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대 선결조건
- 전대미문의 사전 퍼주기와 반대운동
2006년 2.3 한미FTA 협상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크린쿼터, 쇠고기, 의약품, 자동차 등 4가지 조건을 내주고 시작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미FTA 협상의 개시가 대통령과 소수 관료들의 전격적인 협상에 의해 밀실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이 밀실 공간에서 최소한의 언론의 통제와 그나마 정상적인 주고받기가 가능한 협상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4가지 조건은 협상의 핵심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아래에서는 이 과정을 소개해 보겠다.
스크린쿼터는 3.7 국무회의에서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되고 2007년 최종 협상에서 ‘현재 유보’로 결정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2006년 봄 지명도있는 영화인들의 투쟁은 한미FTA 저지 운동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고 한미FTA 운동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쇠고기 수입은 1월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조건을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로 고시하면서 재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3월 미국에서 다시금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서 수입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 상원 의원 84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미국의 노골적인 압력이 가속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9월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연이어 3차례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전면 중단되었다. 9월 뼛조각의 발견은 두가지 점을 의미한다. 하나는 미국의 축산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뼛조각을 분류할 수 없다는 점 다른 하나는 각계각층의 집요하고 끈질긴 노력이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자각을 높이고 비행기로 특별 공수된 쇠고기에서 뼛조각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후자의 사실은 후술할 GMO, LMO 문제와 비교되는 중요한 맥락이다.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협상 막판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정부는 5월 국제수역사무국회의(OIE)에서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가 판정을 받으면 뼛조각이 든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할 것을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문서로 보장할 것을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자신이 뼛조각이 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양해했음을 시사하면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결 이후에도 미국 의원들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미국산 쇠고기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 싼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반대진영의 저항에 의해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와 한국정부의 굴욕적인 저자세가 폭로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상당 부분 지체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문제는 향후에도 한미FTA를 둘러 싼 공방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의약품은 4대 선결조건 밀약과정에서 아마도 약가적정화방안을 철회를 약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는 정부라면 약가적정화방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밀약과 정상적인 행정 처리 사이의 괴리는 7월 2차 협상에서 충돌하였다. 미 행정부는 의약품 문제가 사전에 양해된 사항임을 주장하며 2차 협상 전체를 파행으로 몰아갔다. 7월은 반대 여론이 정점에 이른 시점으로 2차 협상의 파행과 맞물려 연내 협상을 공언하던 정부의 기도가 사실상 좌절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품 협상은 신약의 최저 가격 보장을 제외한 미측의 요구가 모두 관철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자동차 분야는 한미FTA 협상의 최대 파란의 진원지이다. 주목할 점은 자동차 분야가 미국의 4대 선결조건의 하나라는 점과 11.7 민주당의 의회 장악 이후 미국의 관심이 보다 강해졌다는 점이다. 즉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자동차 분야는 한국측의 공세 분야가 아니라 미측의 핵심 관심 분야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국측은 관세철폐를 댓가로 심각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2. 무역구제와 전문직 비자쿼터
- 몇 되지 않는 기대이익의 좌절
무역구제와 전문직 비자쿼터는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측이 구체적인 실익을 기대할 수 있는 몇되지 않는 기대분야이다. 특히 미국의 반덤핑 남용은 재계에서 가장 중시했던 분야로 연 15억불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 무역구제 협상 시한을 앞두고 한국정부는 무역구제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작년 12월이 시한이었던 이유는 미국의 법체계상 무역구제 분야에서 법 개정이 필요할 경우 180일 이전에 미 의회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초 미국의 서북부 몬태나에서 5차 협상이 열리고 있던 시각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의회에 날라가 무역구제 분야에 대한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미 상무부는 12.27 무역구제 분야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하면서 무역구제 협상은 사실상 종료되었다.
이로써 한미FTA 협상의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 반대 진영은 무역구제에서 성과를 얻어 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일찌감치 지적하고 있었지만 협상단은 근거없는 낙관론을 유포하며 밀실협상을 시도하였고 협상단이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음이 명백해졌다.
