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수(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회원)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KAL858기 사건 중간발표 중 “김현희의 안기부 진술내용과 1972년 촬영된 화동소녀 사진의 진위 분석 등을 통해 김현희는 북한 출신 공작원이었음을 확인”에 대한 검토

KAL858기 사건(이하 본 사건)은 수도 없이 의혹이 많지만 하나를 빼고는 다 부차적이다. 그 하나는 다름 아닌 김현희의 신분에 관한 것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즉 김현희가 이북 출신이고 이북 공작원이 확실하면 본 사건은 안기부 발표대로 북한의 소행인 것이며, 반대로 이북 출신이 아니거나 이북 공작원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안기부를 중심으로 한 남한의 자작극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가 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이 대목에 가장 중점을 두고 한 점 의혹 없이 명약관화하게 밝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발전위는 이 중요한 대목에 대해서 지난 8월 1일 조사결과 중간 발표를 통해 “김현희의 안기부 진술내용과 1972년 촬영된 화동소녀 사진의 진위 분석 등을 통해 김현희는 북한 출신 공작원이었음을 확인”(발전위 중간보고서 26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조사 내용을 너절하게 늘어놓고 있다.

발표문을 좇아 차례로 검토해 보자.




< 사 진 4 >
▶<그라프 곤니치와>(88년 3월 6일자)에 게재된 '김현희인 듯한 소녀'(우측열 두번째 ④).

※<사진 1. 2. 3>은 발전위가 중간 발표시 제시했던 것이며,
<사진4>는 참고 사진으로 필자가 하기와라 료의 사진을 전재한 것임

(발표문 1) : 이 부호는 필자가 편의상 붙임, 이하 같다
○ 1972년 11월 2일 남북 조절위 개최 당시 아카하타(赤旗, 일본 공산당 기관지) 평양 특파원이었던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 (36장) 중 비공개 사진에서 화동소녀 중에 김현희가 있는 사진을 확보하였음20)

20) 2006년 4월 4일 일본 출장시 면담, 하기와라 료가 보관 중인 사진 36장 전량을 입수.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은 1972년 남북 조절위 당시 ‘요미우리신문사 기자가 사진을 촬영하여’ 하기와라 료에게 전달한 것임.

위 발표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진실위가 2006년 4월4일 일본에서 하기와라 료를 만나, 그가 보관하고 있던 2차 남북조절위 관련 ‘미공개 사진에서 화동 소녀 중에 김현희가 있는 사진’(화동 소녀 중에 김현희가 들어 있는 미공개 사진)을 발견하고 이를 인수함.

2.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고 있은 사진은 요미우리 신문사 기자가 촬영해 두었던 것을 하기와라에게 양도한 것임.

1. 에 대해서
이 놀라운, 김현희가 있는 ‘미공개 사진’은 어디에 있으며, 어느 것이란 말인가? 발표문의 참고 사진 중에 있다면, 또 그렇겠지만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발전위가 명시를 하지 않고 있으나 (왜 명시를 하지 않았을까?) 발표문의 흐름으로나, 사진 밑의 설명으로 봐서, 그것은 <사진3>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다. 1990년 2월 15일 다른 사람도 아닌 하기와라 료의 저서를 번역 출판한 『서울과 평양』(다나출판사, 113쪽)에 버젓이 나와 있는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발전위가 ‘미공개 사진’이라고 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더구나 그 안에 ‘김현희가 있다’니? 그러나 이것을 따지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사진3>이 미공개 사진이라고 하는 발전위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2. 에 대해서
마치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 (‘미공개 사진’을 포함한 36장) 모두를 요미우리 신문사 기자가 양도한 것처럼 들리나, 요미우리 기자가 하기와라에게 전한 것은 단 한 장, 그것도 미공개 사진이라는 <사진3>이 아니고 <사진2>였던 것이다.

