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장관급 회담 마지막날인 31일 남북 대표단이 공동보도문 발표를 앞두고 막판 진통을 겪은 것은 남북관계 진전에 관한 양측 방법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측의 남북관계 해법이 대체로 국가대 국가간의 관계에 기초한 반면 북측은 경제분야든 군사분야든 기타 사회 문화 분야든 모두 `민족 내부 거래`로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에따라 `경제협력 제도화` 등 이미 합의된 것으로 알려진 사항도 실질적인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남북이 각자 생각하는 관계개선의 틀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런 견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면서도 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연합제`를 `국가대 국가의 연합`으로 이해하는데서 오는 차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의견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백두-한라산 관광단 교환 방문등 사회 분화 분야나 연내 이산가족 방문단 추가 교환 등 인도주의 사업에서는 남북간 견해차이가 거의 노출되지 않았지만 경제협력과 특히 군사 문제 등 논의에서는 그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이에따라 양측이 현재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제분야와 군사문제를 알아본다.

▲경제 분야 = 남측은 대체로 `청산결제`와 `이중과세 방지` 및 `투자보장협정`등을 남북경제협력 `제도화`의 기본 틀로 인식하고 있으나 북측은 청산결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래 방식으로, 나머지 둘은 자본주의체제 내의 문제로서 자신들의 사회주의 체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신뢰구축 단계를 넘어 `함께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굳이 상대방의 투자 원금을 보장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북측은 이견을 보일 수 있다.

`청산거래` 또한 거래의 대차 잔액만을 결제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희망하는 `물물교환`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래 방식인 외환거래방식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할는 지 의문이다.

지난 80년대 활발했던 북한과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무역거래는 거의 `물물교환` 형태로 이뤄졌으며 당시 경제협력을 위한 남북회담때도 이 방식을 주장했다.

또한 현대와의 경협 등 현재 이뤄지고 있는 남북 교역의 상당부분도 이 방식을 준용하는 `합작`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면담에서 `우린 돈이 없어 신문을 살 수 없으니 나중에 손때 묻은 것이라도 넘겨달라`고 말한 것은 바로 `달러 결제 없는 물자교역`에 관한 북측의 복안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군사 분야 = 북측은 당초 예상했던대로 이번 평양 장관급 회담에서 남측과 군사문제 협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은 우선 6.15 남북공동선언에 군사문제가 언급돼 있지 않다는 점을 의제설정등 협의 거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남북 장관급회담은 지난달말 서울에서의 1차 회담때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기구`로 그 성격이 규정된 것은 6.15공동선언에 언급돼 있지 않는 `신뢰구축` 및 `군사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2차 회담때 북측이 `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거듭 강조한 것도 남측의 군사문제 의제 설정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남측이 제기하는 군사 분야 의제에는 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제12조 내용 중 △군 인사교류와 △정보교환과 부속합의서 제4장의 △군사직통전화 설치 운영 등이 포함돼 있으나 본합의서 12조에 함께 포함돼 있는 `실질적인 신뢰구축을 위한 군축`은 빠져 있다.

결국 북측은 남북간 실질적 신뢰구축을 위한 군축 여건이 조성된 이후에야 남북간 군사당국자회담 등 실질적인 협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북측은 또 남북 군사당국간 대화의 틀이 마련되는 것에도 바라지 않고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양측 군 당국간 대화의 틀 마련이 자칫 한반도 군사적 긴장 문제가 `남북간의 문제`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 문제가 남과 북간의 문제로 인식될 경우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등에 난관이 조성될 것이라는 점도 북측이 남측과의 군사대화를 꺼리는 주된 이유로 보인다. (연합2000/08/31)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