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계속되는 집회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시위는 불법시위입니다. 해산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즉시 살수차로 살수하겠습니다"

1시간이 넘게 경찰의 선무방송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 서슬퍼런 경고처럼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거나 선뜻 강제해산에 나서지 못했다. 다만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만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어디 불이 났나'하고 창문을 내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왜 경찰은 그들이 말하는 '공권력'을 발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15일 농민대회처럼 고무패킹을 떼어놓고 날카롭게 날은 세운 방패를 휘두르지 못하는 것일까. 광화문에 대형 화재가 난 것처럼 시끄럽게 싸이렌을 울려대는 것일까.

전농 문성도 대협실장이 그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문 실장은 "농민을 때려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농성은 불법인가"라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농민을 죽인 경찰은 불법을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같이 경찰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농민 측의 발언이 시작될 때마다, 경찰은 시끄러운 싸이렌을 틀었다. 싸이렌 소리에 농업회생을 위한 근본대책과 故 전용철 농민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그러나 경찰의 행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나'라는 형국이다.

경찰은 초기 전용철 농민의 죽음에 대해 "집 앞에서 넘어져서 그랬다"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허준영 경찰청장이 "시위현장 채증 사진 천여장 중에서 전용철씨가 쓰러져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고 고 전용철 농민의 죽음과 지난 15일 농민대회와 연관이 있음을 뒤늦게 인정했다.

그러나 허 청장의 발언은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당시 진압 책임자의 구속처벌과 경찰청장의 파면 등과는 본질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는“(고인은) 간경화 말기인데다 술을 마신 후 구토하고 쓰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도리어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특히, 경찰은 농민 측에서 전용철 농민이 집회장에서 실려가는 사진을 공개하자, 자신들의 채증사진을 공개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나 일어날 법한 어처구니없는 작태다.

이번 전용철 농민의 죽음은 1987년 '6.10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닮아 있다. '턱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당시 정권을 무릎꿇게 했다는 교훈을 정치권은 상기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전용철 농민의 죽음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요구된다. 아울러 농민들로 하여금 '아스팔트 농사'를 짓게 하는 근본원인에 귀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이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인 농성처럼 농민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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