하기와라는 <사진2>의 입수에 대해서 그의 위의 책 『서울과 평양』과 또 하나의 책, 2001년 5월 10일 분게이순슈 발간한 『기다죠센니 기에다 도모또 와다시노 모노가다리』(북조선으로 사라진 벗과 나의 이야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그는 두 번째 책에서는 그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넣기 위해서 1년간을 공을 들였다고 적고 있다. (첫 번째 책 100쪽, 121쪽, 두 번째 책 217~218쪽 참조)

그러니까 <사진3>은 비공개 사진도 아닐 뿐 아니라 요미우리와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는 것이며, <사진2>는 요미우리 기자로부터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미 17년 전의 일이고, 수년전부터는 <월간조선>에 전재돼 나온 이래 지천으로 퍼져 있다.

아무튼 발전위가 필요로 한 사진은 낡아빠진 이 두 장의 사진 같은데, 이것을 구하러 일본까지 ‘출장’을 가고 ‘미공개 사진’, ‘36장 전량을 입수’ 어쩌고 하며 떠벌이고 있다.

(발표문 2)
-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 가운데 배경으로 촬영된 화동소녀 중에 1990년 2월 15일 국내에서 출간된 하기와라 료의 ‘서울과 평양’에서 김현희라고 보도한 소녀의 모습(월간조선 2001년 11월호 게재)을 확인

위 글로서는 몇 번을 읽어도 문맥이 통하지 않으나, 전하고자하는 요지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기와라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 중에서, 배경은 크게 잡고 화동소녀의 인물은 작게 해서 찍은 사진 속의 한 소녀의 모습이 ‘서울과 평양’에 실린 사진에서 김현희라고 보도한 소녀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확인.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도 그 사진이 전재돼 있음)”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서울과 평양』에는 결코 그렇게 씌어 있는 곳은 없다. 월간 조선 2001년 11월호로 미루어 보아 『서울과 평양』에 실려 있는 사진 중 100쪽의 <사진2>를 두고 하는 말인데, 하기와라가 이 때로부터 10여년 후에는 마음이 바뀌어, 같은 사진을 두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서울과 평양』에서는 그 사진 속의 어느 소녀를 가리켜 ‘김현희’라고 ‘보도’한 적은 없다.

그는 이 책의 원서를 내기 1년 전에 <그리프 곤니치와>에 ‘김현희로 보여지는 소녀’ 라며, 자신이 찍어 두었던 사진 <사진4>를 실었다가 진짜 사진의 주인공인 북한의 정희선에게 호되게 당한 분풀이로, 북한에 대해 한껏 독설을 퍼붓고 난 다음,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이러한 북쪽의 허위 선전 (북한이 김현희를 ‘남쪽 괴뢰도당이 육성한 앞잡이’라고 한 말 : 필자 주)을 봄으로 해서 이 한 무리의 소녀 중에 김현희가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는 당초의 나의 추측이 점점 더 맞아 떨어진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증명은 간단하다. 겨우 몇 명 밖에 되지 않는 소녀들이다. 정희선이 나서서 제 이름을 말했듯이 모두에게 자기 이름을 말하게 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중에 단 한 사람만은 등장시킬 수 없는 여성이 있을 것이다. 지금 서울에 있는 김현희이다” (『서울과 평양』 122쪽)라고 투덜대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가령 발전위가 말하듯 하기라와가 ③번 소녀를 김현희라고 ‘보도’했다고 치자, 그럼 하기라와가 말한 것이니까 아무 검증 없이 그대로 믿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지 않는가?

(발표문3)
- 동 화동사진 논쟁은 1988년 3월 북한의 정희선이 조총련과의 기자 회견중 제시한 사진<사진1>과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가 촬영한 사진<사진2>, 이 두 장의 사진 속에 김현희 위치 (첨부된 사진의 ③번 소녀)에 서 있는 소녀의 진위 논쟁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 글도 문맥이 통하지 않아 해득이 어렵다. 그리고 ③번 소녀가 김현희가 맞는데, 시비를 걸고 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다음과 같이 고쳐 놓고 시비를 가려야 할 것 같다.

