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돌격1번’ 콘돔”
1992년 2월 어느 날이었을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마포구 아현동에 세들어 살 때다. 평화단체에 있던 필자가 연대활동 차원에서 들렀다. 책상위에 있던 낡은 사진을 한 장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일본군 자료였다. 콘돔사진이었다. 한자로 ‘돌격1번’.
민족의 자궁을 반인륜적으로 유린한 “일본군 ‘돌격1번’ 콘돔”.
충격이었다. 조선의 남아로서 창피해서 여성 실무자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씨펄*들”이란 말이 나왔다. “두고 보자 이씨펄*들”.
1988년부터 군사문제와 군대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필자가 힘들 때마다 ‘두고 보자 이씨펄*들’은 나를 지칠 줄 모르게 했다. 100년 전 조선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잃은 결과는 참혹했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없었으며, 100년 전 군대가 없으면 민중은 식민지 노예로 되며, 민중과 동떨어진 군대는 물을 떠난 고기와 같은 신세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일본군‘위안부’할머니는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다. 군대와 민중이 친형제, 한 식솔을 이루지 못하면 물을 떠난 고기만 된다. 당시에 군대와 민중은 운명공동체의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 '군대 따로 민중 따로'였다.
민중과 군대는 ‘물과 고기’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인 지난 해 2004년 12월 30일 특별기고 ‘선군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오늘날 이북의 인민군대는 ‘조국 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어렵고 힘든 건설현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군대 따로 민중 따로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는 일본군‘위안부’할머니 같은 한(恨)을 막기 위해서라도 군대와 민중이 하나 되어 나라를 스스로 지킨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북의 군대는 나라를 스스로 지키는 것은 물론 사회 건설현장에서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김 선생은 “이러한 선군정치는 그 사상적 기초로서 ‘군대이자 당, 국가, 인민’이라는 정치철학과 ‘총대철학’ 등 두 가지 철학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철학인 ‘군대이자 당, 국가, 인민’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군대의 뒷받침이 있음으로 하여 당과 국가, 인민이 자주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군대가 곧 인민이고 인민이 곧 군대라고 하면 어떨까.
이남ㆍ이북의 두 일본군‘위안부’할머니
1993년 6월 필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한국민간단체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이남의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이북의 일본군‘위안부’할머니가 만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두 분은 증언이 끝나자마자 그저 껴안고 한없이 눈물만 떨어뜨렸다. 통한의 눈물이었다.
이남의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이북의 일본군‘위안부’할머니는 누구보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눈물로 보여주었다.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강한 군대는 민중들 속에서 나오고 민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민중의 아들, 민중의 군대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비로소 보여준 것이다.
이남의 할머니가 군대가 없으면 민중은 평생을 식민지 노예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심신의 상처로 말해 주었다면, 이북의 할머니는 강한 자부심속에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한테서 ‘진상규명’과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처벌’을 기필코 받아내리라는 의지가 보였다. 다시는 군대 따로 민중 따로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피눈물이었다.
두 할머니의 만남은 한 달 전에 만난 언니와 동생같이 동족애를 한껏 나누었다. 지구 반대편의 민족공조와 통일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로부터 12년 뒤, 선군정치 10주년이 되는 해이고, 6ㆍ15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올해가 별로 남지 않았다.
군 수뇌부, 일본군‘위안부’할머니 찾아뵌 적 있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5주년 되는 해인 올해도 별로 남지 않아,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의 유일한 일본군‘위안부’할머니를 찾아가 뵈었다. 이 분은 78살이다. 지하방에서 살고 있다. 폭설과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방에 불을 지폈지만 장판 밑에 물이 흥건하다. 신문지로 겨우 습기를 막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궁암을 앓고 있다. 몸이 허약해 암 수술을 바로하지 못해 먼저 방사선치료를 매일하고 있다. 매일 먹는 약만 한 주먹이다. 요즘에는 갈수록 허리가 아파 앉기도 힘들다. 2005년 말을 송년회에 참가하기 바쁜 젊은이들이 술과 싸움하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습기와 암, 쓴 약, 병든 허리와 싸우고 있다. 할머니는 “빨리 (일본한테) 사죄를 받아야하는 데...죽기 전에 받아야 하는 데...” 한다.
필자는 이남의 군대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일본군‘위안부’할머니를 찾아가 아픔의 인사를 나눴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라 지키기에 바빠서인가. 사병들의 건강과 인권, 전쟁범죄 피해자, 정치적(동족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반대하는 통일지향적) 병역거부자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무슨 나라를 지킨다는 건가.
준군사조직인 경찰에게도 한마디 하자. 준군사조직인 경찰이 거리에서 민중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다. 나라 지키지 못하는 군대를 보는 듯, 경찰 본연의 민생치안은 아랑곳없고 농민을 줄줄이 죽이고 있다. 스스로 물을 떠나 말라 죽을 고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나. 민중과 인민을 중시하지 않는 군대와 경찰은 이미 ‘양식있는’ 군대와 경찰이 아니라 민중에게 ‘돌격1번’하는 ‘반인륜적인’ 폭압과 지배의 수단일 뿐이다.
두고 보자 “이씨펄*들”의 대상이 이남의 국방부와 경찰청이 아니라, 미국?일본의 펜타곤과 방위청이 되기를 자꾸 자꾸만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