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민족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민족이란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인위적.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산물이라는 생각, 둘째는 민족은 근대의 어느 시기에 근대적 가치와 결합되어 발생했다는 생각, 셋째는 근대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본 글에서는 두 번째 주장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제할 것이 있다. 본 글의 특성상 글의 전개 방식은 두 번째 주장과 연동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유력 필자의 주장을 비판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필자가 그들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들 주장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도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아래에서 언급한 사람들과 대부분 일면식도 없고 그들과는 다소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따라서 그들이 쓴 책 속의 주장을 주로 기억에 의존하여 인용하고 비판하는 것이 무리이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건설적인 논쟁의 일단으로 보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애초에는 이종석.김동춘씨 등의 주장을 <(60) 민족에 대하여 5>에서 다루고자 했으나 글이 길어져 다음으로 미룬다)
① 「민족+근대적.시민적 가치」의 문제점
유력 필자들의 입장을 비판하기에 앞서 민족을 근대적.시민적 가치와 연동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 전체에 대해 평가해 보겠다.
혈연과 언어를 같이하는 인간 집단인 민족과 그 인간집단이 어떤 신념, 가치와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전근대사회에서 민족은 대체로 종교와 같은 전근대적 이념과 결합되어 있었고 근대 사회에서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과 결합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이 근대적 가치와 결합되어 형성된 것은 서유럽 민족 형성 과정에서 출현한 특수한 현상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사회과학 특히 역사 이론은 일반화하는 것이 곤란한 점이 특징이다. 인류 역사를 하나의 거대 이론으로 통합하기에는 인류역사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민족이론 또한 「서유럽, 근대」라는 잣대를 가지고 일반화하고 이를 한국 사회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것은 대단히 난폭한 태도이다.
물론 필자는 인류역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일반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화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역사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문제삼는 것은 일반화하려는 태도에서 「근대와 서유럽」의 잣대를 절대화하는 관점과 태도이다.
민족이론에서 서유럽 역사를 차용하는 문제점은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아래에서는 「근대」를 절대화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근대」적 가치란 크게 합리화.과학기술.이성과 같은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태도와 자유.평등.박애.연대와 같은 시민적 윤리를 의미하는데 민족이론을 근대적 가치와 결합하여 이해하려는 태도에서는 주로 후자의 시민적 윤리를 중시하는 것 같다. 아래에서는 시민적 윤리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첫째, 근대 이전에도 인류 역사는 부단히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자연과 주변을 소박하게 신성화하던 원시인간 무리는 농경과 문자를 발견하고 철학과 종교를 만들었다. 농경과 문자를 통해 인류 역사가 역동적으로 비약하는 고대 사회의 발전은 근대 과학기술.산업혁명의 성과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사랑, 인(仁), 자비 등 인류의 보편적 심성을 발전시킨 고대 종교의 성과 또한 자유.평등과 같은 시민적 윤리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근대의 기준에서 본다면 종교란 비합리적이고 신비적인 전근대적 이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고대 종교가 만들어낸 역사적 성취는 놀랄만하다. 지금도 인류 사회의 상당 지역에서 고대 종교의 성과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중동과 인도, 아(亞)대륙은 여전히 대단히 종교적인 사회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종교가 대변했던 것은 사랑.인.자비, 명상.해탈.자연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이다. 이들 가치가 합리화.개발.과학.능동성 또는 자유.평등.연대와 같은 근대적 가치와 다르다고 해서 뒤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가?
필자는 산술적으로, 시간의 선후 관계로만 본다면 근대적 가치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대적 가치와 전근대 사회의 성과는 발전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 전체를 하나로 놓고 고대종교와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과를 평가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고대 종교의 자취들이 여전히 인류 곳곳에 면면히 살아있고 「서구와 비서구」와 「근대와 전근대」가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또 어떨까?
필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근대에서 형성된 가치를 여타 시대의 가치와 비교하여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적 윤리는 어떤 조건의 산물이다. 시민적 윤리는 19세기 영국에서처럼 조악한 자본주의를 개혁했던 성숙한(?) 자유주의의 산물이거나 18세기 프랑스에서처럼 밑으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출현했다. 아니면 전쟁과 공황을 거친 후 조직화된 노동운동과 자본가 계급의 타협과 공존의 결과이다.