<사진1>은 1988년 3월 북한의 정희선이 조총련과의 기자 회견 중 제시한 사진이며, <사진2>는 일본 유미우리신문사가 촬영한 사진이다. 이 두장의 사진 속의 ③번 소녀가 김현희인지 여부로 논쟁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것도 잠꼬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기와라가 정희선의 출현으로 체면이 깎여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서울과 평양』에서 뒷북치는 소리를 해댔지만, <사진1>이나 <사진2>의 ③번 소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이보다 1년 늦게 김현희가 그의 가짜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에서 자기가 꽃다발 소녀라고 여전히 생떼를 쓰고 있지만 ③번 소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정희선은 자기가 제시한 사진(<사진1>에 해당)에서 옆줄 자기 짝(여기서는 ③번)을, 종로여중의 김송희라고 한 데 대해서도 하기와라나 김현희는 물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실이 이러한데 누가 누구와 “논쟁이 지속되어 왔는데”란 말인가?

(발표문 4)
- 이번에 진실위(발전위가 자신들을 축소해서 한 말 : 필자)가 하기와라 료로부터 확보한 사진<사진3>을 통해 북한이 정희선을 내세워 제시한 사진 속 소녀의 모습이 변조된 것임을 확인하였음.

이 글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사진3>의 설명과 연관지어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사진3의 설명문)
<2006. 4 .4 진실위에서 하기와라 료로부터 입수한 사진으로 ③번 소녀가 김현희로, <사진2>의 ③번과 동일 인물. <사진1>의 ③번이 변조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위 두 글을 합쳐서 하나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이번(2006. 4 .4)에 진실위가 하기와라 료로부터 입수한 <사진3>에서 ③번 소녀가 김현희로, <사진2>의 ③번과 동일 인물이다. 북한의 정희선이 제시한 <사진1>의 ③번은 변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맥은 어느 정도 통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글만으로는 <사진3>의 ③번 소녀를 김현희라고 하는 이유와, <사진2>의 ③번과 동일 인물인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또 이 두 사진의 ③번이 서로 닮았다고 해서 <사진1의> ③번을 왜 변조했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은 아무래도 (발표문2)와 연관지어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놓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진실위가 하기와라 료로부터 입수한 <사진3>에서 ③번 소녀가, 1990.2.15 번역 출간된 하기와라 료의 『서울과 평양』에서 김현희라고 보도한 <사진2>의 ③번 소녀와 모습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정희선이 제시한 <사진1>의 ③번이 이들과 닮지 않았다는 것은 변조(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하기 위해)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 솥 밥을 먹는 동안 안기부의 앞잡이로 변신한 발전위는 안기부가 그러한 것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현희를 북한인 신분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다른 것으로 북한 소행으로 꾸며 놓았다 하더라도 김현희를 북한 출신으로 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조작은 모래 위의 성처럼 무너지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김현희가 북한인이어야 함은 본 사건에 있어서는 기반이며 필수 요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현희의 신분을 밝히는데 다른 요건인 가족관계, 거사 행로에 대해서는 안기부의 조작이 노다 미네오(파괴 공작의 저자)씨와 MBC.SBS.KBS 기타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폭로된 터라, 발전위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 고민 끝에 그래도 어수룩한 ‘사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싶어 짜낸 것이 위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 계략에서 전제는 “하기와라 료의 <서울과평양>에서 김현희라고 보도한 소녀”다. 그런데, 앞에서 누누이 설명했다시피 하기와라는 거기서 그런 말은 한 적이 없고, “이 한 무리의 소녀 중에 김현희가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거기에서 하기와라는 ③번에 대해서는 입도 달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전위가 이렇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제로 하였으며, 가령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검증도 없이 김현희라고 한 것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발전위는 <사진1>③번 소녀가 <사진2>의 ③번과 닮지 않았다는 것은 <사진1>의 ③번 소녀의 얼굴을 변조하였다고 트집을 잡고 있다. <사진2>의 ③번이 김현희가 아닌 이상, <사진1>의 ③번을 변조를 했거나 안했거나 문제될 것도 없지마는, 과연 변조 했겠는가 한번은 살펴 보자.

변조나 위조는 첫째로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희선 측에서 <사진1>을 들고 나와 문제 삼은 것은, 하기와라 료가 그라프 곤니치와에 실은 <사진4>에서 ④번을 안기부와 김현희의 증언을 곁들여 김현희라고 하는 바람에, ④번이 자신임을 증언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③번은 쌍방간 전혀 화두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③번을 변조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또 가령 변조한다면, 당시 제일 문제로 떠 오른 것이 김현희의 귀가 귓불이 없는 칼귀라는 것이었는데, <사진1>의 ③번소녀의 귀를 보면 위쪽은 가리어 보이지 않지마는 아래쪽은 귓불이 없는 귀임을 알 수 있는데, 변조를 할 양이면 이 귀부터 먼저 했어야 말이 맞지 않겠는가? 덮어씌우는 수법까지 어찌 그리 안기부를 닮아 가는가?

