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3-15일에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반세기의 역사 에 일대 획을 긋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남북의 지도자는 이번 회담을 통해서 현재의 양자관계를 규정하는 적대적 대결상태를 종식하고 평화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로 사실상 합의하였다. 물론 이 합의가 실천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까지는 적지 않은 굴곡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 의 남북관계 변화가 탈냉전, 사회주의권 붕괴, 남북간 역 량격차 심화라는 구조적인 환경에 직접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그 역진(逆進)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단기적으로 남북간에 적절한 완충기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군사분계선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다원적 사회현상을 반영한 국내언론 보도가 유일적 문화와 사고에 젖어 있는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또한 정상회담 성과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부차적인 시행착오를 부각시키려는 일부 분위기도 극복해야 할 장벽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지니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북한이 `평화와 개방`을 향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동안 세계로 나올 준비를 계획적으로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한때 그는 참모들에게 "내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했지만, 실은 변화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변화를 모색해왔다. `99년부터 북한은 내부의 심각한 자원제약 상황을 타개하고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으며, 특히 미국과 중국을 양대 외교축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대남전략도 기존의 혁명전략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자기 체제의 유지 발전을 목표로 한 생존전략적 차원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즉 남북 공산화모델에서 공존형 모델로 전환하였다. 바로 이러한 전환을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번 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남과 북이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반드시 합의해야 할 내용은 많다. 정치·군사적으로는 긴장완화의 실현과 평화체제로의 경로, 그리고 통일의 길에 대해서 합의해야 한다. 사회경제적으로는 광범한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고 이산가족 재회 등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하며, 당국 간 대화통로를 상설화해야 한다.
이러한 절대기준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확립과 관련한 명시적인 합의를 공동선언에 명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조건을 무시한 이러한 절대적 평가는 의미가 없다. 어느 회담이건 그것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애초의 목표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담은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애초에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만남 자체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정부 역시 공동성명 발표, 대화기구의 상설화, 이산가족문제의 해결 합의, 경제협력 합의 정도를 기본목표로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 정상의 합의는 공동성명을 뛰어넘어 공동선언으로 나타났으며. 나머지 기본목표도 모두 달성되었다. 그밖에도 몇 가지 중요한 성과를 더 거두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특징화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지도부가 서로 인간적 신뢰구조를 쌓으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보였다.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 속에서 남북 지도자들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서 격의 없는 접촉을 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국방지도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존경의 예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 지도부 사이의 인간적 신뢰구축 노력은 남북간에 긴장을 완화하고 향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얼굴을 맞대고 남북간에 거론될 수 있는 문제들을 거의 모두 논의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이나 경제협력과 같은 쉽고 시급한 문제만이 아니라 핵 미사일 주한미군 국가보안법문제 등 예민한 현안과 통일방안과 같은 거시적인 사안까지 거의 빠짐없이 서로의 입장을 개진하였다. 양 지도자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11시간의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의 사고와 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적대적인 쌍방이 화해협력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가 역지사지 (易地思之)의 지혜다. 그러나 이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 점에서 양 지도자가 직접 만나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함으로써 남북간에 상생(相生)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3) 남북공동선언문으로 나타난 합의가 지닌 의미다. 남과 북이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의미하는 `선언` 을 최고지도자 간에 채택했다는 것은 이 합의의 의미를 강화시키고 실현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공동선언문은 간략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자못 풍부하다. 그리고 양측은 선언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당국 간 대화기구를 조속히 설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말을 아끼고 대신에 실천에 무게를 두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확인된 것도 대화의 정례화와 함께 합의내용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6 15 공동선언` 분석
`6·15 공동선언`은 가히 `평양선언` 이라고 부를 만큼 의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먼저 공동 선언 제1, 2항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를 명기하였다. 제1항은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 원칙을 선언하였으며, 제2항은 통일의 초기경로에 대한 합의내용을 담았다. 공동선언 3,4항은 이산가족 재회 등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 등 제반 교류협력문제를 다루었다. 마지막 5항에서는 이상의 합의내용들을 이행하기 위한 당국 간 대화 개최를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공동선언의 실천성을 한층 높이기 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명기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담은 `6·15 공동선언`이 지닌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7·4 남북공동성명 및 남북기본합의서와 비교해 볼 때, 공동선언에는 명기된 개념들 대부분에 대해서 양 정상이 인식의 공유를 이루었다. 즉 인식 공유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용어들이 선언문에 담겼다.
