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부리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송금문제가 해결되고 남한으로부터 받을 중유 5만 톤의 제1차 선적분이 도착되자 북한은 지난 14일 영변 핵시설과 재처리시설의 가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국제 원자력 감시기구(IAEA)가 이를 확인했다. 이로써 북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합의의 구체적 실천에 시동이 걸렸다.

2.13 합의의 초기단계 조치는 이외에도 플루토늄 및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국들과 협의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또 미국은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및 대 적성국 교역법적용 종료를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진전시키며 수교를 위한 대화를 추진하게 돼 있다. 일본도 평양선언에 따라 대북 대화를 개시해야 한다. 이런 안건들을 다룰 제6차 6자회담이 18일 베이징에서 시작되었는데 낙관은 금물이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만을 위한 회담이 아니다. 역사의 맥락으로 보면 6자회담은 북미간의 대결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회담이기도 하다.

1905년 태프트-카츠라 밀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승인해준 미국은 40년이 지나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을 패망시키면서 일본의 ‘소유물’이었던 한반도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싶었으나 소련의 대일참전을 설득하기 위해 한반도 북부에 대한 소련의 점령권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남한에 친미정권을 수립한 미국은 북한에 들어선 친소정권의 남침기도를 역이용하여 평양정권을 궤멸시키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북한은 세계최강국인 미국과 잘 지내기를 원했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정책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의 모든 면에서 철저한 압박을 가해서 체제를 붕괴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앞에 무릎 꿇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고 미국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클린턴시절 북한에게 일정한 대가를 주고 북한 핵계획을 동결시키는 외교협상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클린턴의 뒤를 이은 부시가 전임자의 협상결과를 전면 부정하고 대북압살정책을 강화해 나감에 따라 북한은 핵계획을 재가동시키고 마침내 핵무기를 만들고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이에 부시도 협상타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위협하지 않을 터이니 핵을 완전 폐기하라는 것이 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며, 미국의 위협이 완전 해소되면 핵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 북의 입장이니, 가능한 타협점의 소재는 매우 분명하다. 다만 양쪽은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니 서로가 가급적 덜 주고 가급적 많이 얻으려고 하는데 문제의 어려운 점이 있다. 앞으로도 북핵의 불능화, 우라늄 농축 의혹, 경수로 제공 등 더욱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물론 외교협상은 야구경기처럼 다 끝나기 전에는 결과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은 모두 이제 그만하면 서로 안심할 수 있다는 타결점을 찾아야할 처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북미간 핵협상이 타결되면 그것은 북한이 이제 미국의 만성적 군사위협에서 벗어나고 외부세계와 교류하면서 경제발전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미국도 반드시 북한을 사사건건 시비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를 위요한 국제정치풍향에 근본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미,일,중,러의 4강도 한반도의 새로운 정치지형 형성이 자국에게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앞으로 열리게 될 6자회담의 여러 실무그룹 회의나 수석대표회의는 물론 장관급회담과 정상회담에 임할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치정세의 이러한 변화에 가장 영향을 받을 나라는 그동안 친미반북을 국시처럼 받들어 온 한국일 것이다. 미국과도 무난히 지내며 경제도 돌아가고 민생도 나아지는 북한과 앞으로도 친미반북노선으로만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많이 달라질 북한과 어떤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며 장차 통일은 어떻게 모색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6자간 장관급회담이나 정상회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야 말로 지금 한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일반 국민들이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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