본래 스냅사진(특히 집단 사진)은 조준의 각도에 따라서, 또 본인의 자세, 예컨대 얼굴을 숙이느냐 드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바가 아닌가? 얼른 보기에는 <사진1>의 ③번과 <사진2>의 ③번이 달라 보인다. 그것은 전자는 고개를 숙이고 또 약간 옆얼굴인데 비해 후자는 정면이고 또 얼굴을 약간 든 데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싶다. 자세히 보면 머리에 흰 꽃을 꽂은 모양새나 머리결이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발전위식으로 따지자면, <사진1>의 정희선도 <사진2>나 <산진4>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며, ?번도 <사진4>와 비교해서 봤을 때 어느 한 쪽은 변조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기는 하기와라 료가 <사진2>의 ③번을 김현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과 평양』에서가 아니라, 『북조선으로 사라진 벗과 나의 이야기』에서였다. 그는 여기서 안면 몰수하고 『서울과 평양』에서와는 판이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울과...』에서는 <사진2>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10년도 더 돼 나온 『북조선으로...』에서는 출처와 입수 경위를 밝히고, ③번 소녀를 김현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연은 발전위의 발표문과는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으나, <사진2>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발전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는 하기와라 료의 인간 됨됨이를 아는데 도움이 되겠기에 좀 길지마는 그의 말을 인용하고 음미해보기로 하자.

그 뉴스로 들끓고 있을 무렵 (그라프 곤니치와에 실린 사진으로 하기와라가 한창 우쭐대고 있을 무렵, 정희선의 출현으로 하루아침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져있을 때니까, 사실은 “그 뉴스로 실의에 빠져 있을 무렵”이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 필자), 아카하타 편집국에 한 인물이 나를 찾아 왔다. 잘 알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개구일성 그는 말했다.
“하기와라상, 당신이 발표한 사진은 틀린거예요, 그 ‘김현희로 보여지는 소녀’라고 화살표를 한 것은 김현희가 아닙니다요.”
나는 악연하였다. 근거를 물었다.
“이것입니다.”
하며 한 장의 사진을 보였다. 나는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하고 같은 꽃다발소녀의 사진이다. 하나 나와는 반대쪽에서 찍은 것이다. “김현희는 이것입니다”라고 하며 내가 화살표를 한 그 옆의 소녀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내 사진에서는 그 소녀는 사람에 가려져 있으나, 이쪽은 온전히 찍혀있지 않은가? 김현희의 특징인 면도날 같은 엷은 귀도 [뚜렷이] 찍혀 있다. ([]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이하 같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해서 찍은 것입니까?”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촬영자의 이름을 댔다. 잘 아는 이름이다. 나는 말했다.
“이것을 제공해 줄 수 없겠습니까?”
“제공하면, 당신은 부정당할 텐데요”
“부정당해도 어쩔 수 없지요, 진실을 위해서는”
“아카하타와 일본공산당도 부정당합니다.”
“사실인 쪽이 소중하니까"
그는 생각한 끝에
“촬영자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이라고 말했다.
이삼일 뒤, 그의 답이 전화로 전해졌다.
“역시 안 되네요, 그는 ‘만약 이것이 밖으로 나가면 나는 사라져야 될 걸’ 하고 겁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단념이 안 돼서, 나는 그를 만날 적마다 이 문제를 끄집어냈다. 드디어 일년 후, 촬영자는 끈기에 졌는지, “그렇게까지 말씀하니 할 수 없다”라며 결심한 듯 제공에 응해 주었다. 마침 쓰고 있던 『서울과 평양』에 그 사진을 수록했다.
그리고, 맨 처음 이야기를 걸어온 지인의 저널리스트는 그 4년 후인 92년에 죽었다. 자연사였다.
이야기를 걸어온 지인인 저널리스트는 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으로도 근무한 스에히로 다쯔오씨. 촬영자는 요미우리 사진부의 미이씨 히데아키씨. 이 두 사람은 평양에 취재하러 와 있었는데 1972년 11월 2일, 마침 평양 교외의 헬리포트에서 나와 만났었다.(217~219쪽) (번역은 필자)


이 글만 봐서는 하기와라는 다시없는 정의파요, 사명감에 투철한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의 말을 차근차근 뜯어보자.

