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이병태치과의원 원장)

개성을 한번밖에 가보지 못한, 그것도 10시간 정도 머물렀던 치과의사 이병태 박사의 개성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필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개성관광이 실현되면 “이 글이 개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특히 필자도 첫팀으로 가서 북측 안내원 리정수 兄을 또 만나면 좋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2003년 10월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에 참석차 평양에서 행사를 치른 뒤 귀환길에 개성을 들렀으며, 이때 ‘방북기’를 네 차례에 걸쳐 통일뉴스에 연재한 바 있다. 필자가 열렬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리정수 兄은 당시 북측 안내원이다. <이병태의 개성이야기>는 매주 화, 목, 토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옥동자와 인삼 이야기

아주 옛날.

개성에 신혼도 지나 10년이나 가깝도록 자식을 두지 못한 부부가 살았다. 이들은 이웃들로부터 시샘을 받을 정도로 금슬(琴瑟)이 좋았다.

부부는 아이를 갖는데 좋다는 약은 다 먹었고 좋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대문 밖에서 스님이 목탁을 치며 불경을 외고 있었다. 남편은 얼른 쌀 한 되를 퍼서 스님한테 시주하고 있었다. 그 때 마실갔던 부인이 돌아왔다.

“소원 성취하시고 성불(成佛) 하십시오.”
“스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소원이 있습니다.”

뒤돌아서던 스님은 남편의 얼굴을 보며 마주 섰다.

“스님! 보시다시피 자식이 없어서 늘 걱정입니다.”
“아! 생산을 못하신 모양이군요.”

“스님, 하라는 대로 다 할테니 그저 자식 하나만 낳게 해주십시오.”
부인은 창피고 체면이고 없이 애원하였다.

“치성을 드리고 기도하십시오. 이 뒷산에 암자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 가셔서 이레동안 부처님께 소원을 비십시오.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부는 기뻐하였다. 부인은 목욕재계하고 행장을 꾸려 암자로 올라갔다. 부인을 암자까지 데려다 주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부인은 정성을 다했다.
내일이면 끝이다.

부인은 깊은 잠에 빠졌다.

‘아니 누구이신지요?’

‘놀라지 마라. 나는 이산의 산신령이니라. 네가 기도드리는 모습이 가상하여 내가 방도를 일러 줄 터이니 잘 들으라. 날이 새는 대로 이 산을 넘으면 또 한 산이 있는데 손짓하며 반기는 듯한 친근하게 생긴 큰 바위가 있느니라. 그 바위를 찾아가면 얻고자 하는 것을 구할 수 있으리라.’

너무나도 황홀하였다. 이를 데 없이 고맙기도 하여 큰절을 하려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게 웬 일인가. 꿈이었다.

암자 문을 열었다. 새벽인줄 알았더니 아직 캄캄했다.

온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간 것처럼 맥이 풀이더니 다시 온몸이 화끈거리다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곳에 가면 예쁜 아이가 있을까? 날이 밝기 시작하면 바로 떠나자. 그리고 남편에게 빨리 가야지.’

부인은 마음이 들떴다. 산신령이 일러준 대로 바위를 찾았다. 바위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행여나 바위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바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자 눈앞에 풀 한 포기가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 봐도 눈에 뜨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인은 다시 바위 위를 보고 또 한 바퀴를 돌았지만 그 풀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빨간 열매가 달려 있었다. 부인은 숟가락을 꺼냈다. 보자기를 펴놓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흙에서 향기가 났다.

몇 년, 몇 해나 지났는지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고 쌓이면서 썩고 또 썩어 생긴 밀가루처럼 그리고 솜방석처럼 부드러운 흙을 파는 기분은 너무나 즐거웠다.

갈색, 고동색 흙 속에 속살이 하얀 뿌리가 보였다. 그것은 얼굴 가슴 허리 엉덩이가 있어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더 파 내려가자 두 다리처럼 갈라진 것이 아닌가.

두 다리 사이에는 남자아기 고추처럼 돌기가 달려 있었다.

부인은 이끼를 깔고 정성을 다해 잔뿌리까지 잘 펴서 상처하나 나지 않게 정성을 다했다. 강보로 아기를 싸듯이 잘 감싸 보자기를 꾸렸다.

날다시피 거의 뛰다시피 가쁜 숨도 마다하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다. 기다리던 남편과 함께 잘 폈다. 뿌리는 완전히 옥동자 모습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 뿌리를 먹였다. 그리고 빨간 씨앗은 뒤뜰 아늑한 곳에 심었다.

그날부터 태기가 생기더니 그야말로 옥동자를 낳았다. 집안은 화목해 졌다. 아이도 무럭무럭 자랐다. 뒤뜰에 심은 풀도 자꾸만 번식해 갔다. 송악산 산자락에 군락을 이루었다.

이것이 개성인삼의 유래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