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본 글에서는 다극화의 관점에서 국제 정세를 논해 보고자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해당 시기의 역사적 과제와 부합해야 한다. 역사적 과제를 잘못 잡으면 세상사의 여러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뒤틀리게 된다. 가령 자본주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그다지 현실적 위력이 없는 대중운동(가령 1999년 3차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시애틀 시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중.러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정도 이상의 비판을 하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민사회의 확대와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민족의식, 민족주의를 위험한 것으로 보게 되는데 이러한 오류는 해당시기의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보고 그에 따라 다양한 세상사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현 단계의 국제 정세를 다극화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글의 성격상 여러 대륙, 여러 민족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기억에 의존하여 크게 개괄함을 이해하기 바란다.(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① 다극화와 일극화
2차 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는 주로 미.소간의 양극 질서로 설명된다. 따라서 냉전 시기의 양극 질서는 체제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 주도의 단극(일극) 질서와 중.러.일본.유럽연합 등 여러개의 「극」이 공존하는 다극 질서가 각축하고 있다. 냉전 이후의 다극화는 미국 주도의 단극화(일극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했던 단극 구조와 그에 저항했던 다극 구조를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원리의 측면에서는 내정 간섭과 그것의 불용이다.
미국은 「자유의 확산」이라는 관점 하에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 체제를 타국에 강요하고 있는데 다극화의 관점에서는 내정 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도 상대적인 관점인데 미국은 미국식 정치체제를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로 강요하고 있다면 유럽연합은 인권과 평화와 같은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유연한 방식으로 강요(?)하고 있다. 후자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내정 간섭으로 볼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보편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정은 간단치 않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기생과 독점이 문제이다.
냉전 이후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이 정치군사적인 힘에 기초하여 에너지와 자원을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동아시아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재부를 금융적 방식으로 수탈하는 기형적인 경제 구조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문제일 수 있지만 이를 기준으로 국제 정세를 보게 되면 긍정과 부정, 순방향과 역방향의 갈림이 너무 좁아진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극화는 힘의 균형, 다자간 안보, 합리적 군축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군사적인 차원에서의 상식 이하의 미국의 군비 확장은 이른바 일극화의 핵심 요체이다.
② 다양한 국제 정세
㉠ 미국과 유럽
동일한 문명에서 발원한 미국과 유럽은 냉전 해체 이후 특히 9.11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극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분열을 상징하는 지표의 하나는 종교와 세속의 갈등이다. 근대 문명을 주도했던 서유럽 문명은 종교와 세속을 구분했다. 유럽은 종교와 세속의 분리라는 서유럽의 역사적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반면 미국은 갈수록 종교화되고 있다.
미국의 종교화는 미국의 안팎에서 제기된 여러 과제를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붕괴된 조건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투사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비합리적인 종교적 신념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신천지였던 미국은 점점 계서(階序)화된 위계질서와 빈부격차에 의해 양극화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유럽연합이 하나의 자립적인 경제 단위라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경제적으로 기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분열은 군사적인 영역과 경제적인 영역의 분리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북미주와 유럽의 단결의 기구였던 NATO는 냉전 해체 이후 위상이 모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은 미국 주도의 군사적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경제적 협력은 EU를 통해 초국가적 협력이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상황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NATO와 EU의 괴리, 군사와 경제의 분리라는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여러 다양한 문제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폴란드.헝가리 등의 동유럽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동조하면서도 유럽으로의 합류를 통한 경제적 이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갈라졌던 미국과 유럽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앞에서 다시금 갈라서고 있다. 유럽에서 반미 사조가 확산되는 반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동일한 현상이다. 유럽에서 반미 사조가 확산된 배경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군사적 의제가 배경이었다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중국과 유럽간의 경제적 연관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과 중.러
냉전 해체 직후 중.러는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대체로 묵인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일극화 기도가 노골화되자 중.러의 반발도 구체화되고 있다. 중.러의 반발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하나는 정치 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군사협력이다.
2000년 푸틴, 2002년 후진타오 체제는 공산주의 정권은 아니지만 미국에 적대적인 또는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상당히 거리를 둔 토착적 성격의 정치 세력이 출범했음을 상징했다. 푸틴 정권은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주창하고 있고 후진타오 체제는 예상과 달리 사회적 안정을 중시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러의 군사적 협력이 날을 따라 강화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중.러가 정치 체제, 군사구조에서는 미국과 맞서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 질서 전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냉전 시기와 냉전 이후의 국제 질서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미국과 중.러의 대립은 범세계적이지만 양자의 이해가 예민하고 날카롭게 충돌하는 지역은 동유럽.코카서스 지역과 중앙아시아이다.