하기와라를 처음 찾아온 사람이 <그라프 곤니치와>의 ‘김현희로 보여지는 소녀’를 두고 ‘김현희가 아니라’고 했을 때, “나는 ‘악연’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만저만 과장한 말이 아니다. 이 ‘악연’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쓰는 말이 아니지마는 일본에서는 자주 쓰는 말인데, 간이 떨어질 만큼 크게 놀랬을 때에 쓰는 말이다. 이 손님이 찾아 왔을 때는 ‘김현희로 보여지는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라 정희선이라는 것은 일본천지가 다 알고 있을 때이며, 누구보다도 하기와라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때인데, 새삼스럽게 “나는 악연하였다”니! 그야말로 악연할 지경이다.

하기와라는 찾아 온 손님이 ‘이것입니다’하고 사진을 내밀자, 또 한번 ‘아악’하는 소리를 질렀단다. 왜냐하면, 내민 사진이 자신의 예의 화살표를 한 ‘곤니치와’의 사진과는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이며, 자기 사진에서는 앞사람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던 소녀가 그 사진에서는 온전히 찍혀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소녀란 ③번 소녀를 말함인데, 이미 정희선의 사진에서 온전히 찍혀 있는 것을 열 번도 더 봤을 텐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아악’했다니!

그러나 하기와라의 진짜 거짓말은 지금부터다.
손님이 화살표를 한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고, 자기가 가져온 사진 <사진2>의 소녀 (③번)을 가리키며 “김현희는 이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랬을까?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그 사람(하기와라가 뒤에서 밝힌 스에히로 다쯔오, 이하 스에히로)도 하기와라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의 김현희를 모르기는 매 한가지일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둘째로 이 무렵은 하기와라나 아카하타가 일개 북조선의 ‘죠센진 여인’에게 형편없이 당하고 있을 때인데, 그렇게 잘나서 말할 정도로 자신이 있으면 같은 특파원으로서 또 같은 일본인으로서 당당히 공표하고 나설 일이지 왜 자기네끼리만 만세를 부르고 있었을까?

셋째로 까딱 잘못했다가는 스에히로 자신도 하기와라가 정희선에게 당한 것처럼 김송희(정희선은 이 ③번 소녀를 김송희라고 했다)에게 당할지 모를 일인데, 함부로 무책임한 말을 했을까?

하기와라 료라는 인간은 정말 비겁하고 무서운 인간이다. 스에히로가 죽고 이 세상에 없다고 해서 이런 거짓말을 해대다니!

스에히로가 이날 하기와라를 찾아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③번 소녀를 김현희라는 것을 하기와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희선에게 당해서 실의에 빠져 있을 그를 평소 잘 아는 사이이고 또 제2회 남북조절위 개최 상황을 평양에서 함께 취재한 사람으로서 위로차 방문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아마 지참해 간 <사진2>도 내놓고 정희선 사진<사진1>이랑, 그라프 곤니치와의 사진 등도 화제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③번을 두고 김현희 운운하는 말은 두 사람 다 떠올리지도 못했고 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하기와라가 자기 사진<사진4>의 ?번이 예쁘장한 것이 김현희의 어릴적 모습이 아닐까 하고 주제넘게 나섰다가 호되게 당한 마당에 ?번과는 생판 닮지도 않은 ③번 소녀를 누군들 설마하니 김현희라고 염두에 떠올릴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스에히로와의 이야기는 하기와라가 다분히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짙다고 봐진다.

