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도중에 결렬된데 이어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했다. 바야흐로 남북관계는 ‘냉각기’에 들어선 형국이다.

지난 11일 장관급회담 환영연회에서 북측 권호웅 단장이 “북남 쌍방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건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건 이 궤도에서 절대로 탈선하지 말고 우리 민족이 선택한 6.15의 길을 끝까지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북측의 이산가족 상봉 거부는 예상은 했지만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남측이 먼저 장관급회담에서 미사일문제와 6자회담 복귀 문제만 물고 늘어지며 북측이 제기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나 북에 대한 쌀.원자재 등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외면한 데 그 책임이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남측으로서는 북측의 미사일 발사가 이 같은 인도주의적 의제를 협의할 수 없도록 만든 보다 근원적인 이유라고 지적할 것이며, 북측으로서는 9.19공동성명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을 압박한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미사일 발사의 배경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처럼 북미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황이 결국 남북관계마저 냉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전과 달리 남측 정부는 미국과 한목소리로 북측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있다. 심지어 남측은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규탄하는 유엔결의안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베이징에서 열린 4차 6자회담에서 우리측 대표단은 단순한 북미간 중재자의 역할을 넘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앞으로 우리를 위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북미간 대결 국면 속에서 남측 정부는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보를 택해야 함을 이미 지난 1993-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당시 남측은 대북 강경입장만 취하다가 북미간 협상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남북관계는 오히려 후퇴한 경험이 있다.

지금 역시 당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갈지자를 걷는다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와 북미간 대결이 심화된 지금의 입각점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 위기 국면을 지혜롭게 넘어서느냐이다. 다행히 남북 민간은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오는 8.15 61주년을 맞아 14-16일 8.15통일대축전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북측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북측 당국대표단을 이 행사에 참가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남측 당국대표단의 참가도 간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평양 6.15대축전과 서울 8.15대축전, 그리고 올해 광주 6.15대축전에 남북 당국대표단이 함께 했던 전례에 비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 8.15대축전에 당국대표단의 참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는 형편이다.

관계가 어려울수록 남북 간에는 더욱 활발한 교류와 대화가 필요하다. 심지어 '미사일국면'에서 열려 결국 결렬되고 만 19차 남북장관급회담마저도 “개최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현 정부가 민족의 축제인 8.15대축전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남북의 당국과 민간 대표단이 어우러져 8.15 광복을 기념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자리에 남북의 대표가 마주 앉으면 이러 저런 속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을 것이고 이는 남북간 시각차를 좁히고 오해를 푸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 더 바란다면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면돌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 정부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8.15대축전 당시 북측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듯이 오는 8.15대축전에 참가하는 남측 대표단도 북측의 성지를 참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지난해 6.15와 8.15 행사중 남북 당국대표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했듯이 남측의 당국대표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거나 특사로서 방문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상황이 어려운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일축할 일이 아니다. 고인이 된 늦봄 문익환 목사는 서울역에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다오”라고 떼를 썼다. 남북간 화해와 통일은 이 같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을 재가며 몸을 사릴 때가 아니라 적극적 상상력을 실천에 옮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써나가야 할 때다.

격동하는 한반도의 정세에서 한쪽의 키를 잡고 있는 우리 당국자들의 용기와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민족 모두와 전 세계가 우리 정부의 선택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우리를 위한 역사’는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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