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자리에서는 20년 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민주열사 박종철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있었다. 박씨의 선배인 서울대 모 교수는 그 자리에서 민주주의가 됐다는 요즘 박씨를 죽인 세력들이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있다고 개탄했다한다. 그리고 어느 보수 언론은 박씨가 죽은 후 정권을 잡은 386들이 오만과 부실로 역사에 흙탕물을 튀겨놓았다며 유신의 과거를 그리워했다.

9일 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1975년 사형당한 8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강압과 고문에 의한 자백만으로 사형을 선고한 ‘사법살인’을 32년 만에 사법부 자신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과 가족들이 억울한 누명은 벗게 됐으니 매우 다행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이 일에 가담한 이들의 고백과 참회가 이뤄져야 하며 국가 또는 사회 차원에서 ‘검은 시대’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1970년대 긴급조치위반 사건의 판결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한데 대해 당시의 실정법에 따른 판결을 두고 지금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로서 잘한 일이었다면 실명이 밝혀진다 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이름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면 아무리 실정법에 따른 것이었다 해도 잘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반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지난날 그릇된 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잘못은 엄중히 따지자면서 막상 불법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악법을 만들어 내고는 사법부를 시녀로 격하시키고 그 악법대로 판결하라고 강권으로 사법부를 짓누른 세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철퇴를 내리지 않고 있는데 있다.

해방이 됐다, 민주화가 됐다 혹은 개혁을 한다 했지만, 일제 때 헌병, 경찰이나 또는 박정희나 전두환 밑에서 서슬이 시퍼렇던 군인, 검사들이 아직 제대로 죄과를 치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여전히 권력의 노른자위나 그 언저리에서 행세하고 있거나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옛날 판결을 번복하고 보상을 해 준다고 해서 ‘어두운 과거’가 청산 되고 정의가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혁당 사건 무죄 판결이 난 후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진 것이 큰 다행이며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피상적인 논평을 발표했다. 그러고 박정희의 여식은 그 사건의 재심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면서도 여전히 대통령이 돼보겠다고 ‘아버님께서...’를 들먹이며 민심 현혹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한국의 한심한 현실이다.

우리들은 적은 이익을 놓칠까봐 큰 이익을 희생시키는 버릇이 있다. 해방 후 그나마 일할 사람이 없다고 친일세력에게 나라 일을 맡긴 일, 안보는 미국에게 맡기는 게 편하다며 작전통제권도 다 갖다 바친 일, 일본 돈 좀 얻어 쓰려고 대일 과거청산을 소홀히 해 버린 일, 그리고 지금은 경제 좀 돌아가게 했다고 박정희독재를 아쉬워하는 일 등이 그런 버릇에서 나온 것이다.

며칠 전에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쫓아오니 20년 후가 걱정된다고 했다며 우리 경제가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중국은 원래 우리보다 크고 앞섰던 나라다. 조만간 우리를 앞서고 일본까지 앞설 것을 누가 막겠는가? 일본은 우리보다 크지만 원래 많이 앞선 나라는 아니었다. 지금 남한의 인구는 일본의 3분의 1이요, 면적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통일되면 인구는 일본의 절반이 넘고 면적은 3분의 2가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게 과히 뒤지지 않는 경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심리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적은 것을 잃을까봐 능히 가질 수 있는 큰 것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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