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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觀心法에 정통한 미국
이강호 기자  |  leekh@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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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2.09  0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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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천만명 돌파의 한국영화, 그러나 '한국 영화는 돈 주고도 안 본다'는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도로를 달리던 그랜져 승용차가 추격전 끝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티코로 변하더라'는 웃지 못할 '옥의 티'가 사라진지 사실 몇 년 안됐다. 당시에는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동안 한국 영화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영화인들은 이러한 발전의 영예를 스크린쿼터에 돌리곤 한다. 그렇다면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탄 배우들은 수상의 영예를 스크린쿼터에 돌린다는 말을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 싶다.  

1천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도 종종 극장에 걸리곤 한다. 헐리우드 영화가 50%의 점유율을 넘지 못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인도 뿐이란다. 문화강국으로 자존심 강한 프랑스도 영화에서만큼은 미국에 고개를 숙인다.

한국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관객들의 눈높이도 그만큼 올라갔다. 우리 영화에 대한 자존심도 동반상승했다. 이제 한국의 관객들은 하늘 높이 우러러보던 헐리우드 영화에 필적할만한 영화를 국내에서도 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 '수천억의 돈을 쏟아붇고도 저 정도의 영화 밖에 못 만드나'라는 비아냥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같은 관객들의 믿음을 가장 잘 꿰뚫어 집단은 누구일까. 최근 최고의 흥행주가를 올리고 있는 '왕의 남자'에 15억을 '배팅'한 제작사 CJ엔터테인먼트일까. 아니다. 한국 관객들의 자신감을 정확히 꿰뚫어 본 집단은 불행히도 미국이었다.

8일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인들의 장외투쟁에는 수 천명의 영화팬들이 몰렸다. 인기스타를 단 한번의 발품으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초대형 블록버스터에 일부 극성팬들은 광화문에서 명동성당까지 마라톤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한 이들 시민의 반응은 너무나 냉담해 기자를 당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기자가 만나본 시민 중 9할은 "한국 영화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시민들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한국 영화에 어떤 이익을 줄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 영화도 이제 경쟁력이 있다"는 한국인의 믿음을 가장 잘 꿰뚫어 봤다. 이른 바 '약한 고리'를 잘 치고 들어왔다는 말이다. 이른바 '관심법(觀心法)'에 정통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미FTA 협상을 개시하는 절묘한 시점에 스크린쿼터라는 약한 고리를 먼저 치고 들어오는 미국 통상 당국자들의 능력에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생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절묘한 '카드'를 집어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새해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한미 당국간의 외교문제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국민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이같이 '약한 고리'를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말려 국익을 손상시킨 사례는 스크린쿼터 뿐만이 아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협상 중이던 2003년의 상황을 여당의 의원이 토로했다. 당시에는 민주당 분당, '한미동맹 분열론' 대두, 대통령 탄핵이 연이어 겹쳤던 어수선한 정국이었다.

그 의원은 "이때 국방부와 외교부의 친미파가 용산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을 밀어붙였다"며 "대통령 탄핵까지 당한 환경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무력한 대응은 예견돼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절묘한 시점에 '약한 고리'를 제대로 친 셈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한 2002년 12월 미래동맹정책구상(FOTA) 회의 당시도 정권 교체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의 연속선 상에서 진행된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에서도 성토문제 등으로 인한 비용부담 증가 등 '졸속협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6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30억~50억 달러로 예상했는데 지금은 50억~55억 달러 정도 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으로 날아가 한미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미국이 협상 개시에 앞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했던 것에 비춰본다면, 어쨌든 '약한 고리' 스크린쿼터가 한미FTA 협상의 제1차 희생물이 됐다. 

이같은 전례에 비춰볼 때 미국은 스크린쿼터 이외에 제2, 제3의 '약한 고리'를 이미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크린쿼터가 무너진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개방의 수위는 점점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통상 관료의 무능과 전략부재가 더해지면 한미FTA 협상은 더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해 당사자들이 전면 배제되고, 비밀협상 원칙이 고수되는 마당에 전반적인 통상시스템이 재정비되지 않는 한, 미국의 협상 전략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 이번 스크린쿼터 축소 사태를 통해 제기될 수 있다. 우리 외교 당국자들이 미국인의 '약한 고리'를 꿰뚫어보는 관심법에도 능통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들은 잊기 쉽다. 외교의 제1원칙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당국자들이 이를 무시하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 같다. 외교의 제1원칙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쉽게 얻어올 수 없는 국익이다. 최근 스크린쿼터 사태에서 보여지 듯 제2, 3의 희생양이 불을 보듯 뻔하다면 한미FTA 협상은 중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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