남북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정치적 개념에는 전략적 목표를 담고 있다. 따라서 같은 용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방법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이 채택되어도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단 한 발짝도 진전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가장 예민하게 대립해 온 개념인 "자주`조차도 북한이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 신축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남북 양측이 개념공유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용어에 대한 개념인식이 서로 근접했다는 것은 합의의 실천가능성을 그만큼 높이는 것으로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남북정상은 사상 처음으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였다. 통일방안은 그 동안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경쟁적으로 내놓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통일의 초보적 단계에 대해서 인식의 공유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그 공유는 북한이 자신의 연방제안을 수정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는 북한이 그 동안 한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한 바 없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자신의 안임을 확인한 데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북한이 현실의 변화를 수용하여 기존의 고려민주연방제를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결과 6공화국이래 남측의 통일구상의 핵심이 되어온 연합제안(案)에 근접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낮은 단계의 통일조차도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한다고 보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식으로 문제를 장기적으로 풀어가기로 하였다.
(3) 평화문제와 관련하여 양 정상은 많은 논의를 하고 상당부분에서 인식의 공유를 이루어냈지만, 공동선언에 명기된 것은 원칙과 방향 정도에 그쳤다. 상당부분이 생략된 것이다.
생략은 서로 의견 개진에 그친 사안과 인식의 공유가 이루어졌어도 국제역학이나 북한 내부사정이 고려되어야 할 경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남측이 진지하게 설명한 핵·미사일문제가 전자(前者)라면 북측의 인식변화가 확인된 주한미군문제 등이 후자(後者)로 보인다. 요컨대 공동선언에서 평화·통일 관련 조항은 명기된 것보다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비록 공개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여러 쟁점에서 의견접근이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앞으로 정상회담이 횟수를 거듭하여 이루어지면, 평화분야에서도 보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4) 대북포용정책의 당면과제들이 대부분 실천사항으로 명기되었다.
정부는 그 동안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당면 정책 과제로서 이산가족문제의 해결과 남북한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당국 간 대화 상설화 등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제들이 남북공동선언 제 3,4,5항으로 명시되어 실현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이산가족 재회문제는 제3항에 안착하였다. 이산가족 문제부분은 8·15전에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함으로써, 공동선언 중 가장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양 정상은 이 합의를 넘어서 면회소 설치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선언 중에서 경제협력 관련사항은 짧은 문구에 가장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양 정상은 경제협력을 통해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고 간략하게 적시했으나, 그 속에는 경협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보완, 철도연결·전력지원·임진강 수방대책 등 단기적 협력사업, 경의선 복선화 및 공단건설 등 장기적인 사회간접시설 투자문제 등이 풍성하게 실천내용으로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선언 제4항은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 위해서 사회·문화 ·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키기로 하였다. 이는 앞으로 다차원에서 광범한 남북교류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한편 제5항은 양 정상이 합의한 사항들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당국 간 대화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화기구들은 앞으로 선언내용에 대한 치장보다는 실천에 치중하겠다는 양 정상의 의지를 담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과제
오늘날 남북정상회담의 파장은 남북관계를 넘어서 동북아 국제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상회담은 적대와 반목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물결로 바꾸어 놓았으며, 배제와 진압의 문화가 활개를 치던 한반도에 상생(相生)과 공영의 열정을 싹트게 하고 있다. 남북 정상의 포옹은 한반도 냉전종식과 동북아 신질서 형성에 남북한이 불원간 주도력으로 나서 리라는 예고를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렇듯 전환기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기존 관성에 젖어 있는 관련 당사자들에게 새로운 사고와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1)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후속조치를 철저하게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합의한 내용의 실천을 위한 분야별 실무협의기구를 빠른 시일 안에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실무기구는 의제별·분야별 실무기구와 이를 총괄 조정하며 이후 정상회담문제를 논의해 나가는 장관급 상설위원회가 이원적으로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대화기구가 유기성을 지닌 이원적 구조를 갖게 되면 상층의 정상회담과 연결되어 정상회담(정례화) → 포괄적 대화기구(장관급) → 부문별 대화기구의 체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체계는 남북 화해·협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유기적이며 