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10일째 단식농성 중인 오종렬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공동대표의 초췌한 얼굴에서는 분노를 넘어 선 그 어떤 결기 마저 엿보였다.
전날 서울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열린 '농어업인 대상 국민과 함께 하는 업무보고'에서 '농업포기'를 내비치고,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부친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다.
농업분야 고위급 협상이 진행중인 와중에, 노 대통령은 "우리가 과연 농업을 방어하고 보호할 수 있는가", "식량안보라는 가정이 정말 맞느냐", "상품으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를 더 못짓는다"는 등의 표현으로 한미FTA 협상 타결을 위해서라면 농업을 대폭 양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FTA하면 광우병 소고기 들어온다며 단식농성하는 이들은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서 들여오는 뼛조각 묻은 소고기에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며 "대통령이 거짓말해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오 대표는 "만약 한미FTA협상을 체결하면 즉각 전민중적 봉기로 치달을 것이다.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품안으로, 역사와 정의의 품안으로 돌아오라"고 노 대통령에게 최후 통첩을 날렸다.
전날 대통령 발언 현장에 있었던 윤요근 한국농촌지도자회 중앙회장은 "노 대통령이 '어차피 FTA가 체결 안돼도 광우병 소고기는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가 막혔다"고 개탄했다. 농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 체념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여성농민을 대표한 윤금순 전국여성연대 준비위원장은 "대통령이 어제 기가 막힌 엄청난 얘기를 쏟아냈다. 할 수 없어서 밀려서 했다고 고뇌를 토로하고 사과라도 하려나 했는데 적반하장을 넘어섰다. 이제 (대통령에게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위원장은 "농민이 국민이 아닌 것은 진작 알았지만 (어제 대통령은) 농민뿐 아니라 전국민을 모욕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만 남았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짓밟았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그간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었는데 대통령이 오히려 우리 마음에 불을 질렀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문경식 전농 의장이 낭독한 '망국적 농업 포기 발언 노무현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문'을 통해, 50여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퇴출해야 할 것은 농업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라면서 "계속 이렇게 국민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묵살한다면 거대한 범국민적 저항이 청와대를 뒤덮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한편, 이날 농성장에는 7년 만에 상임집행위 결의에 따라 참여연대 김민영, 김기식 신.구 사무처장이 거리농성에 결합했으며, 이 단체 사무처 간사와 활동가, 회원 10여명이 기자회견장을 지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