근대 사회를 보다 근원적으로 추동했던 것이 자본주의라면 시민적 윤리는 자본주의의 어떤 국면에서 출현한 가치 체계이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도 시민적 윤리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임을 의미하며 시민적 윤리를 논함에 있어 그것의 뿌리가 되는 물적 토대의 적실성을 따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경제 구조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없이 자유.평등.연대.평화와 같은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대단히 공허하다.
셋째,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국면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문제가 화두가 되기 시작하는 국면에 이르면 가치 평가체계 자체가 달라진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강점하는 과정에서 서구 사회의 가치는 「연대와 국제주의」일 수 있지만 비서구사회의 가치는 「자주와 민족주의」가 된다.
「연대와 국제주의」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개인적.시민적 윤리와 어울린다면 「자주와 민족주의」는 결속력과 같은 공동체주의.집단주의와 결합한다. 「자주와 민족주의」가 의제가 되는 시기에 시민적 윤리를 잣대로 이를 평가하는 것은 잣대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근대적 기준에서 발전 수준이 늦었던 비서구사회의 민족운동은 대부분 전근대적인 공동체를 모체로 하여 태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유교적 근왕주의자 전봉준의 갑오농민전쟁이 조선 후기의 농민 공동체를 반일 투쟁에 동원하고 유교적 잔재가 남아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가? 골수 성리학자 최익현이 보여 준 강인한 투쟁 정신이 전근대적인 관념에 근거했다고 해서 잘못되었는가?
동아시아, 중동.이슬람 사회,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사회, 아프리카 대륙의 부족 사회 모두에서 반제 운동은 전근대적인 공동체를 뿌리로 하여 시간이 갈수록 결속력과 집단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띠는 데 도대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근대적 가치를 절대화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민족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동원했던 공동체주의.집단주의를 근대적.시민적 윤리를 잣대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분화된 역사적 시점에서는 자유.평등과 같은 서구사회의 시민적.근대적 가치와 함께 제국주의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서구사회가 추구했던 「자주와 민족주의」도 동일한 수준의 의의를 갖는다.
전자에 기초하여 후자를 단죄하는 것도 문제이고 전자를 주(主) 또는 보편으로 보고 후자를 종(從) 또는 특수 따위로 하향 평가하는 것도 문제이다.
② 임지현씨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임지현씨는 민족이란 근대 유럽 특히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자유.평등과 같은 시민적 가치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족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거나 아무런 긍정적 의의도 없고 민족과 결합된 가치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근대의 산물인 민족이 전근대 시기에도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부당 전제하거나 민족을 절대화함으로써 민족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퇴행적 가치(주로 집단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임지현씨는 「민족+시민적 가치」에서 시민적 가치를 중심으로 민족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만약 민족이 시민적 가치와 배치되는 부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민족 자체도 「반역」일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위 책을 읽다보면 책의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인 주장이 적지 않다. 본 글의 서문의 분류에 따르면 민족을 상상의 산물로 보는 첫째 입장과 근대적 가치와 결합하여 이해하는 두 번째 입장 중 하나이거나 두 가지 주장 모두를 취하고 있는 듯 하다. 또 두 번째 입장 중에서도 민족보다는 시민적 가치에 보다 비중을 두어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정치적.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80년대 중.후반이다. 80년대 중.후반의 민족주의는 「북한 바로알기」, 「반미 자주화」, 「자주 통일」운동으로 발전하는 한편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필자가 보기에 민주화운동의 동력은 개인의 인권과 존엄과 같은 시민적 윤리와 함께 자주,통일, 연북과 같은 민족주의에 있었다. 필자는 민주화 운동의 두 가지 동력 중 후자가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정착되면서 시민적 윤리와 민족주의가 분화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기만적이었다고 보는 것은 시민적 윤리가 확산된 반면 민족주의의 정치적 성장이 지체.왜곡.약화된 점이다.
시민적 윤리가 확대된 데 비해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당연한 시민적 의제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고 보수냉전.수구 세력의 퇴장은 정체되었다. 강하게 온존되었던 국가보안법과 반(反)민족적 보수수구 세력의 약화가 시작된 것은 21세기판 민족주의인 6.15 선언이 합의되면서부터이다.
