 합니다.

그러나 기소청구장에 따르면 박씨는 FBI 요원과 만난 직후 뉴저지의 한 식당에서 자신이 모른다고 진술했던 한국 정부 관계자를 만났으며 지난 2005년 4월21일 한국 정부 관료에게 북한 관료가 자신에게 다음 방북 때 살충제 마취제 수의학 관련 제품을 구해다 가져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전달했다 합니다. 한국 정부 관료는 (다음 방북때) 누가 박씨와 동행할 계획인지를 묻기도 했다죠.

박씨는 또 FBI 요원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북한을 자주 방문하고 북한의 고위 관료와도 접촉할 수 있으므로 미국과 북한사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소청구장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미 검찰 관계자는 이날 법원에서 박씨가 지난 수년 간 중국과 한반도를 50차례 여행했으며 지난 5년 간 간첩과 같은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박씨에게 간첩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은 로버트김 사건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로버트김은 1996년 9월 미국 해군정보국(ONI)에서 일하던 중 지난 일부비공개 문건들을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해군 무관에게 넘겨준 혐의(국가기밀 누설 간첩죄)로 체포되었다가, 7년여의 수감생활을 가진 인물입니다.

김씨는 당시 동해를 통해 강릉으로 침투하던 북한 잠수정이 좌초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실태와 북한의 무기 수출입 현황, 북한 해군의 동향 등 한반도 관련 정보를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국방기밀 수혜자인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인 백동일 대령을 소환형식으로 철수시켜 버리고 미 국적을 지닌 로버트 김 재판에 관여한다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을 했죠.

박일우씨는 1980년대 초 미국에 이민 온 뒤, 약 10년 전부터 매년 5, 6차례 북녘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대표적 대북교류 사업가로 평양소주 외에도 지난 2002년엔 6만3000달러 상당의 여성 블라우스를 수입해 생산지를 북한(D.P.R of Korea)으로 표기해 처음으로 미국에 판매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뉴욕 주재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박씨와 접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업무로 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간첩혐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 간의 갈등과 긴장 때문에 빚어졌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쨌건 수년간 박씨를 지켜보며 증거를 수집한 것은 우방과는 전혀 상관없이 간첩죄를 물으려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은 처벌, 한국은 안돼

반면에 국내에서 미국간첩 의혹이 일고 있는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 사건'의 경우, 정작 백 회장의 미국을 위한 간첩 활동이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현행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백성학 회장 사건은 2006년 10월 31일 오전, 국정 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경인TV 의 방송 허가권에 대한 감사를 진행 하던 중 증인으로 출석한 경인TV 대표 신현덕씨가 경인TV 의 대주주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미국에 국가 중요 정보를 유출하며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폭로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입니다.

백성학 회장은 신현덕 대표로 하여금 번역 작업을 하도록 지시해 ‘전시작전권 이양과 관련한 노 정권의 의도를 분석하고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이 한국 대통령에 취할 예우와 태도 등을 건의, 북한의 핵실험 감행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노무현 정부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으로 하여금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저평가할 필요성이 있다’ 는 등의 충격적인 문건을 제작토록 했고 신 대표는 증거로 이 문건을 소개했습니다.

언론들의 심층 취재 결과 신 전 대표가 백 회장 측으로부터 정보원 교육을 받았다고 지목한 소공동 빌딩 1501호의 주인은 미중앙정보국 출신인 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부시 가문과 친분을 쌓은 인사로 용산기지이전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고 국내 보수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등 ‘미국 내 한국통’으로 손꼽히는 인물로서 신현덕 대표가 백성학 회장의 간첩 활동 파트너로 지목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롤리스 코리아 팀’을 운영하며 유에스아시아커머셜디벨롭먼트코포레이션 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었는데 이 회사를 통해 국가 정보가 유출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백성학 회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모두 전면 부인하면서 “뭐가 있더라도 국익을 위해 덮어둬야 한다”말을 전했다는데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등의 메이저 일간지들은 사건 초기부터 이를 보도하지 않거나 짤막하게 보도하며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실 자발적으로 미국 사람들한테 별별 정보를 다 전달하는 이른바 주요 인사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국정원도 이 사건에 대해서 미국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미FTA, 공군의 조기경보기 도입 사업 등 미국과 우리 이해가 엇갈리는 일이 얼마나 많냐’ ‘일심회에 쏟는 관심의 10%만 대미 정보유출에 쏟아도 국익은 많이 신장될 것’이라는 등의 설이 난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을 적국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백 회장의 간첩활동이 사실로 드러나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은 이 조항의 ‘적국’을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한나라당 등의 반대로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에 있습니다.

백성학 대표가 말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우리가 최우방국이라 믿으며 사랑을 하지만 미국은 아니라는 것은 정확히 알겠습니다. 흠~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아직도 짝사랑 중인가요?

평양소주의 미국 홍보 포스터가 떠오릅니다.

노란색운동복과 모자를 쓴 앳된 아가씨가 웃음 짓고 있는 포스터에는
'한번 봐야지는 그냥 하는 말. 정말 보고 싶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깨끗한 마무리 그게 바로 소주만의 묘한 매력-통일시대 이름난 술 평양소주'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통일시대이지만 정말 이런 머리 아픈 일 없이 좋은 사람들과 소주 한잔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실 수 있는 진정한 통일시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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