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는 9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개최된 국정과제회의에서 “동북아 공동체 형성에 주는 유럽통합사례의 시사점”을 보고했다 한다. 이 보고에서 동 위원회는 “서독이 유럽통합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독일통일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전제한 다음 “동북아 공동체 논의에 북한의 관심을 유도하고 동북아 공동체 형성 주도로 남북통일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다.
서독 외무장관으로 18년간 봉직하며 독일통일을 이끌어 낸 후 1992년 퇴임한 겐셔(Hans-Dietrich Genscher)는 그의 회고록 “분단국 재건(Rebuilding A House Divided)”에서 서독이 미소간의 치열한 냉전구도 속에서 구라파 통합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큰 물결에 따라 독일통일이 이루어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동북아시대 위원회가 북한의 관심을 유도하여 동북아 공동체 형성을 주도함으로써 남북통일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은 서독의 경험에서 통일의 교훈을 얻자는 것으로서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독일통일문제와 지금의 남북통일문제를 같은 범주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일의 분단은 패전국에 대한 징벌로 가해진 것이며 독일통일은 미소의 냉전관계와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하는 주변제국의 반대로 인하여 지연되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의 분단은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전횡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미소간의 냉전과 한국인들 자신의 민족의식 마비로 인하여 장기화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변국들은 통일한국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나라들이다. 또 미소간의 냉전체제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 이후 한민족의 통일의식도 많이 고양되고 있다. 그런즉 한국이 꼭 독일의 경우처럼 몇 십 년이 걸리는 지역통합의 조류에 합류해야만 통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난 9월 19일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이 발표한 공동성명 제4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항목에서 미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직접관련 당사국들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과 6자가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협력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서 독자적인 패권정책을 자행하던 미국이 앞으로 이 지역의 새 기본질서를 관련국들과 더불어 공동으로 모색하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에 있어서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9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현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고 보고 한반도의 정치, 경제적 미래를 중국과 더불어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우호적인 한반도를 위한 시나리오를 검토할 것을 중국에게 촉구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9월 21일 뉴욕의 미중관계 전국위원회 연설에서 그는 중국과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가운데 “지금이 반세기에 걸친 한반도의 낡은 정전상태를 끝내고 (동북아)지역 안보와 발전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룰 때”라고 역설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 통일의 방해요인은 더 이상 외국의 반대라고만 할 수 없다. 남북 간에 통일을 두려워하는 분단기득권 세력이 오히려 이제 남은 유일한 통일방해 요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구라파 제국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공통점이 많아 정치적 결단만 서면 공동체 형성에 미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유럽연합까지 발전하는데 40년이 걸렸다. 이질적 요소가 많은 동북아에서 “동북아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그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우선은 “동북아 공동체”보다는 “동북아 집단안보체제”의 실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데 역점을 두는 동시에 민족의식의 강화로 반통일 세력을 누르며 통일의 토대를 쌓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유럽에서는 1949년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생겼습니다. 원래 소련의 위협에 맞서 미국과 서유럽제국이 만든 집단군사동맹이었는데, 1991년말 소련 붕괴후에도 확대존속되고 있는 매우 성공적인 지역간 집단안보체제입니다.
유럽에서는 또 1952년 서독, 불란서, 이태리 및 베네룩스 3국의 6개국간에 석탄과 철강의 관세를 철폐하는 공동체가 탄생되어, 그 성공적 운영을 바탕으로하여 1958년 경제전반에 걸친 공동체로 발전하였으며, 1967년 주변제국들을 포함한 유럽공동체로 확대된 후 1993년에는 유럽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동북아공동체"가 만일 유럽공동체처럼 동북아지역 각국간에 경제문제를 위시해 여러 분야에 걸쳐 마치 한 나라와 같은 질서를 수립하자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이런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동북아 관련국간에 인식의 차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동북아 집단안보체제"는 지역국가간의 상호협력으로 군사적충돌을 방지하자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지난 9.19 6자회담 공동선언 제4항으로 이미 관련국간에 기본적 합의가 있습니다.
서투른 설명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