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이병태치과의원 원장)

개성을 한번밖에 가보지 못한, 그것도 10시간 정도 머물렀던 치과의사 이병태 박사의 개성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필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개성관광이 실현되면 “이 글이 개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특히 필자도 첫팀으로 가서 북측 안내원 리정수 兄을 또 만나면 좋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2003년 10월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에 참석차 평양에서 행사를 치른 뒤 귀환길에 개성을 들렀으며, 이때 ‘방북기’를 네 차례에 걸쳐 통일뉴스에 연재한 바 있다. 필자가 열렬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리정수 兄은 당시 북측 안내원이다. <이병태의 개성이야기>는 매주 화, 목, 토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6. 이병태의 개성 기행’ 편은 필자가 2003년 10월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 참관차 평양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개성을 둘렀는데, 특히 당시 북측 안내원이었던 리정수 선생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몇 시간 동안 짧게 머물렀던 개성에 관한 소감을 현재형으로 정리한 것이다 - 필자 주)


☞ 개성의 동서남북

개성은 서울과 78km 떨어져 있고 판문점과는 12km(다른 자료에는 10km)여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개성은 북에서 평양, 남포에 이어 제3의 도시이다.

개성을 생물학 용어를 써서 세포(細胞)로 본다면 나성(羅城)은 핵(核)이다. 이 나성이 곧 개성이다. 이 개성의 북쪽에는 송악산(松嶽山), 남쪽에는 용수산(龍岫山), 서쪽에는 오공산(蜈蚣山)이 있다. 이 산들을 외측으로 더 멀리에는 북에 천마산, 서에 봉명산과 만수산, 서남에 풍능산, 남동쪽에 진봉산, 동에 오관산이 있다.

이러한 山과 들 외곽에는 강과 바다가 있다.

개성의 북쪽에는 예성강이 흘러 서해로 들어간다. 동쪽에는 임진강이 흘러 한강과 만나는데 남쪽은 한강 하류와 연접해 있다. 그리고 서쪽은 서해이다.

풍수(風水)로 보면 개성의 지세를 두고 부산대수(負山帶水)라고 한다는 것.

고려왕조(919~1392)가 수도를 개성으로 삼았던 것은 지리적이며 인문(人文)에 맞는다고 보았다.

개성은 참으로 멋있고 여유있는 지역이다. 남측 휴전선을 통과,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서 북측 휴전선을 넘었을 때, ‘어디가 개성인가’하고 궁금하였다. 평양을 가느라고 그냥 통과하는 듯 하더니, 만수다리 앞에서 우리는 어린이와 학생 악대들의 환영연주를 보도록 정차하여 겨우 개성 땅을 밟아 본 것이다.

이때다.
개성이 고향인 은사 김인철(80세)?장완식(84세) 박사, 고교동창 홍인표?차석창 등의 생각이 뒤엉켰다. 만수산 두렁칡처럼

☞ 평양-개성 관광버스에서 나눈 명당 이야기

나는 평양에 올, 내가 평양 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왔다. 오늘 개성서 선죽교, 성균관, 왕건릉 그리고 개성 시가지를 들러 보게 된다. 이어서 철조망으로 남과 북이 갈라진 분단의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거쳐 서울로 간다. 평양-개성-서울.

“이 박사 선생” 북측 안내원 리정수 선생이 말을 붙여왔다.
“왜 불러. 맘이 심란해. 맘이 허전하구.”

“기딴(그런)소리 하지 말라우. 보라우(보라). 저기가 동명성왕릉이 있어. 아주 터가 조오치(좋지). 천하명당이지.”
“고구려 동명성왕! 거기를 못보고 가다니.”

“또 오라우. 우리는 문을 활짝 열어 놨으니까니.”
“알았어. 더 열구 계속 열어야지.”

“동명성왕 능옆에 명당 묘자리 하나 잡아줄까나. 명당자리 줄테니 오라우.”
“예이, 여보, 하찮은 이병태가 어찌 민족의 왕, 그 왕릉 옆에,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오. 하여튼 농담도 핵폭탄급이어서 듣기는 좋소.”

“야, 길지 말라(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내 마련해 줄게.”

버스는 개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내 리정수 선생이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은 좌측 창가에서 뒤로 지나갔다. 날씨마저 청명하여 가슴도 마음도 그러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다시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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