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대성식당에서의 생일축하

▲ 대성식당 접대원들이 생일을 맞은 필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사진 제공-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점심을 먹기 위해 일행은 대성식당으로 향했다. 대성식당에는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접대원들이 미리 나와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접대원들은 생일을 맞은 내게 꽃다발을 전해준다. 아침에 양각도 호텔에서도 생일축하 꽃다발을 받았는데 이곳에서 또 꽃다발을 받는다.

게다가 일행 중 어르신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생일을 맞았다는 이유로 오늘 점심은 주탁에서 먹는다. 나의 옆에는 한상렬 대표, 맞은편에는 북측 김만길 민화협 중앙위원과 리동혁 안내원이 앉았다. 주탁에는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케잌까지 놓여있다.

오종렬 대표가 “모든 이들의 생일이라 생각하고 축하해주자”라며 건배를 제의하자 주변의 안내원, 접대원들은 물론 지나치는 모두가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한마디씩 해준다.

한상렬 대표는 내게 “어느 누구의 생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말한다.

▲ 생일을 맞아 주탁에 앉은 필자. [사진 제공-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북녘으로 갈 때 신원확인 등을 위해 생년월일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것을 보고 챙긴 것이리라. 대표단도 아니고 일행 중 생일이 있는지 찾아 일일이 생일을 챙겨주는 세심함에 그동안 생일마다 꽃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한까지 풀어주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평생 받을 축하를 오늘 하루에 다 받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이 넘치는 축하를 받았다.(음~나는 애정이 담긴 축하를 받았다 느꼈는데 설마 그때 축하를 해주신 분들 애정을 안 담으신 것은 아니지요?^^)

김치가 맛있다는 우리 일행의 인사에 김만길 중앙위원은 “남녘에 여러 번 갔지만 여기 김치만 맛이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상렬 대표는 “창원에 온 리충복 부의장이 창원 김치가 가장 북녘의 김치가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전주음식 먹어보면 북녘음식보다 낫다고 할 것이다”고 화답했다.

김 중앙위원은 우리 대표단에게 조찰떡을 권하면서 “북녘에서는 용지 면적이 제한돼 조를 많이 심지 않는다. 조가 많이 생산되지 않아 귀한 손님들이 왔을 때나 내놓는 음식이니 많이 드시라” 한다. 한 대표는 “북녘에 올 때마다 음식을 너무 잘 차려 줘 시정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귀한 분들 오셨는데 어찌 대접이 소홀할 수 있겠는가 하며 절대 시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접대원은 내게 케잌을 잘라주며 “선생님 생일이시니 축하합니다의 ‘축하’ 부분을 드립니다. 평양에서의 생일 잊지 마십시오” 한다.

계속 나오는 음식에 배가 불러 밥은 주지 말라는 한 대표에게 “그래도 드셔야지”하며 난처해하던 접대원은 “금방 갈아 만든 것입니다”하며 잣죽을 내온다. “너무 맛있으니 한입 먹어보라”고 권하는 한 대표의 말에 한입 먹어봤더니 그 맛은 “나는 정말 뭘 걸어도 좋을 만큼 자신 있게 이제까지 먹어봤던 잣죽 중 가장 맛있다”고 장담할 정도다.

▲ 대성식당 한켠에서 팔고 있는 그림을 둘러보는 일행.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식품전문기자로 호텔은 물론 한식, 양식, 중식당 등을 다니며 그래도 남들보다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봤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너무 맛있어 어떻게 만든 것이냐 물었다.

접대원은 “잣을 갈아서 물과 쌀을 넣어 끓였다”고 한다. 그럼 그 배합비와 불 조절뿐으로 이 맛을 낸 것인가? 나뿐 아니라 잣죽을 맛본 일행들도 놀라운 맛에 칭찬 한마디씩을 거든다.

민주노동당 이해삼 최고위원이 “한상렬 대표님 단식 끝내고 이 잣죽 드셨으면 좋았을텐데요” 하자 한상렬 대표는 “그러게, 이거 먹었으면 정말 몸에 좋았을 것 같네”한다.

맛도 맛이지만 밥을 먹지 않겠다는 이들을 위해 짧은 시간에도 급히 죽을 만들어 대접하는 그들의 세심함에 감탄할 뿐이다.