이후의 무역구제 협상은 사실상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는다. 실익이 보장되는 무역구제 분야의 조치가 제외된 채 무역구제위원회 설치와 같은 지엽적인 분야를 둘러 싸고 협상이 이어지고 ‘무역구제-자동차.의약품’ 빅딜과 같은 허황된 논리가 판을 쳤다. 이는 정부가 이미 협상이 끝난 조건에서도 협상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최종 협상에서 중요한 기대이익으로 간주되었던 전문직 비자쿼터도 무산되었다. 이로써 한국측이 협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익은 거의 사라졌다.
3. 자동차와 섬유
- 협상타결의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한 발버둥과 치욕적인 ‘빅딜’
한미FTA에서 한국측이 기대했던 무역구제 분야에서의 협상이 무산되자 한국측은 협상을 타결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건수’가 필요했다. 이로부터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여기서 성과를 얻기 위해 상상하기 어려운 ‘빅딜’을 감행한다.
먼저 자동차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한미FTA 협상에서 공산품의 관세철폐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한국의 공산품을 먼저 인하하며 미국의 관세인하를 유도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국측은 자동차 분야의 관세인하를 마지막 순간까지 거부하였다.
협상 중간이라면 모를까 협상 최종 국면에서는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관세 철폐가 이뤄지지 않자 한국정부는 대단히 당황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무역구제가 사라진 조건에서 자동차 관세인하는 한국측이 협상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자동차 협상이 최종 국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 협상 국면에서 전문가들은 미국의 자동차 관세 인하의 마지노선은 ‘10년내 철폐’라고 보았다. 실제로 한국정부도 당초 ‘즉시 철폐’에서 ‘3년내 철폐’로 요구 조건을 하향할 정도로 미국측의 태도는 완강했다.
최종 협상 국면에서 한국측은 미국의 자동차 분야의 관세를 철폐하기 위한 ‘도박’을 감행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도박은 성공했다. 3000cc 이하 자동차는 ‘즉시 철폐’, 3000cc 이상은 '3년내 철폐'라는 예상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측이 최종 협상 국면에서 한국측이 선방한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던 핵심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한미FTA 전체를 놓고 보면 미국측의 자동차 관세인하 2.5%를 철폐시키는 것은 협상의 핵심적인 이득으로 선전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2.5% 관세철폐의 효과는 3.4억불~8억불 수준이고 이마저 “현대차의 미국 현지 생산이 현행 20%선에서 3년 뒤 70%, 4~5년 뒤 100%까지 갈 수 있어 관세 철폐 의미가 없고 부품도 현지 조달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픽업트럭은 수출용으로 만들지도 않는다”(경향신문 4.2자에서) 협상 타결 직후 한미FTA 협상의 최대 성과로 포장되고 있는 자동차 분야의 관세철폐의 효과가 사실상 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자동차 분야의 성과를 위해 한국정부가 치른 댓가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관세철폐의 댓가로 자동차 세제 개편, 소비자 인식 개선 등 무려 80여가지의 요구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이 20%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막무가내식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겨레신문 4.2 기사는 이러한 정황을 잘 보여준다. 위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승용차 관세 즉시철폐를 얻기 위해.... 일반 분쟁해결절차보다 분쟁 중재속도가 절반 이상 빠른 ‘신속분쟁해결절차’를 만들어 주었고” 이에 따르면 “위반 판정 때 일반 절차처럼 위반 사항을 시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동차 수출기업들이 협정에 따른 관세특혜마저 빼앗기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보여주고 있는 강경 기류에 비춰보면 한국정부는 위와 같은 양보를 많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질수록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섬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측이 섬유의류 분야를 수혜업종으로 선전하는 것 자체가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측이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기대이익이 없다는 것의 반증이다. 섬유의류는 저부가가치 산업이고 미국이 관세를 모두 철폐하고 원산지 규정의 예외로 적용했을 경우라도 한국측의 기대이익이 2~4억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12월부터 공식협상과 별도로 섬유 분야의 고위급협상이 지속되었다. 이는 한국정부가 한미FTA 협상 타결시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그 무엇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섬유의류 분야에서 고위급 협상이 진행된 이유는 그것이 커다란 이익이 있어서가 아니라 협상에 도장을 찍을 때 실익이 얼마이든 이익이 되는 항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섬유의류분야에서의 실익을 위해 한국정부는 심각한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미측은 중국 제품의 우회수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출업체의 경영정보를 요구하고 있고 심지어는 “한국 섬유업체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는 채 마치 압수수색처럼 일방적으로 현장 실사를 할 수 있게 됐다.”(한겨레신문 4.2자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부가 미국의 섬유시장 개방을 위해 미국에 안전성 논란이 있는 ‘유전자변형생물체’(LMO)에 대한 수입승인 절차와 안전검사를 생략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결국 막판 협상에서의 정치적 ‘빅딜’은 한국측이 무역구제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사라진 조건에서 최소한의 협상 명분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이를 위해 굴욕적인 양보를 했음을 보여준다.