그럼 이하의 이야기는 어떠할까? <사진2>를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손에 넣기가 어려웠던 양 기술하고 있지만 나는 십상팔구는 지어낸 것으로 본다.
하기와라가 <사진2>의 ③번 소녀를 보고 “김현희의 특징인 면도날 같은 엷은 귀도 [또렷이] 찍혀 있다”면서 김현희 임을 확신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독자들이 <사진2>를 보지 않았거나 봐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북조선으로 사라진...』에는 아무 사진도 싣고 있지 않다) 아마 이 말을 믿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2>를 보면, ①②④⑤번의 소녀들은 옆머리를 귀 뒤로 걷어 내려서 그야말로 귀 전체가 또렷이 보이지만, ③번 소녀는 옆머리가 귀를 덮고 있어 또렷이는커녕 거의 보이지 않고 겨우 밑 부분만 약간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그런데 “김현희의 특징인 면도날 같은 엷은 귀도 [또렷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설혹 어느 정도 보였다 하더라도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귀를 두고 말하면, 그래도 정희선의 <사진1>의 ③번이 귀가 좀더 잘 보이는 편인데, 왜 하필이면<사진2>라야 하는가? 대관절 그렇게나 자신이 있었으면, 당장에 일을 낼 것이지, 그때는 왜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그보다 1년 후에 나온 『서울과 평양』에서도 ③번에 대해서는 입도 달싹하지 않고 있다가, 10년도 더 지나고 난 후에 엉뚱하게 한 입에서 두 말을 하는가?

이런 하기와라가 2003년 12월 9일 ‘월간조선’에 찾아와, 김현희의 행적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한 『파괴공작』의 저자 노다 미네오에 대해, “노다 미네오는 일본에서는 쓰레기통에 들어간 역사를 다시 꺼내 한국에서 영웅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노다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을 영웅 취급하는 한국의 수준이 한심스럽다”(월간조선 2004년 1월호 252쪽 참조)

내할 말을 사돈이 하고 있는 격이다.
말이 난 김에 하기와라를 존경해 마지않는 월간조선 기자 김성동에 대해 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성동은 “이 사진(<사진2>를 지칭 : 필자)에서는 김현희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사진의 ③번 소녀는 [누가 봐도] 한눈에 김현희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기와라씨는 사진B(<사진2>를 지칭 : 필자)로 북한과의 지루한 공방을 끝낼 수 있었고, 적어도 일본에서는 KAL858기 폭파사건 조작설에 쐐기를 박게 된 것이다. 사진에 관한 설명을 마치면서 하기와라씨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김현희의 사건에 관한 한 내 주장을 다 받아들인다. 노다 미네오 주장은 웃음거리일 뿐이다.’라고” (월간 조선 2004년 1월호 253쪽)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김성동의 인간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하기와라는 “귀가 [또렷이]” 어쩌고 했는데 대해서 김성동은 차마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지 “[누가 봐도] 한눈에 김현희임을 알 수” 있단다.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우리 눈으로는 백번을 봐도 ③번이 김현희로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개눈에는 X으로만 보인다더니 이들에게는 새 사진만 나타나면 김현희로 보이는 것일까?

생각컨데 발전위는 이 하기와라와 김성동의 수법을 고스란히 본 떤 것 같아 쓴 웃음이 난다.

(발표문 5)
그러나 안기부가 1988. 1. 15 수사 발표 당시 제시했던 사진과 하기와라 료가 촬영한 사진 중 김현희가 ‘자신이다’하고 진술했다는 사진(경향신문 1988. 3. 5 게재) (<사진4>를 지칭 : 필자) 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며, 이는 안기부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언론 홍보를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착오임.

조작이 아니라 착오였단다. 안기부가 발표당시의 김현희 북한 출신 만들기 화동사진이 조작임이 발각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무렵, 하기와라가 한 장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럴 듯한 소리를 하자, 아닌 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김현희로 하여금 감개무량한 시나리오를 암송시켜 놓고 우쭐대다가 정희선의 출현으로 하루아침에 개망신을 당한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발전위가 이것을 착오라니, 착오라고 하자. 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국가정보기관이 같은 일을 두 번 착오하는 나라도 있나?

어쨌거나 발전위가 안기부가 김현희의 북한 출신 증거물로 발표한 위 두 사진에서 화동소녀가 김현희가 아니라는 것은 확인한 셈이다.

