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희 (미국 심슨 대학교 종교철학부 교수)

통일뉴스에서 <신은희의 통일문화 이야기>를 게재한다. 신은희 교수는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이 만날 수 있다며 이를 전도(?)하는 흔치않은 학자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방법론으로 해서 기독교와의 접맥을 시도하고 있다.

미 심슨(simpson)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북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고 또 여름마다 남쪽에 와서 특별강의도 한다. 신학자이지만 신학에서 벗어나 인본주의로 가고 싶고 또 단순한 학문만이 아니라 실천 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문화’의 전도사인 셈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과의 접맥 시도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온 그의 <통일문화 이야기>는 매주(또는 격주) 화요일에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사상적 불륜인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일종의 ‘사상적 불륜’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제까지 주체사상을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못하고 은닉적으로 연구하여 왔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불륜의 사랑’처럼 그동안 주체사상도 어둡고 닫힌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억울함도 많았고 희생도 많았다. 그래도 인간의 정신은 늘 자유로웠다. 간통법은 있지만 불륜의 사랑은 계속된다. 국보법은 있지만 사상적 불륜도 계속된다. 제도권에서 이탈된 관계에서도 진실한 사랑은 있듯이 법이 규정한 ‘사상적 불륜’에서도 진실한 사랑과 이해의 마음은 싹틀 수 있지 않을까?

혁명을 꿈꿨던 이단자들

인간의 역사 속에는 의외로 ‘불륜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이단자’로 불렸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단자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인간을 억압하는 관습과 제도에 도전하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자 했다. 그들이 제도권을 이탈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었다. 그들은 권력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자’였다. 그러나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해방자’였다.

기독교 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단자는 예수였다. 예수는 당시 지배문화였던 유대교의 안식법을 과감히 파괴했다. 배고픔에 지쳐버린 친구들을 위하여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거룩한 안식일을 거침없이 깨뜨렸다. 역사예수는 종교적 교리에 얽매여 눈치보고 살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교회의 양적 팽창을 위하여 교인들을 목사의 밥줄로 여기고 종교적 우매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근본주의 목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예수는 민중이 중심이 되는 생명의 혁명을 꿈꾸었다. 그의 민중혁명은 당시 ‘이단종파’로 낙인찍혀 종교적 핍박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유대문화의 권력화를 비판하며 교리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위한 생명의 종교가 될 것을 가열차게 요구했다. 예수는 교회법에 노예가 되어 종교적 위선을 경건으로 착각했던 사제들을 향하여 독설을 내뿜었다.

그리고 기꺼이 ‘이단자’로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어갔다. 죽어가면서도 예수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무엇이 그를 신의 아들이 되게 하였는가? 예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육신의 신적 존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는 그의 삶을 통하여 권력층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끌어 올리는 생명운동, 민중을 위한 혁명적 삶 그 자체가 신의 영광스러운 경지에 이른 것임을 깨달았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보다 그의 삶과 죽음의 의미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교회보다 인간중심의 혁명을 시도했던 예수의 순결한 꿈과 열정이 더 귀하지 않은가. 돈과 권력세습과 온갖 종교적 위선의 늪에서 처절하게 허덕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와 목사야말로 역사예수의 ‘이단정신’을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변태적인 ‘정통 기독교인들’이 아닌가.

북한의 역사에도 혁명을 꿈꿨던 이단자가 있었다. 물론 여기서 ‘이단자’란 남쪽의 관점에서 조명해 봤을 때 그렇다. 나는 북의 지도자들을 예수라고 하지 않는다. 김일성은 김일성이고 예수는 예수다. 다만 기독교에서 예수가 민중중심의 혁명을 꿈꿨듯이 북의 주체문화에도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북의 주체문화는 김일성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김일성은 주체문화를 건설하면서 인간중심의 혁명을 꿈꾸었다. 주체사상은 정치권력이 독점화되면서 인민중심의 혁명적 정신은 점차 쇠퇴되지만 주체의 초심은 정치적 자주성을 지키고 자립적 민족경제와 자위국방을 수립하는데 있었다. 주체는 인민이 중심이 되는 ‘인간중심의 철학’을 기초로 한다.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강력한 의지’이며 개개인과 국가는 주체적 정신을 지키고 살 때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북의 주체문화는 한국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처음에는 북도 스탈린과 소련의 사회주의를 중심모델로 삼았다. 이러한 유대관계로 인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한국전쟁에 관한 정치적 지원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소련의 지지를 담보 받고 임했던 한국전쟁에서 북이 유엔군의 반격으로 압록강까지 추격당했을 때 스탈린과 소련은 끝까지 파병을 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김일성의 반소감정과 불신감은 커지게 되었다. 전쟁이후 복구사업을 위한 소련의 경제지원도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김일성은 소련과의 우방관계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또한 북 내부에서는 소련파 허가이가 김일성에게 권력투쟁으로 맞서자 그를 내쳐버린다. 마치 예수가 종교적 위선자들인 바리새인들을 쳐내듯이 김일성은 자주적 주체문화를 위하여 친소파 사대주의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소련식 사회주의가 아닌 ‘조선식 사회주의’ 주체 혁명을 부르짖었다.