코카서스 지역은 구소련의 영토로 그루지야.우크라이나 등에서 연속적으로 미국식 자유주의 혁명이 성공하여 미국을 고무시키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의 경우 구소련의 영토이면서 중국과 인접한 지역으로 미국의 대소, 대중 압박 정책과 중.러의 이해가 맞부딪히는 곳이다. 또한 이들 지역이 에너지의 보고이면서 이슬람원리주의의 배경이 된다는 면에서 양자의 각축이 첨예화되고 있다.
㉢ 이슬람.중동
중동.이슬람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이란.시리아의 대미 강경노선이다. 특히 이란의 대미 강경노선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동북아시아의 북과 함께 최대 우환거리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점차 연성화되었다가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강경해지면서 역으로 강경해지고 있다. 이란에 비하면 리비아와 이라크는 변방에 가까웠다. 미국이 이란에서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둘째는 레바논.이집트.사우디 등에서 위에서 지적한 동유럽.코카서스 지역과 유사한 미국식 자유주의 노선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이란이 전통 이슬람을 고수하고 있는데 반해 이들 국가는 미국식 정치체제의 외형을 취하고 있는 양상인데 아직은 관망의 대상일 듯 하다.
셋째는 중동.이슬람 전체에서 반미 기류가 확산되고 있고 이를 배경으로 중동.이슬람의 엘리트층도 그러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는 점이다. 9.11을 감행한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식자층, 중상류층의 젊은이들이었고 오사마 빈라덴은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기득권층이 아니라 검소하고 종교적인 엘리트층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케말파샤-나세르류의 민족적이고 근대적인 조류, 사우디 왕정 등이 추진했던 친미적이고 근대적인(?) 사조와 대비되는 새로운 흐름으로 볼 수 있겠다.
중동.이슬람의 상황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힘이 센 가운데 중동.이슬람을 하나의 권역으로 통합할 수 있는 정치세력과 이념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신정체제가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근대적이지 않을까?
㉣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양분되고 있다. 하나는 싱가폴, 대만, 홍콩 등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흐름이다.
전자는 전근대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對)공산주의 봉쇄망이라는 전통적인 질서내에서 「권위주의 정부+개방경제」를 결합하여 성장한 지역이다. 냉전 질서가 붕괴되면서 대만.홍콩.마카오 등은 중국의 권력 구조 안으로 편입해 들어가고 있고 말레이지아.싱가폴 등에서는 탈미적 사조가 성장했다. 일본 자본이 진출하고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심화되면서 동남아시아 전체적으로 한.중.일과의 연관 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첫 번째 유형은 전반적으로 정치 구조가 안정되어 있고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며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탈미적 사조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후자는 경제적으로 낙후하며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특징이 있다. 9.11 이후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 전쟁에 합류함으로써 내부의 이슬람 세력을 통제하고 취약한 정권 기반을 보완하려 한다. 9.11 이후 미국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는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그런 사례이다.
㉤ 중남미
역사적으로 미국의 앞마당이었던 중남미는 신자유주의 경제원리가 지배적이 됨에 따라 갈등과 대결의 대륙으로 변해가고 있다.
태풍의 눈은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이다. 차베스 정권은 정치적으로 민중주의적이고 민족적이며 경제적으로 자원의 국유화와 남남협력을 중시하고 있으며 외교적으로 카스트로를 공공연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차베스 정권의 시도가 주목되는 이유는 차베스정권의 시도가 중남미 전역에 만연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촉발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나라가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구아 등이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이 원주민 운동과 결합되어 준혁명적인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중 봉기가 차베스류의 정치적 시도와 결합될 수 있다면 중남미는 상당히 심각한 양상을 Elf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사례와 다소 다른 조류가 브라질.아르헨티나의 온건 좌파 정권이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우파 세력 대신 사민주의적인 온건 좌파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사례인데 베네주엘라의 급진적.민중적 성격과 달리 신자유주의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자에 비해 온건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주엘라와의 또다른 차이는 중남미의 남부 지역의 경우 원주민 운동의 토대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운동의 양상이 급진적인 양상을 띠지 않고 정치적으로 수렴되었다.
자원 부국인 중남미 대륙의 경우 중국의 극적인 성장이 전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중국에 대한 자원 수출을 매개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중남미 대륙 전체가 다극화, 호혜협력의 기조에서 협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중동 이슬람과 카스피해 연안지역의 자원이 미국에 의해 독점적으로 약탈되고 있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한편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같은 민중주의 정권, 브라질.아르헨티나의 온건 좌파 정권은 탈미적인 지역 협력체 창설을 시도하고 있다.
㉥ 동북아시아
동북아시아는 다극화와 일극화의 흐름이 명확히 교차하고 있다.
