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천명한대로 9일 오전 '핵시험'을 실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과학연구부문에서는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핵실험 의지를 밝힌지 6일, 유엔안보리에서 핵실험 금지를 촉구하는 의장성명이 발표된지 3일만에 나온 조치이다.

북한은 지난 3일 외무성 성명에서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위협과 제재압력책동은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대응조치로서 핵억제력확보의 필수적인 공정상 요구인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3일 외무성 성명 발표 당시만 하더라도 '대화의지'와 '핵실험 강행의지'가 반반으로 해석돼 빠른 시일내에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낮게 관측됐다. 일정 기간 북미간에 본격적인 협상의 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적 예상보다 빨리 북한이 핵실험을 전격 실시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북, '미국 협상의지 없다' 판단

무엇보다도 미국의 협상의지가 미약하다고 북한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3일 북한의 핵실험 의사 표명 직후부터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핵실험시 제재에 무게를 두고 고위 관료들이 강성 발언을 이어갔으며, 국제사회가 바라는 북미 고위급 양자 접촉에 나서지 않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는가 하면 협상파로 알려진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조차 6자회담 틀내에서의 양자회담이라는 기존 입장의 반복 외에 유의미한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은 결코 핵 무장한 북한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식의 강성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대북 압박으로 몰고 갔고 여기에 중국과 한국마저 동의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핵실험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공석이 된 유엔주재 차석대사를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북한의 입장 때문일 것이다.

주변 정세, 시간 끌수록 불리

북한이 핵실험을 조기에 실시한 또다른 이유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에서 보여주듯 주변 정세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6일 이례적으로 유엔이 발빠르고 단합된 모습으로 북한의 핵실험 금지를 촉구하고 나섰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한 제재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은 더 이상 주변 여건의 호전을 바랄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특히 중국이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의장성명에 찬성하고 나섰는가 하면 한국 정부도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 의사 표명으로 인해 미국이 받는 '대화 압박' 수위보다 북한이 받는 '핵실험 금지와 핵실험시 제재 압박'을 받는 수위가 더 높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주는 한중일 3국간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는 시점이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지듯 3국 정상들은 대체로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대한 비판보다는 북한의 핵실험 의지에 대해 반대의사를 더 강도높게 거론하고 나설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자칫 시간만 끌다가는 국제사회의 십자포화를 맞고 나중에는 핵실험 실시마저 효력이 감소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수도 있다.

북, 당창건 기념을 맞춰 핵실험

9일 북한은 핵실험을 발표하면서 "핵시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으로서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3일 외무성 성명에서 "우리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하게 뚫고 우리 식대로 조선반도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것이다"고 천명한 바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맞서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자신감과 단결력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 일자를 9일로 잡은 것도 8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동당총비서 추대 9주년이고 10일이 당창건 61주년 기념일인 점이 감안됐을 것이다. 물론 미국의 중간 선거 일정 등 국제정세도 십분 고려했을 것이다.

북,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

북한은 핵실험 직후 "핵시험은 조선반도(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얼핏보면 핵실험과 평화와 안정은 상호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논리는 다르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국제적 합의는 지난해 4차 6자회담을 통해 채택된 9.19공동성명이다.
따라서 9.19공동성명의 이행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평화에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9.19공동성명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시작으로 인권문제 제기 등 대북 압박정책으로 인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파탄나고 말았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미국을 대화의 장에 강제로 끌어내는 압박카드로서 핵실험을 꺼내든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2.10 핵무기 증산선언'에 이어 이번 핵실험은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공개선언한 것이고 따라서 핵비확산 정책을 추구해온 미국의 대외정책이 실패했음을 전세계에 선언한 셈이다.

미국, '핵 보유국 북한' 강경 제재냐 대화냐 갈림길에 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국의 핵비확산 세계전략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란 역시 핵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중동지역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형국이다.

이제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핵보유국 북한'에 대해 더욱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에 나설 것인지 대화를 통해 한반도비핵화를 북한과 협상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는 핵보유국 북한을 지금보다 더욱 강도높게 고립 압살시켜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이고 후자는 지금까지의 대북 압박정책을 포기하고 북한과 협상을 통해 9.19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보다 강도 높은 대북 압살정책을 실시하려면 유엔 의장성명이 예고한 것처럼 대북 경제, 군사적 제재 조치를 함축하는 유엔헌장 7장을 포함하는 유엔에서의 대북 규탄성명을 채택하고 적극적 경제, 군사적 제재 조치를 실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제재조치로는 북한을 결정적으로 압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군사적 제재조치 밖에 없는데 이는 미국으로서도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6일자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선전포고'로 간주한 상황에서 군사적 조치를 포함하는 유엔 결의가 나오고 이것이 실천에 옮겨질 경우 '전쟁 상황'으로 간주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한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만 할 것이다.

더구나 군사적 제재조치에 중국이나 한국이 반대하고 나선다면 지금까지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던 관련국들의 대오가 흐트러질 수 있어 미국 단독으로 군사적 제재조치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다른 미국의 선택은 핵보유국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대북 금융제재 등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먼저 북미간 9.19공동성명 이후 발생한 상황악화조치들에 대해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이후 6자회담을 재개시켜 9.19공동성명의 이행방안을 마련해 이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일정기간은 강력한 대북 제재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대북 제재가 유효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대화와 협상의 국면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 미국은 실패한 대북정책 전반을 전면 재검토할 대북 정책조정관을 임명해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거나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상황의 반전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할런지도 모른다.

남과 북, 9.19공동성명 이행 위해 힘 모아야

9.19공동성명은 북한의 핵포기 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담겨있고 북미, 북일간 관계정상화(수교)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모색, 대북 경제지원 등 포괄적 평화 방안이 담겨있다.

9.19공동성명은 북과 남이 6자회담이라는 형식의 국제사회 무대에서 당당히 주역으로 참여해 이루어낸 역사적 성과물이다. 따라서 9.19공동성명의 이행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는 물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는 결정적 조치가 될 것이다.

9.19공동성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반미촛불시위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라는 남측의 상황발전과 2.10핵무기 증산선언 등 북측의 대미 협상력에 의해 어렵사리 마련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백과전서이다.

미국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남과 북, 한반도의 민중들은 한반도의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온힘을 모아야 할 때이며, 따라서 어느 때보다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남북간 협력이 절실한 때이다.

한국 정부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역을 자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나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유효한 대처가 불가능했던 점을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신중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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