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노동 문제를 잘 모른다. 따라서 아래 내용은 단순한 감상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홈에버 문제가 갖는 중요성에 비춰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을 활발히 개진하고 왕성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느낀 몇 가지 점을 적어 보고자 한다.
첫째, 홈에버는 여타의 노동자 투쟁에 비해 대단히 우호적인 여론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현대자동차, 금속노조 등의 투쟁과 뚜렷이 대비된다.
위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도시 서민 대중이 홈에버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점차 도를 넘어 서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 서민대중은 누구라도 주변에 비정규직에 얽힌 사연들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나와는 다른 문제로 여겨지던 노동 문제를 서서히 자신 또는 자신의 주변과 연관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맞다면 이는 참으로 중요한 사태 진전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커다란 취약점은 시민연대, 계급의식의 결여이다. 국민대중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정당한 민주적 권리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들 자신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이해하는 한 노동운동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번 홈에버 사태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도시 서민 대중속에서 계급적 연대 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홈에버와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보는 도시 서민의 정서 차이이다.
홈에버가 도시 서민의 동정심과 공감을 얻고 있는 반면 미국산 쇠고기 판매 저지운동은 일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미FTA 투쟁의 중요한 매개고리라는 점에서 이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현상으로 작년 11월 총궐기 당시에도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이 한미FTA에 대한 체감도가 달랐던 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필자가 보기에 위 현상은 한국사회의 계급 구성이 변화하고 있는 현상의 반영이다. 한국국민은 전통적으로 농촌, 농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는 한국의 도시화, 이농이 불과 수십년 사이에 이뤄진 조건에서 설사 도시에 살더라도 어린 시절의 추억은 농촌에 있거나 지금도 농촌에 부모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한미FTA 투쟁이 보여준 것은 서울, 수도권에 이주한 도시 서민이 농촌, 농민, 부모와 연관되어 있던 농민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거나 도시로 이주한 도시 서민과 농촌 사이의 연관 고리가 끊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도시 서민들은 농촌과 연관된 자신의 뿌리를 지우고 “세계화가 된 세상에서 농촌은 어쩔 수 없다”는 기득권층의 요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미FTA 투쟁이 대도시를 넘을 수 없었던 벽이다. 반면 이들은 부동산, 사교육, 비정규직 등 서울, 수도권에 집적된 자본주의적 모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셋째, 홈에버가 운동에 미치는 정치적 함의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저항적 민족주의의 뿌리는 대체로 농민이다. 제국주의 침탈이 전통적인 농업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조건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은 농민을 기반으로 토지개혁을 강력한 계급적 요구로 하여 진행되었다. 중국, 베트남, 북 등 동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도 이러한 전통을 갖고 있다. 운동진영의 이른바 ‘자주파’가 다른 집단에 비해 농민과 농촌 대중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고 청년학생운동이 지사적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0년대 초반 한총련의 사회 투신운동이 농민운동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진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그러나 민족자주의 과제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경제적 과제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노동, 도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인 명확하고도 압도적인 현실이다. 이제는 자본주의가 미발달하거나(半봉건), 자본주의가 왜곡되어 발달한(半자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오해를 덜기 위해 몇 마디 덧붙이면 위의 지적이 농민운동의 불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농민운동 또한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발전한 조건에서 농민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를 새로운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듯 하다. 가령 농민들의 서울 상경보다는 농촌을 정치적으로 장악하여 대도시를 포위하는 형태의 운동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2006년 11월 총궐기가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향후의 농민운동은 농민대중에 갖고 있는 도시 서민의 부채 의식에 기대기보다는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계급적 이해를 보다 명확히 하고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민경우 전문기자
tongil@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