정치군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한미 군사관계의 온존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수호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다극화의 견지에서 보면 북미관계의 정상화, 중.대만 관계의 정상화(중국이 주도하는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 한미-미일 군사동맹의 약화 또는 해체가 정상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는 지극히 기형적이다. 세계적인 견지에서 보면 부의 원천은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로 삼분되어있다. 이 중 유럽이 자립적인 지역이라면 미국과 동북아시아의 관계는 기생적이다.
미국의 과소비는 동아시아의 존재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이 중남미와 중앙아시아.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관심이 주로 석유와 가스와 같은 에너지의 통제라고 한다면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는 동아시아가 산업적 방식으로 벌어들인 재부를 금융적으로 수탈하는 기생적 관계이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동아시아는 미국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럴 수 없다. 문제는 동아시아 사회가 수출 중심의 개방경제체제라는 경제구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산술적인 차원에서 미국이 수탈해 가는 부를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경제구조의 변경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동북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보나, 정치경제적인 역량으로 보나 미국의 지위를 상대화하여 다극적 질서를 창출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아시아는 생략.
③ 평가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혁명과 전쟁, 공황으로 치달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부각되었다. 냉전 해체 이후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로 일색화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가 심화되고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사회주의를 의미할 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상당시간 또한 여전히 세계경제체제는 자본주의적일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현 시점에서 드러내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수준, 여러 방면에서 타격하는 것이다.
본 글의 주제와 연동시켜 본다면 국제적으로 다극적 질서를 창출하고 그 바탕위에서 외부의 강제적 힘이 배제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협력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세계는 참으로 의미있게 달라질 것이다.
㉠ 다극화의 주체
다극적 질서의 주체는 민족국가일 수도 있고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지역 단위의 협력체일 수도 있다.
유럽연합의 시도는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지역 단위의 협력체가 다극적 질서의 한 축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투표 부결로 유럽연합 발전에 치명적인 장애가 조성되고 유럽이외의 지역에서는 의미있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민족국가를 뛰어 넘는 지역 단위의 협력구조가 역사 발전의 하나의 추세임은 명확해 보인다.
유럽연합의 행보는 다극화의 견지에서 보면 긍정적인 사조라 할 수 있다.
한편 동북아시아라면 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가운데 이를 근거로 협력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흐리는 순간 민족간의 갈등이 표출될 것이고 민족국가를 대체할만한 가령 서유럽의 시민사회와 같은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는 동질의 집단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연대에 근거한 지역 협력체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거나 목전의 과제를 흐리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목전의 과제는 다극적 질서를 방해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다극의 한 극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민족주의는 다극화에 장애 요소라면 동북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갖는 의미는 저항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성과가 올바로 계승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지역 협력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중남미는 브라질.아르헨티나의 온건 좌파,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 모두 탈미적 조류이다. 그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동.이슬람의 경우에는 뚜렷한 실체가 없고 아프리카는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동북아시아의 향방에 좌우될 것이다.
다극화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시아의 일본,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 동유럽의 폴란드 등이 문제이다. 이들 국가는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합류하면서 미국 주도의 일극화 기류에 편승했다.
㉡ 군사적인 영역에서
군사적으로 본다면 미국의 군비 확장을 저지하는 것이 초미의 과제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체제의 온존과 확장을 막아야 한다.
우주를 전장화하려는 구상, MD(미사일방어)체제와 같은 신무기 개발, 일극 패권을 물리적으로 담보하려는 군사 혁신 등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암적인 요소이다. 동맹의 차원에서 보면 NATO의 온존은 기묘한 것이고 미.일 동맹의 강화 경향은 반(反)역사적이다. 중동.이슬람에 건재한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인류 문명의 오점이다. 9.11 이후 새롭게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로 확장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은 견제되어야 한다.
위의 맥락에서 보면 중.러(또는 인도까지)의 군사협력은 미국을 견제하는 수준까지는 순역사적이라 볼 수 있다. 북과 이란의 군사력도 동일하다. 북이나 이란의 군사적, 핵무장력을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고 균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문제는 베네주엘라가 낙후한 물리력으로 미국의 정치개입을 허용하는 것, 리비아 가다피 정권의 무원칙한 타협이다.
㉢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본다면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전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기생과 약탈이 문제이다.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놓인 산업적 차원에서 쌓아 올린 재부를 금융적 방식으로 약탈해 가는 것, 중남미.중앙아시아.중동에서의 자원독점과 통제가 문제이다. 동북아시아는 수출지향이라는 대외 개방체제보다는 내수를 확대하고 부를 국내로 환류시키는 경제구조의 전환이 필요하고 중남미.중앙아시아.중동의 에너지와 자원은 마땅히 해당 국가의 이익과 인류 전체를 위해 공정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북의 경우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과잉자본이 북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아돌아가는 자본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활용할 수 없는 밖에서 걸려 있는 빗장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세한 소식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