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재개의 일등공신은 중국 탕자쉬안 국무위원이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10월12일 부시 미 대통령,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미 양정상간 간접대화를 성사시켰다.
회담 재개의 일등공신은 탕자쉬안
탕 특사는 19일 김정일 위원장에게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고 복수의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추가 핵실험 유보’, ‘금융제재 해제 보증시 6자회담 복귀’라는 선물을 보냈다.
그 결과 중국 외교부가 밝힌 바와 같이, 31일 “3개국은, 6자회담을 다시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도 깊숙한 의견 교환을 했"으며 "6개국이 편리한 가까운 시기에 6자 회담을 개최한다는데 합의”하게 된 것이다.
관심을 끌었던 회담재개 조건과 관련, 1일 북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6자회담 틀안에서 조미사이에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론의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반면, 31일 힐 차관보는 “북한은 이르면 11월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를 밝혔다면서도 “우리는 북한이 반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금융제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실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6자회담 틀안에서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론의”한다는 북 외무성 대변인의 언급은 “북한은 이르면 11월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하였다는 힐 차관보의 발언과 일치한다. 회담 형식에 있어서는 미국의 입장이 관철된 셈이다.
또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는 북의 발표는 “우리는 북한이 반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금융제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실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측 발언과 일치한다. 내용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이 관철된 것이다.
미국은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관철했다고 주장할 수 있고 북은 ‘사전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금융제재 해결 보증’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니 서로 체면을 구기지 않고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김정일 위원장이 탕 특사에게 "금융 제재를 완벽히 해결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도 아니고, 제재(해제)에 관련해 일정한 보증이 있으면 나간다"며 유연성을 보였을 때 어느 정도 예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선 금융제재 해제’에서 ‘선해제 보증’으로 ,
미국은 ‘선 6자회담 복귀’에서 ‘선복귀 보증’으로 각각 양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31일 베이징 회동의 성격에 대한 북.미의 인식이다.
북 외무성 대변인은 “조미접촉을 기본으로 한 쌍무 및 다무적 접촉들이 진행되였다”고 하여 핵문제가 기본적으로 북-미 양자가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반면 현지시각 31일 부시 미 대통령은 “중국이 이 회동을 통해 6자회담을 재개하는 합의를 이끌어 낸 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싶다”고 언급, ‘북-미 직접대화는 없다’는 기존입장과 베이징 회동이 상호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미 양자대화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그간 미국측 입장의 점진적 변화에 고스란히 반영 돼 있다. 당초 미국은 ‘금융제재’ 문제는 불법행위에 대한 법집행 차원의 조치로서 6자회담과 무관하다며, 단지 ‘6자회담 틀내에서의 양자대화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올해 3월 북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의 방미시 미국이 굳이 회담이 아니라 ‘브리핑’이라고 부를 만큼 신경을 곤두세운 것도, 지난 5월 도쿄 동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과의 만남을 거절한 것도 별도의 ‘위폐회담'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9월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기본적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하고 날짜까지 다 제시, 사전에 6자회담을 개막하기 전에 따로 만나자고 하면 그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다”는 선까지 물러섰다.
결론적으로 6자회담 재개 및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선 금융제재 해제’에서 ‘선해제 보증’으로 양보했고, 이를 취급할 북-미 ‘금융’회담에 대해서는 미국이 ‘선 6자회담 복귀’에서 ‘선복귀 보증’으로 양보한 셈이다.
여전한 난제, ‘금융제재’ 문제
어렵사리 6자회담 재개 합의를 이뤘으나 ‘금융제재’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힐 차관보도 현지시각 31일 “회담에서는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다루게 되겠지만”, “평양 당국은 달러화 위조를 포함해 워싱턴 당국이 말한 '불법행위'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여 ‘금융제재 해제문제’가 난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북한은 그러나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힐 차관보의 언급이다. 부시 대통령도 “우리는 파트너들과 협력을 통해 현재의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집행되도록 할 뿐 아니라 회담이 효과적으로 진행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도록 그 지역에 팀들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제재’ 등을 둘러싸고 회담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 북은 ‘추가핵실험’,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 이행’이라는 위협카드를 계속 가지고 있겠다는 뜻이다.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
상황은 녹록치 않지만 이번 베이징 3자회동으로 북-미간 극한 대결국면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과의 대화 의지를 의심받았던 부시 대통령이 31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극동지역에 가서 해낸 훌륭한 일에 감사하며, 우리가 계속 노력해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임을 국민들께 다짐한다”며, 대화파들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준 것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11월말에서 12월초에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회담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금융제재 문제도 그렇거니와 9.19공동성명의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문제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무엇보다 북-미간 누적된 불신이 문제다.
또 지난 10월 9일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 미국과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으로 마주앉게 되는 첫 회담이니만큼 6자회담이 다뤄야 할 한반도 비핵화라는 주제의 무게감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중개자, 한국은 아이디어 뱅크 역할
한가지 희망이라면, 역설적이지만 어느 때보다 절박한 위치에 선 한.중의 중개역할을 들 수 있다.
중국이 겉으로 드러난 중개자라면 한국은 회담 재개와 진전방안의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른바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방침’을 확고하게 공유하고 있는 한.중은 탕자쉬안 특사의 지난달 18-19일 방북을 통해, 양국 ‘대북포용정책’의 ‘레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추가핵실험을 유보시켜 외교적 해결에 전념할 시간을 벌었고, 한-미, 한-중간 실무선 논의에서 구체화시켜온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통해 회담 재개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우리 정부가 추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내용 중 중단된 회담을 재개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 방안이 밑바탕이 됐다”는 31일 외교부 당국자의 언급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회담 재개 이후에도 주요 플레이어로서의 중국, 컨텐츠 생산자로서의 한국의 중개역할에 따라 회담 진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의 분발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이광길 기자
tongil@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