임지현씨의 주장은 위의 과정에서 90년대 초반 탈냉전 시기에 발흥하여 전개된 이론이다. 임지현씨의 이론은 나름대로 199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 국면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박정희 정부와 같은 사이비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반열에 놓고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생략한다.
둘째는 민족,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엉뚱하게 반미연북 운동을 주도했던 주류 운동 집단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에는 96,97년 한총련의 운동 논리를 비판하는 회고담이 실려 있다. 학생들의 통일주장을 감상적.맹목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1996,97년의 상황은 반(反)민족적인 수구보수세력이 반미연북 주장을 말 그대로 철저히 짓밟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식인으로써의 양심을 가지고 말해 보라.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이를 이적행위로 몰아붙이며 범죄시하는 정권이 문제인가?
필자는 외국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주장을 이적시하는 「시민적 윤리」, 「시민 사회」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없다. 적과 아, 정의와 불의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논리의 궤적만을 따라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시민적 자유를 만끽하는 이런 유형의 지식인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궁금하다.
셋째는 6.15 공동선언이 출현하면서 기묘하게도 보수수구 세력과 유착하고 있는 점이다.
임지현씨와 같은 주장은 1990년대에는 조선일보와 같은 주류 사회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6.15 공동선언이 나오고 민족주의가 재발흥하면서 조선일보와 같은 골수 보수 집단이 다시금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는데 논쟁의 핵심적인 지점의 하나는 세계화, 경쟁력 논리에 입각하여 민족주의를 공격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입장에서는 임지현씨와 같은 주장이 외견상 진보적인 색채를 띠면서 주로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따라서 유신 독재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전선을 흐리는 위험한 생각이다) 자신의 이해와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높았을 것이다. 비슷한 차원에서 실체에 비해 과도하게 주목을 받고 있는 집단이 「뉴라이트」운운하는 운동일 것이다.
임지현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민족+근대화 가치」중 후자의 논리를 극단으로 추구한 입장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타의 논자들은 대체로 서구의 이론을 차용하면서도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여 민족과 근대적 가치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임지현씨는 논리의 한 극을 취해 공격적으로 논쟁을 촉발시켰다.
논리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공격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외세와 수구보수세력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③ 박노자
박노자씨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듯 하다.
첫째는 개인주의를 기본으로 반전평화, 국제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근대적.탈근대적 주장을 결합하고 있는 점. 둘째는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근대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 점이다.
위에서 밝힌 박노자씨의 첫 번째 주장은 낭만적이거나 공상적이다. 재야운동 진영에서 이런 류의 주장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터놓고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공상적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공상을 잣대로 하여 현실 세계를 재구성하게 될 경우 현실 세계 또한 비정상적으로 보이게 된다. 아래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이란과 이라크를 비교해 보자.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란정권이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정권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고 이라크는 미국에 의해 유린되었다. 이 차이는 이란이 반미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핵, 종교, 민중(빈곤 구제) (주1) 등 박노자씨의 가치 기준에 따르면 문제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강화한 반면 이라크는 이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2002년 말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목전에 다다른 시점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은 그나마 몇 개 남지도 않은 스커드 미사일을 폐기하기에 바빴다. 후세인 정권이 기대한 것은 미국의 선의와 국제사회의 견제였는데 이라크의 사례는 그러한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임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박노자씨가 후세인 정권을 비판했던 잣대인 평화, 개인주의(나아가 국제연대까지)를 가지고 이란을 재구성한다면 이란 또한 미국에게 당했을 것이다.