김만길 민화협 중앙위원 인터뷰

▲ 왼쪽부터 김만길 중앙위원, 리동혁 안내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이미 남녘에서부터 기회가 닿으면 북측 대표단 중 고위층의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던 나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로 식사를 하고 있는 김만길 중앙위원에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는 최근 남녘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연합전시증원 독수리(ROSI-FE) 훈련과 관련, “북을 겨냥한 침략 훈련으로 겉으로는 태연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 인민들은 무척 긴장하고 있습니다. 북과 남이 힘을 합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구축하도록 힘써야지, 외세와 함께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의 핵과 미사일은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고립 압살을 자행하는 미국을 겨냥 한 것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들은 사탕알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뤄내도록 해야 합니다” 말한다.

그는 평택의 미군부대 확장이전 반대 싸움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우리도 미국에 의해 피눈물을 뿌리며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었지만 평택 주민들도 대단히 싸움을 잘 하더라. 6.15시대에 친북, 친남을 따지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서로 찬양을 해주며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고 전했다.

김 중앙위원은 올해 8월에 상연 예정인 아리랑 공연에도 지난 2005년처럼 남측 참관단이 대규모로 관람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는 2.13합의 등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앞으로 북남 관계는 좋아질 일밖에 없지 않겠습니까”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기자들도 글 한 줄, 사진 한 장을 보도를 하더라도 민족화해에 도움이 되도록 써야합니다. 김 기자도 통일을 위해 힘을 다해 주십시오”하고 당부했다.

‘사탕알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지금 북녘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는 한마디로 남아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참관

▲ 김일성종합대학교 본관 건물.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김일성 대학 캠퍼스 내부, 정문부터 본관 앞까지 조성된 화단.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다음 일정은 김일성 종합대학의 참관이다. 북녘의 국가 관광국이 1999년 발간한 평양관광 책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 종합대학은 모란봉과 지맥이 잇닿아 있는 룡남산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광복직후 주체35(1946)년 10월 1일에 창립된 조선의 첫 종합대학이다.
김정일 장군께서 대학시절을 보내신 사적이 깃든 대학이며 규모도 제일 큰 대학으로서 민족간부 양성 기지의 중추로 되는 교육의 최고 전당이다.
부지면적 40만 평방메터이며 거대한 대학촌을 형성하고 있다.
대학 구내에는 본청사, 1호교사, 2호교사, 과학도사관, 체육관, 여러 개의 연구소 청사들과 출판사, 실습공장, 현대적인 기숙사들과 병원, 편의 봉사시설들이 훌륭히 꾸려져 있다.
창립 당시 대학은 7개 학부에 24개 학과에서 15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였으며 60여명의 교원들이 있었으나 오늘은 두 개의 대학과 14개 학부에 65개의 학과와 600여개의 학급에서 1만20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는 90여개의 강좌, 50여개의 연구실과 박사원이 있으며 저명한 교수, 박사, 부교수, 학사들이 교육 사업과 과학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 구내의 중심인 룡남산 마루에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 있고 김일성종합대학사적관이 꾸려져 있다.
과학도서관의 장서적수는 200여만권, 수용능력 1000명이며 관람석수 2000석의 체육관이 있다.“

고 김일성 주석 특유의 흘림글씨로 만들어진 ‘김일성종합대학’ 현판이 걸린 정문을 지나자 바로 보이는 비석에는 ‘학습도 전투이다’고 적혀 있다.

▲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전투적으로 학습을 하기 위해서 일까? 민족간부를 양성한다는 최고 엘리트 교육의 본산지인 김일성종합대학에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고 우리 일행의 함께 사진 찍자는 요구에 흔쾌히 모델로 나서주곤 했다.

평양 참관 일정 중 유일하게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리동혁 안내원이 아닐까? 

리동혁 안내원

리동혁 안내원은 내가 평양에 도착 하자마자 “시집갔나? 문제 있구만”으로 충격을 안겨준 안내원으로 내게 “이시우 선생은 왜 구속된 것이냐” 물으며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올해 마흔인 그는 33세에 결혼해서 37세에 아이를 얻어 현재 3살 난 아들이 하나 있다.

