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타결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존 볼턴으로 대표되는 미국내 강경 네오콘들은 ‘나쁜 타결’이라고 반발하다 부시 미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조.동’이 ‘핵무기는? 고농축우라늄(HEU)은? 우리가 뒤집어쓸 비용은?’ 운운하며 ‘2.13합의’를 폄하하고 흠집내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일부 ‘보수’단체는 ‘김정일 정권에 또 퍼주기를 했다’며 ‘노무현 정권의 사죄’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고상하게 말하면 질긴 냉전적 사고의 유산이며, 본질적으로는 북에 대한 증오의 표현입니다. 이 증오는 이 땅에서의 자신들의 위상을 유지하고 반대파를 제거하고자 하는 음험한 권력욕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더 고약합니다.

미국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네오콘 계열의 평가를 대문짝하게 싣는다든가, 당초 이번 협상에서 핵무기나 HEU가 의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언급조차 못했다고 비난한다든가,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한 합의에 대해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수작이 다 그러한 증오 또는 음험한 권력욕과 관련 있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과 싸워왔던 세력들에게서도 일부 편향은 드러납니다. ‘미국의 굴복, 미국의 참패, 북한의 일방적 주도, 북한의 대승’과 같은 평가가 그런 것들입니다. ‘북한의 회담 복귀는 국제적 압력의 산물’이라는 일부 평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싸움으로 끝나는 전쟁도 아니고, 북.미가 이제 실질적인 협상국면으로 돌입해 신뢰구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2.13합의'는 평화공존이라는 목표점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승리 또는 패배'라는 단정적 평가는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 누가 이기고 졌나가 중요한 국면도 아닙니다. 북.미가 서로 크게 무엇을 내다보고 그에 따라 어떤 공통의 인식기반을 만들었으며, 양자가 취할 어떤 조치가 미래의 어떤 국면을 열어놓을 수 있는가를 조망하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때문에 '당했다'는데 집착하는 '조.동'에 반발해 '이겼다'에 집착하는 것도 관성적 사고, 다시말해 냉전의 질긴 유산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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