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백남순 외무상이 2일 타계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진 3일부터 정부는 어떤 형식으로 애도의 뜻을 표할지 꽤 고민한 모양입니다.

결국 ‘분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의도에서 4일 외교부 보도참고자료 형식으로 공식성을 한껏 낮춰서 조의를 표명했습니다. 지배적인 평가는 ‘수구보수’세력의 서슬에 ‘알아서 기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백 외무상의 사망이 알려진 직후 국무부 숀 매코맥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조의(弔意)를 표명했습니다. 망자(亡者)에 대해서, 그리고 파트너에 대해 예의를 지킨 셈입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의 죽음에 대한 한.미 정부의 다른 대응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해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죽음이 알려지자, 김영삼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병태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군비상경계태세’를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던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예의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이른바 ‘조문(弔問)파동’과 ‘공안정국’으로의 회귀였습니다.

반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 도중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주석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시했고, 북한과 회담 중이던 갈루치 차관보는 직접 제네바 북한대표부를 찾아 조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애도표시에 대해, 김영삼 정부는 주제네바 한국대사를 통해 '공식' 항의까지 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이처럼 거듭된 경솔한 처신 끝에 김영삼 정부는 북-미 제네바 합의 과정에서 전혀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경수로 비용만 떠 안고 말았습니다.

한국 외교.안보 정책집단에게 있어 이 ‘악몽’은 두고두고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호시절 탓도 있지만, 94년의 뼈저린 교훈도 작용해 정부는 2005년 10월 연형묵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06년 8월 림동옥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사망시 통일부 장관 명의의 대북 조전(弔電)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7.5미사일 발사’와 ‘10.9 핵실험’ 이후, 정부는 여론을 핑게로 94년으로 회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공식 '조의' 표명조차 못하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대북지원을 얘기합니다.

돈 들지 않는 조전 하나도 못보내면서 돈드는 대북지원은 어떻게 재개하겠다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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