“실물로 보면 여자들을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사진은 너무 무섭게 나와서 선볼 때도 사진은 절대 보내지 않았다”는 그는 갖고 있는 사진이라곤 결혼사진이 유일하다고. 독자들에게 그를 소개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으나 실패, 사진 찍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재빨리 카메라를 손으로 막는다.

▲ 리동혁 안내원이 독특한 사진 전시회에 내라고 카메라를 막았다. 희게 나온 부분이 리 안내원의 손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너무해요. 사진이 엉망이 됐어요.”
“응 그 사진을 꼭 독특한 사진 전시회에 내라구, 거기 내보내면 1등을 할꺼야.”
“제가 잘나오게 사진 찍어 드릴께요.”
“아냐 난 너무 무섭게 나온다.”
“흠~제가 꼭 자연스럽게 잘 나온 사진 찍을 테니까 웃을 준비만 하세요!”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사실 지난해 처음 리동혁 안내원을 만났을 때 난 무서워했다.

“대체 객원기자가 뭡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그에게 통일뉴스 기자라고 인사를 나눈 적도 없고 일행에게도 아직 객원기자라 소개를 하지 않은 터라 ‘아니 저 사람이 나를 어찌 아는 것일까?’하고 얼었다.

이후로도 그는 내가 놀랄 만큼 이것저것 말을 걸어 한참을 긴장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내가 2005년에 처음 평양을 방문하며 인상적이었던 안내원들에 대해 쓴 기사 ‘심장에 남는 사람’을 본 뒤 친근감의 표현으로 이것저것 묻고 아는 체를 한 것인데 그의 인상만을 보고 그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겨레하나 방문단의 담당 참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서운 인상 뒤에 숨겨진 수많은 따뜻함을 찾았다.

이제는 리동혁 안내원 하면 더 이상 굳은 얼굴이 아닌 환하게 웃는 표정이 떠오르니까.

첫 인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고 수 없이 들었고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또 다시 그런 오류를 범한 것이다. 북녘이라고 만하면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우리 사회도 겉으로만 보이는 북의 모습에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지...

여러 번 만나면서 리동혁 안내원이 따뜻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우리 사회도 북녘을 자꾸 만나다보면 그곳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내 기필코 더 이상 ‘무서운’ 리동혁이 아닌 ‘따뜻한’ 리동혁을 찍어내리라.

김일성종합대학 내 항생제공장

▲ 대학 내의 생명과학부 생물산업연구센터.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김일성종합대학 내의 생명과학부 생물산업연구센터에는 부산겨레하나가 지원한 항생제공장이 5월말에서 6월초 오픈을 앞두고 단장에 한창이었다.

겨레하나는 전체적으로 빵 공장과 콩우유 사업을 하고 있으며 부산은 항생제공장, 울산은 국수공장, 인천은 노인 어린이 치과병원, 서울은 돼지공장, 광주도 돼지공장(예정)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 항생제 공장은 항생제를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고 캡슐화 작업을 하는 곳으로 그저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실습교육까지 이뤄질 예정이다.

건물 안에는 이노테크 등 남녘 기업의 기계들이 가동을 준비하고 온습도 조절과 오염을 줄여주는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남녘에서 설계한 것을 그대로 북녘에서 조립을 한 것이라고 한다.

하루 생산량 등을 묻는 나의 질문에 담당자는 “아직 공정의 시운전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고 남녘에서 캡슐화를 위한 원료의 지원 등을 감안해 일일 생산량 등을 정할 생각”이라고 한다.

항생제 공장 참관을 마치고 나올 때 쯤 허일영 안내원이 나를 찾는다.

“아까 말한 순대궁전 아무래도 순대국집을 잘못 본 것 같은데... 인민이 왕이고 아이들이 왕이라는 의미로 궁전을 쓰는 것인데 만약 식당이름이 순대궁전이라면 말세다 말세.”
“아~차가 빨리 지나가니까 순대국집을 순대궁전으로 잘못 봤나 봐요.”

오전에 무심히 한 질문에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나보다. 나는 오히려 잊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북녘에서 궁전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려고 세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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