4. 신통상이슈와 분쟁해결절차 및 협상 원칙
- 한국경제의 미국화의 제도적 보장
보통 통상협정은 공산품의 관세인하를 기본으로 한다. 반면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 따위를 신통상이슈라고 부른다.
신통상이슈는 미국의 공세분야이고 생활에 미치는 파괴력도 큰 만큼 정상적이라면 논란은 이 영역에서 활발히 진행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영역은 미국측의 일방적인 공세분야이고 한국측에서 마땅한 저항 집단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정부 또한 방어할 의지가 없는 조건에서 대부분 미국의 의도대로 관철되었다. 이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적재산권 보장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 금융분야에서 국경간 거래의 허용, 법률.회계 서비스의 개방, 방송쿼터의 완화 및 방송채털사용사업자의 지분 제한 등이다.
둘째, 각종 분쟁 해결 절차가 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비위반제소 그리고 분야마다 설치될 각종 협회나 위원회 등을 고려하면 협상 이후에도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이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화할 때 총감부니 통감부니 하는 개입 장치를 설치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셋째, 협상의 원칙으로 서비스 협상에서 네가티브 원칙, 래칫 원칙, 미래의 최혜국대우(MFN)에 합의한 점이다. “이 세 가지가 어울리면 이 FTA는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현재 정의할 수조차 없는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되고(네가티브 방식), 언젠가는 모근 서비스가 개방될 수밖에 없으며(래칫 원리), 미래에 한미FTA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나라와 FTA를 맺게 될 경우 그 조항은 한미FTA에 소급 적용된다.(미래의 MFN)”(정태인, 프레시안에서)
이를 종합하면 ‘낮은 수준의 FTA’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미FTA는 이후에도 미국의 개입이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보장되며 오직 개방을 확대하는 기조로만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FTA이다.
당장의 개방 수준과 분야와 함께 중요한 것은 위 메카니즘에 의해 한국경제는 미국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바로 이 점이 관세 협상보다 몇 백배 중요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손익을 떠나 한국경제의 철학과 방향을 묻는 가장 본질적인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5. 농업과 개성공단
농업은 쌀 이외에 모든 분야가 개방되었다. 협상 최종 국면에서 개방 예외 품목을 그래도 10여개 정도는 확보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쌀 이외에 모든 분야를 개방했다. 관세인하 기간을 장기간 확보한 점이나 저율할당관세, 계절관세 등을 도입한 것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는 농민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 관료들의 철학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담화에서 농촌 사회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령화되었고 농업에도 시장원리가 도입되어야 하며 소수의 경쟁력 있는 겸업농을 육성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한미FTA 협상이 농촌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점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한중, 한EU FTA 등에서 정부 관료들의 농촌.농업에 대한 태도가 유지된다고 할 때 농촌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라는 방식으로 합의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노동.인권의 존중이라는 전제 조건이 걸려 있고, 한국정부의 입장과 달리 USTR 바티야 부대표는 “이번 FTA 합의에 따라 북한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조항은 없다”(민중의 소리에서)로 밝히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개성공단에 대한 논란과 함께 중요한 것은 한미FTA를 둘러 싼 정치적 맥락이다. 한미FTA는 한미간의 경제적 유착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정치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체결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FTA는 싱가폴,호주,태국,말레이지아 등 중국을 포위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한미FTA는 한국경제를 미국화하여 남북 통일의 경제적 지반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개성공단에서 보여준 나름의 ‘집착’은 이들이 얼마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정치군사적 역관계를 낭만적으로 보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민경우 (범국본 정책팀장)
mkw197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