박노자씨의 글을 읽다보면 이라크의 대미 항전 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이란의 집권 세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평가를 할 듯 하다. 박노자씨의 논법은 집권세력=기득권층, 비집권세력=반제저항세력인 듯한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호메이니나 최근 대선 당선자 아흐마디네자드가 도덕적인 기준으로 보면 보다 깨끗할 것이다. 이라크의 저항 세력의 경우 알 카에다 류의 국제적 테러리스트, 후세인 정권 시절 관료.군대의 잔당(수니파), 시아파, 하층 민중 등 일텐데 이들의 도덕적 면모가 이란의 집권 세력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도덕적 면모보다 중요한 것은 이란의 집권 세력이 반미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조국을 수호하는데 성공한 반면 이라크는 국토와 민중이 유린된 후 때늦은 저항을 하고 있는 점인데 권력을 이용하여 외견상 다소 부족해 보여도 국토를 지켜내고 있는 이란의 집권세력이 부도덕한 반면 뒤늦은 저항을 하고 있는 이라크의 저항세력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무정부적 성향과 사물을 보는 입각점이 서구 시민사회의 낭만적 좌파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무정부적인 성향 때문에 권력.제도.정부를 끼고 있는 주류 정치세력을 나쁜 것이고 비제도권의 비주류 저항세력은 좋은 것이라는 이상한 선입관이 있는 것이다. 서유럽의 반전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핵과 정치권력을 두고 일진일퇴하는 이란보다는 비제도권에서 싸우고 있는 저항세력에게 애정이 가는 법이다.
유사한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둘러 싼 역학에 대한 평가이다. 이라크가 자기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 강력한 정치권력-중.러.독.프 등의 강력한 견제(UN 안보리 거부권 따위) - 이라크 민중의 강력한 저항 -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의 순으로 중요했다.
이라크가 북과 이란 수준의 핵과 권력의 안정성이 있었다면 국제사회가 뭐라고 하든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미.소 냉전과 같은 국제 역학이 있었다면 미국은 이라크와 같은 중간 규모의 국가를 침략하기 어렵다.
한편 2002년 하반기 미국이 이라크 침략을 위한 외교전에서 UN의 외피를 쓰지 못한 것이 이라크 민중의 대대적 저항과 국제적인 반전 운동을 촉발시킨 요인이었다. 그리고 일단 정치권력이 붕괴된 이후에는 이라크 민중의 반미 투쟁이 중요했다.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내 여론, 국제적인 반미반전 여론이 조성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실제 과정을 돌아보아도 2002년 하반기 UN을 둘러 싼 외교전에서 미국의 노력이 실패하면서 2003년 2.15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운동이 벌어졌다. 3.19 이라크 침략이 개시된 후 예상보다 빨리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국제여론은 재빨리 사그라들었다.
국제 여론이 다시금 비등하기 시작한 것은 5.1 부시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했음에도 이라크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2003년 하반기 부시 행정부가 의회와 동맹국에 추가 전비와 증파를 요청하면서부터이다. 이 이후 동맹국들이 서서히 발을 빼고 있고 미국 내부 여론도 등을 돌리고 있다.
박노자씨 또는 국내의 일부 운동권의 시각을 찬찬히 돌아보자. 박노자씨의 시각은 필자가 지적한 순서와 거의 정확히 역순이다. 박노자씨의 시각을 수미일관하게 따르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이란과 이라크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박노자씨나 서유럽 반전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한번 싸우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이란과 이라크의 입장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분깃점이다.
위 임지현씨의 견해가 우파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비판이 쉬운 반면 박노자씨의 견해는 좌파적인 경향으로 인해 도덕적인 비판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위험성으로 보면 전자나 후자나 마찬가지이다. 거의 동일한 입장에서 북의 선군정치나 민족주의에 대한 박노자씨의 주장을 평가해 보기 바란다.
박노자씨가 주로 글을 쓰는 분야의 하나는 우리 민족의 근대사이다. 여기서도 거의 동일한 문제가 있다. 박노자씨는 「개인」의 입장에서 근대사를 재구성하는데 필자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중국.일본의 전통사회는 대체로 「유교-공동체-상하관계」였는데 이를 「개인-평등한 관계」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주목하는 것이 전통 유교질서가 붕괴한 후 서구 다원적 질서를 수용하려 했던 개신(改新) 유학자 또는 신지식인들이다.
조선에서 보면 김옥균.신채호.서재필.윤치호, 중국으로 보면 양계초 등이 논쟁의 중심이고 주요하게 비판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이를 취했던 하나의 조류인 부국강병, 군사주의, 영웅주의, 집단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의 주장이 적자생존.우승열패와 같은 제국주의의 논리를 내면화한 제국주의의 아류라고 보는 것이다.