한국전쟁 중 미국은 북의 전 지역을 초토화시켜 버린다. 김일성은 인민들의 보금자리를 완벽하게 폐허로 만들어 놓은 ‘미제국주의’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불태우게 된다. 김일성과 북의 인민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맨몸으로 복구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다시는 그렇게 당할 수 없다”라는 반미정신과 함께 강력한 주체혁명을 꿈꾸게 된다.

정신적 사대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우리 조국을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로 지켜나가고자 기꺼이 이단자가 된다. 외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령과 당과 인민이 하나의 사회 정치 생명체를 이루어 어떠한 고난도 함께 견뎌 나갈 것을 결단한다. 오늘날까지도 북은 많은 나라들이 모델로 삼는 미국의 ‘정상문화(?)’를 따르지 않고 차라리 ‘이단국가’로 남을 것을 고집한다.

사실 외부에서는 김일성이 ‘이단자’이지만 북에서는 ‘민족의 영웅’이고 ‘민중의 구원자’이다. 폐허가 된 땅을 다시 인민의 보금자리로 만들었고 끊임없는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독립된 민족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은 북의 인민들에게는 ‘성지’로 선정된 곳이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많은 인민들이 김주석을 그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정치적 용어로는 ‘세뇌’지만 종교적 용어로는 ‘회심’의 결과이다. 반세기 전 버려진 인민들을 위하여 주체 혁명을 꿈꾸었던 이단자. 김일성의 이단정신. 그가 꿈꾸었던 주체 혁명과 민족주의 정신은 오늘날 재평가 될 필요가 있다.

사상적 불륜에서 자유로운 사랑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남은 북을 향해서 북은 남을 향해서 서로를 끝없이 ‘악마화’하는 것을 국가안보의 제일 중요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강대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는 그야말로 우리민족의 오욕의 역사였고 잔혹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한국사회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소위 진보건 보수건 상관없이 앞을 다퉈 방북을 희망한다. 북한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사귀고 싶어 한다. 어떤 운동권에서는 방북 회수를 따져 서열을 정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도 여야의 구분 없이 북과 다양한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

북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괴뢰군”이나 “빨갱이”가 아닌 “우리 동포” “같은 민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과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북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한다. 민간인들이 만날 때면 우정을 나누는 친구와 동무관계가 된다. 남북축구 경기를 하면 북한팀을 열렬히 응원해주는 정서적 여유도 생겼다.

바뀌니 안 바뀌니 하면서도 정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어왔다. 그런데 한 가지 여전히 안 바뀌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북의 주체문화에 대한 인식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북의 고유문화인 주체문화에 관하여 ‘좋은 것은 좋다,’ ‘나쁜 것은 나쁘다’ ‘다른 것은 다르다’라고 자유롭게 말 할 수 없는 것일까? 국가안보라는 명목아래 언제까지 나쁜 것만 말할 것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좋은 점을 좋다’고 하는 순간 바로 불륜이 된다. 죄인을 끝없이 만드는 사상적 통제,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성적인 21세기 통일문화를 생각하며 과거에 매도되었던 ‘사상적 불륜’도 이제는 자유로운 사랑의 만남으로 축복받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어렸을 때는 유아기적인 사랑을 한다. 종교인도 정신적 미숙아일 때는 내 종교만이 진리라는 유아기적 신앙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은 성숙해지면서 어린아이의 습관을 버린다. 이제는 한국 기독교인들도 서로 다른 진리를 수용하는 성숙한 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성숙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바울사도의 고백이 기독교인의 살아있는 고백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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