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통일뉴스 상임고문/재미자유기고가)
지난 2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HEU/위조지폐/마약... 근거없는 북한 때리기 반성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미국정부와 미국언론의 발표나 논조에 무조건 동조하여 북한을 비방하는 한국 언론의 자세를 비난하였다. 한국 언론은 그 성명을 과연 어떻게 받아드렸으며 어느 정도 반성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언론이 북한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나 언론은 북한이란 나라 자체를 ‘깡패국가’ 또는 ‘불량국가’로 지목해 왔다. 그리고 흔히 고립된, 궁핍한 또는 변덕스런 나라라고 불렀다. 또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독재하는, 전제주의의, 압제적인, 운둔한, 스탈린주의의, 망가진 혹은 변덕스런 정권이라고 지칭했다. ‘김정일 정권’이란 호칭에도 경멸의 뜻이 포함돼 있다.
6자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협상태도에 대해서는,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 협상에 응해도 애매한 대답을 하거나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혹은 일부러 시간을 끈다는 등으로 비난해왔다. 또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약속을 물리거나, 회피하거나, 위반하거나, 나중에 다시 위협을 가중시킨다면서 북한은 속이는 일과 약속위반으로 유명하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받는 한국 언론이 북한을 보는 눈도 결코 고울 수가 없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의 대북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어서, 합의를 해놓고 돌아서면 딴소리 하거나 번번이 판을 깨기가 일쑤이며 합의를 이행하는 경우보다 위반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북한의 버릇이요 행실이요 행태라고 매도한다.
1994년 북미제네바 합의도 북한이 이를 위반하고 우라늄 핵개발에 나선 것이 들통 나면서 깨진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이번 2.13 합의 이후의 정부의 대북자세에 대해, 너무 서두른다, 북한의 행동을 좀 더 지켜보자, 혹은 다른 나라들은 가만있는데 우리만 혼자 앞서나간다고 못 마땅해 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를 속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기로는 어쩌면 미국이 으뜸가는 명수인지 모른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정부가 본토인들과 맺은 수많은 협약 중 미국이 제대로 지킨 것은 거의 없다. 북한하고도 휴전협정 3개월 내에 외군철수문제 등을 다룰 관련국 정치협상을 열기로 약속해놓고도, 2개월 후에 주한미군 무기한 주둔을 규정한 한미방위조약을 맺어버렸다. 그 후 한반도에 핵무기를 도입한 것도 휴전협정 위반이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도 북한체제가 곧 붕괴한다는 정세판단에 따라 당초부터 이행할 의사가 없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고 그때 교섭에 임했던 미국 관리들이 후에 술회했다. 실제에 있어서 미국은 대북 중유제공을 정시에 이행하지 않았으며, 2003년을 완공 목표로 잡은 경수로공사도 2002년 말 시공률 불과 35%도 미달한 상태에서, 북한이 우라늄농축계획을 시인했다는 트집을 잡아 중단하고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시종 우라늄농축계획의 존재를 시인한 적이 없다고 맞서 왔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미국의 당국과 언론도 북한 우라늄계획에 대한 정보의 신빙성에 확신을 못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과연 딴소리하며 판을 깨고 합의를 이행안하는 쪽인지 한국의 언론도 냉정히 분석해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5-6일 뉴욕에서 열린 양자접촉을 계기로 북미양측은 이제 급속한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평화의 실현도 예상외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임기 2년을 남긴 부시가 재임 중에 북핵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또 북한도 이 기회에 반세기 동안 추구해온 대미관계정상화를 성사시키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때마침 서울에서 열린 국제기자연맹(IFJ) 특별총회에 참석한 에이든 화이트 사무총장도 지난 13일 남북의 언론인들이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한다. 한국 언론은 오랫동안 북한을 인접적국(隣接敵國)으로만 인식하고 미국의 장단에 맞춰 북한을 헐뜯던 자세를 통일지향적인 방향으로 시정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