박노자씨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제국주의-식민지」라기보다는 제국주의든 저항적 민족주의든 「아와 타를 구분하고 아를 조직하고 결속하며 발전을 도모하거나 그에 기초하여 저항하고 싸우려는 시도」는 적자생존.우승열패와 같은 제국주의적 발상이고 「아와 타의 공생을 강조하고 집단과 주류 질서로부터 개인과 비주류의 개성과 영역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진보적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민족이란 부정적인 무엇이 된다. 아래에서는 구체적인 역사 과정을 통해 이를 평가해 보겠다.
19세기말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향해 밀려들던 반(半)식민 상황에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는 김옥균의 갑신정변처럼 위로부터 제도와 문물을 빠르고 전격적으로 변혁하거나 다른 하나는 최익현 류의 위정척사,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하층의 저항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시간을 버는 방법이다.
전자 류의 개신 유림, 개화파, 신지식인에게는 근대적이고 발전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힘이 없었고 후자에는 힘이 있었지만 근대적 지향이 약했다. 양자가 괴리된 것이 한계였지만 이것은 19세기말의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전제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박노자씨는 김옥균과 같은 혁신적이고 과감한 시도는 부정하고 근대적인 요소를 체현한 개신유림.신지식인들의 「개인주의」의 맹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만약 그 「개인주의」의 선구자들이 「개인주의」가 만개한 정치사회 질서를 혁신적으로 구축하려한다면 가령 갑신정변처럼 움직이면 안되는 것이다. 박노자씨의 주장대로 하면 그렇다.
(갑신정변 과정에서 있었던 폭력행위를 비인간적이라며 비판한다. 물론 비인간적이지만 역사를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필자의 안목에서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를 인본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논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 유교, 공동체 질서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고독한 선구자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박노자씨는 김옥균과 같은 발상을 막아 버림으로써 개화파의 구상을 비정치적인 그리고 실현 불가능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이 되면 본격적으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반일이 전면에 서고 반일을 위한 내부로부터의 힘의 동원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여 사상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계몽과 근대, 개화를 강조했던 19세기말의 흐름이 일제라는 적과 명확히 맞서게 되면 반일.민족의 잠재력.무력 등을 중시하는 하나의 흐름과 조선의 낙후, 일제의 강대함, 양자의 거리를 메우려는 노력을 중시하는 또 하나의 흐름으로 양분된다. 전자가 신채호, 이동휘, 김규식 등의 길이고 후자가 이광수 류의 흐름이다. 후자는 박노자씨 본인이 지적하듯이 일제의 침략성이 명확해지는 조건에서는 진보적 사조가 아니다.
문제는 전자가 반일을 위해 동원했던 영웅.무력.민족 전통과 공동체성 등의 화두를 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한 적자생존.우승열패의 논리라고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가? 사실상 민족해방운동 전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노자씨의 주장대로 민족을 집단으로 묶어세우지 않고 개인의 개성과 존엄을 중시하는 이념에 기초하여 분산시키고 그것도 적과 아를 구분하는 「적대」의 논리가 아니라 「적과 아」의 공존과 공생을 강조하며 노.농 대중과 같은 주력 부대가 아니라 비주류에 주목한다면 (거기에 극단적인 평화적인 입장까지 가미하면) 반일운동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반일 운동이란 일제시대의 자치나 계몽을 말하는 것과 같은 반동적인 사조가 되거나 무정부적인 운동일 수밖에 없다. 박노자씨가 시종 무정부주의 또는 실현되지 않은 좌파적 시도에 우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발상은 역사에서 소수자 영역, 비주류 역사를 발견하려는 시도로는 적당할지 몰라도 역사의 골간, 주류를 세우려는 관점으로는 부적절하다. 터놓고 말하면 박노자씨의 견해대로라면 역사의 골간, 주류를 세운다는 발상 자체도 부정적일 듯싶다.
박노자씨의 주장은 비현실적인 이상을 잣대로 국제 정세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무리하게 평가.재구성했다고 생각한다. 박노자씨의 세계관이 비현실적인 이상이라고 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필자의 주장일 뿐이다. 역으로 필자의 주장이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주의, 평화, 국제주의, 비주류 사회주의 등에 대한 박노자씨의 신념체계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대한 평가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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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여기서 민중과 빈곤 구제는 근대적 의미라기보다는 이슬람과 결합되어 있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