(부 김원석 쿠바 주재)
○ 1962년과 1965년에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사실을 확인하였음
―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근무 사실은 쿠바 외무성 발행 외교관 명단 (1962년 및 1965년 발행)을 확인22)
22) 국정원 자료 NO.31

국정원 자료에서 확인 한 것을 가지고 입증 자료로 삼는다는 것은 피의자의 자백을 검증 없이 입증자료로 삼는 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드시 쿠바 정부 당국에 조회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부 김원석의 앙골라 주재)
○ 부 김원석에 대해서는 김현희가 진술한 앙골라 주재 무역대표부 수산대표인지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 중요한 일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니, 앙골라 정부에 조회하면 곧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국정원 자료에 오래된 쿠바 외무성 발행 외교관 명단은 있으면서, 그보다 훨씬 가까운 앙골라의 그것은 왜 없는가?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일본 외무성은 본 사건 발생 즉시 대사관을 통해 앙골라 정부로부터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 공표하지 않았는가?
발전위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 대사관과 같은 통보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닌가?

(두 김의 평양→모스크바 행적)
○ 두 김의 평양→모스크바 행적, 바레인으로 간 이유, 로마 경유 고집 이유, 바레인에서의 장시간 체류(1987.11.30~1987.12.1) 이유 등 일부 의혹들은 김현희 면담 후에나 확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됨.

당시 김현희가 말하는 평양 발 모스크바 도착의 비행기 편은 없는 것이 여러 매스컴에 의해 확인 되었고, 김현희가 말한 바레인으로 간 이유와 바레인에서 장기 체류한 이유 등도 여러 매스컴, 특히 노다 미네오에 의해 거짓임이 샅샅이 밝혀졌는데 새삼스럽게 “김현희 면담 후에나 확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됨”이라니.
발전위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생각이 아니라면 꼭두각시 김현희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이분들의 심혈을 기울여 추적한 행적의 검증에 힘을 다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위를 정리하면,

1. 발전위가, 안기부가 김현희의 신분을 북한 출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1972년 11월 2일 제2차 남북 조절위 남측 대표에게 꽃다발 증정 화동사진에서 김현희라고 발표한 두 사진 (1988. 1. 15 수사 발표시, 1988. 3. 5 경향신문 게재)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확인 발표.

2. 그러나 안기부도 인정하지 않고 있은 <사진2>의 ③번 소녀를, 발전위가 누구에 의해 ‘김현희로 발표’됐느니 <사진3>을 ‘미공개 사진’이니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면서, 두 사진을 결부시켜 근거도 없고 검증도 없이 횡설수설만 해 놓고, “새로운 화동 사진의 분석 등을 통해” 김현희로 확인하였다 함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적 행위이다.

3. ‘김원석의 쿠바 주재’를 국정원 자료에서 확인하였다 함은 하나마나로 무효이며,

4. ‘김원석의 앙골라 주재’는 앙골라에 북한 무역 대표부 따위가 없다는 것은, 따라서 김원석이 그곳 수산부장으로 있었다는 것은 허위임이 세상에 알려진지 이미 오랜데, ‘현재까지 확인하지 않은’ 저의가 의심스러우며

5. ‘김의 평양→모스크바 행적, 바레인 체류’는 김현희의 진술이 거짓임이 여러 매스컴에 의해 샅샅이 밝혀졌는데, 이것을 검증은 하지 않고, ‘김현희 면담 후에나 확인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맺는 말

이상과 같이 안기부의 화동 사진은 모두 김현희가 아님이 발전위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발전위가 새로 제시한 김현희가 있다는 사진도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김현희 가족관계, 행적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출발부터 핑계만 있고 검증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 김현희의 말씨와 저술(자술서, 고백록)에서 마땅히 이북 어휘여야 할 곳이 남측 말로 쓰인 곳이 수도 없이 많음에도 이에 대해 전혀 검토가 없었다.

따라서 발전위의 서두의 결론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덧붙임

이상에서 본 것만으로도 발전위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발전위가 ‘진상규명’을 백번 해 봤자, 그들 외에는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발전위는 더 이상 혈세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당장 해산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 ‘조사관’은 깨끗했던 양심과 예리한 지성이 더 이상 오염 되거나 마비되기 전에 하루 빨리 초심으로 돌아가 양심선언을 하고 그 범죄적 소굴에서 빠져나오기를 충심으로 권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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