계획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체계는 뒤에 남북국회회담과 연결성을 갖게 되면 장기적으로 남북연합으로의 발전도 가능한 연속 모델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실무협의기구의 구성은 적십자사에 책임이 맡겨진 이산가족문제 외에 경제·사회문화·군사 분야 등은 당국자로 대표단을 구성해서 본격적인 협상에 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합의까지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통일방안분야는 남북의 전문가들로 연구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회의체가 정부주도로 만들어질 경우 사안의 중대성과 예민성 때문에 당국이 지는 부담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 는 전문가 수준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공통방안을 도출하여 양 당국에 제출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여론수렴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인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2) 남과 북은 모처럼 마련된 화해의 물결을 역류하는 우발적 분쟁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남북간의 합의는 아직 자그마한 사건에도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도 같다. 따라서 휴전선과 해상 불가침 경계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방지하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 양측은 빠른 시일 내에 군사직통전화를 개설하고 최소한의 군사적 신 뢰구축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국내적으로도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3) 국제협력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문제는 기본적으로 국제적 성격과 민족 내부적 성격이 결합되어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기본 당사자는 남북이 되어야 하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하고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또 다른 주체인 주변 강대국들과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대미관계가 중요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실현은 근본적으로 클린턴 정부의 대북 대화노선의 정당성을 입증시켜준 호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의지가 확인되었는바, 이는 북한이 미사일문제에 대해서도 신축적인 태도를 보이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국이 우려할 만한 요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미국에 대한 미사일 위협의 신뢰성이 상당히 약화되면서 미국 일각에서 추진해온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문제가 논란에 싸였다. 이는 수 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NMD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의 이해에 배치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남북 주도력이 강화되는 것이 자칫 미국에게 그들의 영향력 약화로 비쳐질 수 있다. 그 동안 남북 대화의 단절과 함께 북미협상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열쇠처럼 인식되던 시절이 장기화하면서 마치 미국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재자인 양 비쳐져 왔 다. 그런데 정상회담은 남북한의 정세주도력을 복원시킴으로써 과대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정상화시켰다. 바로 이 점을 미국은 우려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페리 프로세스와 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민족 내부적 프로세스가 대체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에 있음을 미국에게 잘 설득해야 한다.
(4) 우리 사회 내부의 준비도 있어야 한다.
먼저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실천을 위한 국민적 동의기반을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중추적으로 이끌고 있는 정치·사회세력들 중 어느 누구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정착으로의 진전을 의미하는 정상회담의 성과가 적어도 정치적·사회적으로 자신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신뢰와 동의체계의 형성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서 "남남대화"로 표현되는 사회 내부의 공존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는 배제와 진압의 논리가 혁파되고 공존의 논리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감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한편 우리의 의식과 문화, 제도 속에 스며 있는 냉전문화를 청산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상상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과 눈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의 차이 때문에 커다란 혼란을 느꼈다면, 그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만큼 그를 잘못 보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즉,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해온 우리가 정작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도 남북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내 냉전구조 유지의 기제였던 국가보안법 등 제반 법적 장치를 손질해야 한다. 통일교육도 북한을 `적대적 형제`로 보는 이중적 현실인식 아래 북한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형제애를 증진해 가는 노력을 담을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통일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충분한 예산이 배정되어야 한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일대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민족화해의 분위기와 합의를 소중히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평화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정상회담을 통해서 비로소 민족화해와 통일을 향한 진정한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0년 7월)

